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스트레스…직장인 3명중 1명 ‘불안장애’

[한겨레 2005-10-03 20:39]

[한겨레] 노동자에게 노동재해는 작업중 다치거나 죽는 것만이 아니다.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직업병도 중대한 노동재해 가운데 하나다.

산업화의 진행 및 노동구조의 변화에 따라 직업병도 변화 폭이 커지고 있다. 진폐증과 근골격계 질환 등 육체노동자 중심의 전통적 질환에 스트레스, 과로사 등 사무직노동자의 새 직업병이 가세하며 저변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직업병 전문 산업의학자들은 정보화 및 지식집약적 산업구조가 노동자들의 직업병 양상도 크게 바꿔놓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직가능성·과도한 업무등으로

직무 스트레스 확산

첨단장비 동원한 작업감시로

정신질환 부쩍 늘어나 직무 스트레스 확산=정진주 여성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조사 자료를 보면 직무 스트레스를 받아 생길 수 있는 대표적인 질환인 뇌심혈관계 및 정신질환이 지난 3~4년 동안 2~3배 가량 늘어나고 있다”며 “직무 스트레스는 근골격계 질환과 함께 현대 직업병의 양대 산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종민 인제의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가 남녀 직장인 3732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보면 직장인 3명 가운데 1명은 실직 가능성, 과도한 업무, 직장 내 불화 등 때문에 불면, 우울, 화병 등 불안장애 증상을 보였다. 정 연구위원도 “각종 조사에서 직무 스트레스로 과도한 긴장을 하는 집단이 해마다 늘고 있다”며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떠오르는 정신질환?=새롭게 등장한 가장 대표적 직업병은 정신질환이다. 발병 원인은 첨단장비까지 동원하는 회사와 관리자의 집중적인 작업 감시가 우선 꼽힌다.

한국통신은 2003년 12월 구조조정 대상 노동자들을 ‘상품판매전담반’이라는 신설조직에 배치한 뒤 별도로 집중 관리했다. 해당 노동자들은 심각한 적응장애와 불안증에 시달렸다. 결국 그 가운데 4명이 ‘정신질환’으로 산재요양 판정을 받았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도 비슷하다. 4년 동안 노조와 회사와의 갈등 과정에서 회사 쪽의 고소·고발, 직장폐쇄, 부당 배치전환, 시시티브이나 녹음기 등을 동원한 감시 등을 겪으며 여성 조합원 13명이 정신질환을 얻었다.

이들을 진찰한 배기영 정신과 전문의는 “해당 노동자들이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 우울증, 안면근육 마비 등을 겪고 있었다”며 “10여가지 정신질환을 파악하는 임상심리검사를 통해 이들은 우울증을 동반한 적응장애로 진단됐다”고 설명했다.

산업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선진국의 전례를 따라, 우리나라도 첨단기술 장비로 노동자를 감시하는 노무관리가 여러 직업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무직으로 옮겨간 근골격계질환=과거 육체적 노동자들에게 주된 것으로 여겨졌던 근골격계 질환이 병원이나 사무직 노동자에게도 확대되고 있다.

최근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 건강한 노동세상 등이 공동으로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3.7%가 근골계 질환이 의심되는 증상을 보였다. 2003년 민주노총에서 금속제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나온 근골격계 질환 의심자 비율 18.1%보다 높은 수치였다. 특별취재팀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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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4∼5%는 직업병 추정”

천식과 같은 호흡기계 질환이나 암 등 전통적 질환 등도 직업 관련 질환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 환경질환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전체 암 가운데 4~5%는 직업성 암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마다 암으로 죽는 이들이 10만명 가량 되므로 한해에 4천~5천명이 직업성 암으로 죽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이전 연구 결과에서도 석면 때문에 폐암이나 악성중피종에 걸렸다거나, 여수산업단지 지역에서 유기용제나 벤젠 때문에 암에 걸린 사례들이 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3년 동안 암에 대한 요양신청에 대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비율이 17.7%였다. 단 의원은 “업무상 질병에 대한 요양승인률이 현재 80%에 이르고 있는데, 암에 대한 요양승인률은 17.7%에 그친다”며 “암이 스트레스나 환경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므로 공단이 암에 대한 장기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등과 같은 호흡기계 질환도 직업병 인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직업성 천식에 대해 연구해 1999년 말 발표한 결과를 보면 직업성 천식 발생 위험이 높은 사업장 및 노동자 수는 각각 3만3106개, 122만7900명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이소시아네이트라는 물질 때문에 직업성 천식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7561~1만147명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산재’가 인정된 경우는 125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드러나지 않은 환자가 많은 셈이다. 직업성 천식의 증상이 환자마다 다른 경우가 많고, 발병 기간이나 잠복기 등도 변화가 많아 일괄적인 기준에 맞추기도 쉽지 않다.

암이나 천식 등의 호흡기계 질환이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 질환의 발생 원인이 ‘직무’라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병연구센터 최병순 소장은 “직업과의 연관성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나 연구로 시급히 직업병 인정과 관련된 논란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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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노동구조 악화 과로사 급증” 사 “무분별하게 직업병으로 판정” 새롭게 등장한 대표적 직업병의 하나는 과로사다. 그러나 과로사에 이르는 다양한 원인과 ‘일’과의 연관성을 둘러싼 노사 사이의 이견은 직업병 분야에 있어서 노사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수근 방사선보건연구원 박사 등 산업의학 전문의들의 말을 종합하면, 2000년대 들어 과로사는 1990년대 중반의 3~4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특정 기간 동안의 집중적인 노동 부하나 각종 스트레스, 고혈압, 당뇨 등의 원인 질환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런 과로사 급증의 이유를 노동구조의 변화에서 찾는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부장은 “비정규직 등 노동구조의 변화와 세어진 노동 강도 등으로 직업성 과로사의 문제는 더 심각해져 가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박사도 “평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과로사 가능성을 높이는 질환이 만연하고 있는 점도 있지만, 출장, 파견, 교대 등 충분히 쉴 시간을 주지 못하는 여러 근무 형태로 인해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게 과로사 증가의 원인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반면 사용자단체는 “일본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과로사에 대한 산재승인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과로사를 무분별하게 직업병으로 판정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부 전문의들도 “여러 노동조건의 변화 등으로 과로사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업무상 뇌·심혈관질환으로 인한 과로사 인정이 다른 직업병에 비해 느슨하게 이뤄지는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산업의학 전문의들과 노동건강운동단체들은 “(과로사에 관한) 적절한 판단 기준과 준거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고강도 노동 조건과 과로사 사이의 구체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앞으로 직업성 과로사 문제 뿐만 아니라 새롭게 등장한 여러 직업성 질환의 산재 인정 여부를 두고도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라며 “논란에 앞서 노동 조건을 원천적으로 개선하는 사회적 노력이 우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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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반=양상우 김기성 정대하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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