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만 남는다면…값싼 임시·일용직 사망위험 3배
노동재해 왕국 멍에를 벗자 ② ‘산재 벼랑’ 비정규직·영세 사업장

[관련기사]

•노동재해 왕국 멍에를 벗자 ①멈추지 않는 죽음의 행렬

지난달 4일 오후 1시50분께 울산시 온산공단 내 대한유화 공장. 7~8층 높이의 거대한 액화가스 저장 탱크 외벽에서 용접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장대석(49)씨가 갑자기 추락했다. 매고 있던 안전띠가 장씨를 허공에 매달았다. 하지만 그의 생명까지 붙잡지는 못했다. 부검 결과, 장씨는 전기용접봉 감전 충격으로 떨어져 허리에 맨 안전띠가 가슴을 압박해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료 이아무개(40)씨는 “허리와 어깨, 다리를 동시에 매는 신형 안전띠만 지급됐어도 장씨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신형 안전띠의 값은 3만6천원이었고, 구형 안전띠는 1만5천원이었다. 회사 쪽은 장씨가 숨지고 나서야 신형 안전띠를 지급했다.
“산재 처리하는게 안전시설보다 싸게 먹힌다”
‘비용 절감·기간 단축’ 에 비정규직 사각지대로
50명미만 작업상서 노동재해 70%이상 발생

힘들고 위험한 일이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몫이 되면서, 산재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늘고 있다. 4월 보건사회연구원이 1999~2003년 통계청 사망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임시·일용직은 상용직에 비해 사망위험이 3.01배, 기타 비정규직도 2.75배가 높았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산업단지만 하더라도, 2001~2004년 산재로 숨진 노동자 29명 중 17명(59%)이, 전체 정규직 숫자의 절반도 안 되는 비정규직이었다.

이윤확대에 골몰하는 원청회사들과 한계선상의 공사(납품)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들은 비용절감이나 공기단축에만 매달리며, 위험한 일은 가장 임금이 싼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넘기고 있다.

3일 밤 9시께 전남 여수산단의 한 공장에선 전기·토목·기계 등 10여개 하청업체의 일용직 노동자 100여명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설비증설 작업을 벌였다. 10층 높이의 대형 관로를 따라 설치된 발판 위를 분주히 오가던 손아무개(40)씨는 파이프 절단기의 굉음 속에서, “아침 8시부터 일을 했다”며 “공기 막바지엔 하루 22시간도 일한다”고 말했다. 공기단축으로 한 푼이라도 더 남기려는 업체들과, 일감 불안에 시달리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이들에게, 쌓인 피로가 부르는 노동재해의 ‘비극’은 그저 ‘운수’나 ‘운명’일 뿐이었다.

울산공단의 한 설비보수업체의 사장(42)은 “정상가의 50~75%로 대기업들의 공사를 맡기 일쑤여서 어쩔 도리가 없다”며 “산재 처리와 보상 비용이 안전시설이나 장구를 갖추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힌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와 고용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터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안전교육에서도 소외된다. 6월23일 오전 11시께 충남 아산시 탕정면 삼성전자 엘시디공장 공사 현장에선, 리프트를 타고 천장 도색작업을 하던 김아무개(40)씨가, 리프트 작동을 잘못하는 바람에 철골 구조물에 얼굴이 끼이는 사고로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하청업체 ㅎ사에 비정규직으로 일한 지 한달 만이었다. 이처럼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숙련 노동자들의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다.

김대훈 여수지역건설노조 조직국장은 “여수산단에 있는 석유화학공장들의 대정비 작업 때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마스크 하나만 쓰고 유해물질로 그득한 탱크 안으로 들어간다”며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들에 대한 작업환경측정이나 특수건강검진이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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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클린사업’ 영세사업장엔 그림의 떡…이중적 고용 구조·하도급 관행 없어져야

“거대장치산업이나 대규모 제조업에선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거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몫이 되어 버렸고, 전통적인 산재 다발 부문인 건설업과 영세 사업장의 산업 안전·보건은 전근대적 수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김은기 민주노총 산업안전부장)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노동재해의 심각한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노조 간부들이나 전문가들은 고용 구조의 이중성과 하도급 관행에 기인하는 바 크다고 설명한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이나 노동건강연대 등의 조사와 통계를 보면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원청업체 노동자들에 비해, 재해율에선 2배 이상,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 산재사망자 수)에선 4~10배 이상 높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관계자는 “비정규직은 대부분 노동강도도 세고, 작업도 힘들고 무거운 것을 다루니 재해율이 높은 게 당연하다”며 “가려져 안 보이는 직업병 등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등의 통계를 보면, 노동재해의 1/5은 노동자가 5명 미만인 영세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50명 미만의 소기업까지 치면 이들 노동자가 전체 노동재해의 70%를 넘는다.

지금까지 정부는 영세사업장의 안전과 보건을 위해 노력해왔다. 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공단이 50명 미만 고용 사업장의 안전·보건설비 시설자금을 지원하는 ‘클린(Clean) 사업장 조성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2003년엔 3842개 업체에 365억원을 지원했고, 올해엔 1천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원받은 사업장에선 개선의 효과도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국 곳곳 영세사업장의 전반적 형편은 제자리이거나 뒷걸음질치고 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간사는 “50명 미만 고용 사업장이 국내 전체 기업의 99%인 310만 곳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건실한 0,001%에만 지원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클린 사업장은 절대 다수 영세사업장과 노동자들에게 ‘그림의 떡’일뿐”이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이중적 고용구조’와 ‘다단계 하도급 관행’의 개선이 근본적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진단이다. 이들은 “정부와 사회도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좌우하는 일터의 안전과 보건 문제에 관한 한 동일한 안전보건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지와 합의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영세사업장의 경우, 정부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단순한 시설지원 방식도 문제”라며 “선진국 처럼 교육 등 다각적이고도 종합적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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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서울 성수동 영세 공장촌

▲ 1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금속공업사에서 한 노동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작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루 꼬박 열몇시간씩 일하지…
돈없어 병원도 못가…4대보험 꿈도 못꿔
휴식·샤워…딴나라 얘기

서울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성수역 사이의 거리엔 무려 1300여개의 영세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서울에선 드문 ‘준공업지역’이며 도시 저소득노동자들의 대표적인 일터이다.

9일 오후 금속가공업체인 ㅅ정공. 오후 2시의 햇빛 덕에 훤한 바깥과는 달리, 40평 남짓한 작업장은 동굴처럼 어두웠다. 작업장 한켠에서 김아무개(35)씨가 절삭기로 쇳덩어리를 깎기 시작하자 미세한 쇠조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쇳조각의 순간 온도는 700℃. 그러고 보니 김씨의 팔은 온통 작은 화상 상처 투성이었다. 쇳덩이들을 자르고 갈아대는 작업장은 온통 쇳가루 먼지로 가득했다. 소형 환풍기 3개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드러난 피부는 어느새 쇳가루들로 서걱거렸다. 하지만 김씨는 “주변 모든 공장이 마찬가지”라며 “직업상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인근의 ㅅ산업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녹’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아무개(33)씨 등 2명이 강렬한 용접불꽃 앞에서 맨눈으로 주방용 선반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불꽃을 맨눈으로 3번만 봐도 눈이 아파 밤잠을 못 잘 정도”라면서도 “불편해 안전구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근처 ㅅ섬유 공장에선 윤아무개(51)씨 단 한 사람이, 소매 부분 옷감을 짜는 소형직물기 24대를 돌리고 있었다. 이날은 일감이 없어 15대만 돌고 있는데도, 35평짜리 공장에선 소음 때문에 고함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보통 하루 12시간 일하지. 밖에 나가면 귀가 멍멍해. 돈 없어 치과도 못 가는데 귀 멍멍하다고 병원 가는 건 엄두도 못 내.” 한 달에 160만원 가량 받는다는 윤씨는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쉴새 없이 좌우를 오가며 고속으로 움직이는 기계 바늘을 피하지 못하면, 그건 온전히 윤씨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성수동 지역에만 수백 개가 있다는 구두공장들에서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꿈나라’ 얘기였다. 제화노동자 최아무개(43)씨는 “월급제가 아니라 만든 구두 개수 만큼 돈을 받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화장실도 못 가고, 본드칠하던 손으로 그 자리에서 밥을 먹는다.” 이들은 가죽으로 신발모양을 만들고, 장식을 하고, 본드로 붙이는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한다. 하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구두 값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성수동 일대도 여느 영세공장 밀집지역처럼, 휴식이나 쾌적한 식사, 퇴근 전 샤워 같은 건 ‘꿈’에서나 이뤄질 수 있는 일이었다. 휴게실이나 식당을 갖춘 사업장도 찾기 힘들다. 공장 문을 나서면 다른 공장만이 보일 뿐 나무와 꽃 뿐 아니라 벤치도 없다.

인쇄업체인 ㅇ사 노동자인 최아무개(38)씨는 “일을 하다 다치거나 직업병을 의심하는 노동자들은 많지만, 공장의 지불능력이나 사장과의 관계 때문에 건강검진이나 산재보험 같은 건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 보건활동을 펴고 있는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간사는 “사람이 어찌 밥만 먹고, 일만 하며 살 수 있겠느냐”며 “그렇지만 성수동에 가면 ‘너희는 그렇게 살아도 돼’라고 이 사회가 말하는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특별취재팀 y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