<여성과노동>
심장의 관리가 요구되는 자본주의
1983년 미국의 사회학자인 Hochschild는 『관리된 심장 [The Managed Heart]』이라는 책을 통해 소비지향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는 감정노동의 형태에 관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 책은 미국사회에서 당시만 하더라도 1/3에 육박하는 서비스업계 노동자가 수행하고 있는 감정노동에 대해 분석한 것으로 자본주의는 매우 사적인 감정인 좋아하고, 싫어하고, 슬프고, 화나는 감정조차도 서비스업이라는 조직의 목적을 위해, 조직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감정을 강요하여 사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집단적 감정이 강요되는 사회가 되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서비스 노동자 ‘집단적 감정’ 강요당해
▲ 정진주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감정 노동은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노동자의 감정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고객만족이 기업의 경쟁우위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부각됨에 따라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특히 인적 서비스가 중요한 호텔이나 백화점, 레스토랑, 패스트푸드점 등에서는 노동자의 서비스 수준이 곧바로 고객들의 구매의도를 좌우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요구는 더욱 절실해지고 있지만 이들이 일하고 있는 환경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할 때이다.
우리사회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와의 대면을 통한 직접적인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하위집단이 대다수 여성이라는 점, 이들 여성은 가정에서 돌봄노동을 수행하면서 이미 취업 이전에도 보이지 않게 감정노동을 실행해 온 집단으로 이제 공사 양 영역에서 심장이 관리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직종에 따라 표현하는 감정노동의 규범은 다양하지만 감정노동은 일반적으로 몇 가지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간의 상호작용의 빈도, 직업에서 요구되고 표현되어져야 하는 규범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정도, 특별한 상황에 맞추어서 표현되는 감정을 자주 바꾸어야 하는 정도, 감정적 부조화가 감정노동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빈도가 많을수록, 노력을 더 들여야 할수록,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야 하는 감정노동이 많을수록, 감정적 부조화가 많이 발생할수록 노동자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적 조직은 노동자에게 ‘바람직한’ 감정을 표현하도록 권장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제와 강제를 행사하여 ‘바람직한’ 감정을 실행하도록 한다. 그 방법은 매우 다양하여 노동자의 공식적 비공식적 교육을 통해 감정노동표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간다거나 노동자의 감정이 조직의 감정 표현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보상 및 처벌을 통해서 감정 노동에 관한 관리를 더욱 탄탄히 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위장고객 등을 통해 모니터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업무 수행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위장고객의 존재를 의식하게 만드는 것, 사장실과 직통되는 전화개설, 소비자 중역제도, 고객 소리함 제도 등 고객들이 느끼는 불만이 곧바로 중역에게 보고될 수 있는 여러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어 더욱 통제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또한 고객은 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이용하여 노동자의 서비스를 평가하는 글을 올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수단들은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노동자의 감정표출 행위에 대한 감시자로 만드는 셈이다. 매달 매니저들이 고객평가들을 종합하여 가장 평점이 우수한 사원에게 한 달에 한 번씩 모범사원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감정노동 수행 노동자 건강에 관심 가져야
과다한 감정 노동의 수행은 노동자들을 실제 느끼는 감정으로부터 소외되게 만들고 감정적 부조화를 초래하며 죄책감이나 위선적 감정을 야기한다. 또한 고객에 시달리는 노동자는 심하면 대인기피증으로 이어지고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소비자와의 대면관계에서 떠날 수 있는 혼자만의 적절한 휴게시간과 적정 휴일보장, 감정노동을 적절한 수준에서 수행하기 위한 인력보충,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관심과 투자일 것이다.
정진주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