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공기가 당신을 죽이고 있다”

지하환경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지하환경 석면과 라돈 노출 심각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물론 이를 이용하는 시민의 건강도 석면과 라돈 등에 노출된 공기로 위협받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 서울지하철 한 전기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92년 입사해 13년간 지하철에서 근무한 37세의 젊은 노동자였다. 그는 흡연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폐암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9월 직업병으로 인정했다. 이는 사실상 발암물질인 석면과 라돈 등에 노출된 지하철 근무환경이 폐암의 원인이 됐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하철 공기 오염 심각하다

실제 지하철 공기는 ‘장난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객차와 승무원실은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등의 오염물질에 노출돼 있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지하철 노동자와 시민들은 심각한 건강권 위협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연맹과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27일 오후 공공연맹 회의실에서 ‘지하환경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 연구결과 발표회를 가진 가운데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사진>

<사진=공공연맹>

박동욱 방송통신대 교수(환경보건학)는 ‘승무원실에서의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발생특성’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지하 환경, 특히 객차의 공기 오염이 매우 심각하다는 지적을 했다. 박 교수가 지하철 1~4호선 승무원실의 미세먼지(PM10, PM2.5)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사한 결과, 1, 2호선 승무원실의 미세먼지(PM10)는 실내기준(150ug/㎥)을 웃돌았으며, 이보다 더 미세한 먼지(PM2.5)도 지상·지하가 거의 대기기준(65ug/㎥)을 훨씬 웃돌았다.<그래프 참조> 그만큼 지하환경의 미세먼지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특히 시민이 직접 이용하는 객차의 먼지 오염도가 가장 컸으며 그 다음이 승무원실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 역시 환기지표인 1,000PPM을 1~4호선 승무원실 모두 기준 초과했다고 밝혔다. 이를 초과할 경우 신선한 공기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승무원실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는 환기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사정은 객차도 마찬가지.
박 교수는 “지하철 환경은 먼지, 라돈, 각종 화학적 인자 등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다”며 “신선한 공기가 공급될 수 있도록 환기구조 개선이 시급하며 오염도를 낮추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석면과 라돈 노출 기준치 초과

지하환경의 석면과 라돈 노출 사례와 그 심각성이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곽현석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지하역사의 환경, 지하철 노동자의 작업환경’ 주제발표에 따르면 석면 노출 사례는 지난 2001년 서울지하철공사가 지하공간 화학적 유해인자를 조사한 결과 전동차용 부품 중 각종 배관용 가스켓, 아크슈트, 브레이크라이닝 등에서 많게는 90%이상의 백석면이 검출됐고 내장재로도 천장보드의 지하철 역사의 경우 1~5% 백석면이 검출된 바 있다. 또 2001년 환경운동연합,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서울지하철노조가 냉난방공사 중인 지하철역 10곳 중 공사가 끝난 2곳을 조사한 결과 일부 건축자재와 환기시설의 먼지에서 석면이 검출됐고, 공기중 석면농도는 미국의 실내환경 기준치를 초과했다.

라돈 노출 역시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라돈은 무색, 무취의 기체로 지각에서 발생해 토양이나 지하수를 통해 공기중으로 방출되는 것으로 지속적인 노출시 폐암(공기)이나 위암(수질)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003년 서울 지하철역 중 지상구간을 제외한 239개 지하역 승강장 및 매표소와 29개 환승통로에 대해 미세먼지와 라돈농도를 조사한 결과, 11개 역사 승강장과 1개 환승통로에서 권고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라돈은 깊이가 깊은 노선일수록 농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지하로 갈수록 환기의 어려움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지하철노동자 오염된 지하환경 노출

▲ 전기실에어청소(왼쪽)와 전기모터카작업(오른쪽).

지하철 노동자들은 이같은 지하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진노동환경연구소가 올 상반기 도시철도공사에서 실시한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따르면, 전동차 운행이 끝난 심야시간대 터널에서는 기술직렬 각 부서 노동자들이 레일연마, 터널물청소, 전기모터카작업<사진>, 전기실에어청소<사진> 등 매우 높은 농도 수준이 먼지에 노출돼 작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같은 작업수행시 먼지가 지상으로 배출될 경우 민원 등의 우려로 터널내 환기를 가동하지 않고 작업하는 경우도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곽현석 연구원은 “지하공간은 상대적으로 밀폐돼 있기 때문에 환기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장기간 오염물질에 정체될 수 있다”며 “차량운행에 의해 타 역사나 승강장 등으로 확산돼 지하공간을 전체적으로 오염시킬 수 있으므로 장기간 지하공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하철 노동자를 위한 법적인 규제와 예방, 관리방안은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환경부는 2003년 5월 지하생활공간공기질관리법 등을 다중이용시설등의실내공기질관리법<표 참조>으로 확대·개정해 지하철 환경을 포함한 실내환경을 관리하고 있으나 지하철의 경우 1년에 1회 역사나 승강장에서 24시간 동안 측정하도록 강제하는 정도이다. 정작 승객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객차환경에 대한 정부의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

부처별 실내공기질 관리현황

담당부처 환경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교육인적
자원부 건설
교통부
기준물질
적용대상 다중이용시설
(지하역사, 의료기관, 찜질방 등 17개 시설군) 공중이용시설
(학원, 공연장, 업무시설 등) 사무실, 작업장 학교 주차장
(2000㎡
이하)
근거법 다중이용시설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 공중위생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보건기준에
관한규칙 학교보건법 주차장법
측정항목 10개 항목 (미세먼지, CO,
CO2, NO2, HCHO, 총부유세균, 라돈, 휘발성유기화합물, 석면, 오존) 3개항목 (미세먼지, CO, CO2) 4개항목 (호흡성먼지, CO, CO2, HCHO) 2개 항목 (미세먼지, CO2,) 1개 항목
(CO)
관리방법 다중이용시설 유지기준 준수, 다중이용시설에 환기설비 설치, 신축 공동주택 실내공기질 측정ㆍ공고 공기정화시설 교체ㆍ청소 필요시 사무실 공기정화, 실외 오염물질의 유입 방지(건물 개ㆍ 보수시 공기오염 관리) 연1회 점검 의무 및 적정조치 강구 적정 환기설비 설치

또한 노동부의 산업안전기준에관한규칙에서는 사무실과 작업장만을 적용대상으로 하고 있어 지하환경에서 근무하는 지하철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환경관리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곽현석 연구원은 “지하철 전기노동자에게 발생한 폐암이 직업병으로 인정된 것은 발암물질에 대한 노출과 폐암 간의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이는 해당 작업자나 해당 작업공정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지하환경의 특성상(밀폐 공간, 환기 부적절, 열차풍에 의한 오염물질 확산 등) 향후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날 발표회에서 한상국 서울지하철노조 산업안전보건부장은 “전국의 2만5천 지하철 노동자 중 교대근무자는 1만5천명으로 이들의 상당수는 지하공간에서 근무하고 있다”며 “그러나 절대다수 노동자가 근무하는 지하공간은 그동안 사회적으로 관심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법적 제도적 관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며 근본적인 지하환경개선을 촉구했다.

또한 공공연맹은 이날 객차 및 승무원실 등도 환경관리, 심야시간 지하터널 안전작업지침 제정·관리, 지하철노동자 작업환경측정·특수건강검진 실시(퇴직노동자 포함), 지하철 노동자의 유해인자 노출에 대한 정밀환경조사, 지하철공사 및 서울시의 관리시스템 평가 및 실질적 관리방안 모색, 스크린 도어 도입에 대한 사후평가 및 재검토 등을 촉구했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

2005-09-28 오전 11:40:25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