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당신을 노리는 라돈!
[한겨레21 2005-10-07 18:09:11]
[한겨레] 작업 노동자를 죽음으로 몬 석면처럼 승객들의 위암·폐암 유발 가능성한곳만 오염돼도 환승역 통해 전체 역사·노선·지하공간의 문제로 확산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최근 37살의 젊은 지하철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지하 터널에서 전동차에 전력을 공급해주는 전차선을 점검하고 각종 전기 관련 설비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았던 노동자였다. 숨진 노동자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직업병 인정을 받았다. 지하철 역사와 터널에 흩어져 있는 석면과 라돈에 장시간 노출돼 폐암이 유발됐다는 점이 인정된 셈이다.
환승역 등 실내 라돈 농도 높아
지하철 역사는 지하철이 끊임없이 운행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여러 곳으로 흩어지는 특성이 있다. 이른바 ‘피스톤 영향’인데, △바깥 지상에서 유입되는 도로변 먼지와 매연 △지하철 승객들의 옷과 신발 등에 묻은 오염물질 △지하공간 내부의 건축자재 등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 등이 모두 섞인다. 게다가 지하철 공간은 출입구나 급·배기구를 통해 외부 공기와 소통되고, 환승역을 통해 복잡한 노선들이 서로 연결된다. 지하철 실내공기가 오염될 경우 어느 한 공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역사, 전체 노선, 전체 지하공간의 문제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하루 500만명에 가까운 인구를 실어나르는 지하철의 실내공기 오염은 승객은 물론 지하 공간에서 근무하는 지하철 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석면의 경우 지하철 역사와 터널에 사용된 각종 배관과 전기장치에서 많게는 90% 이상의 백석면이 검출됐다. 지하철 역사의 냉·난방 개·보수 공사 때는 작업 노동자들이 석면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석면이 함유된 건축자재를 해체해야 하고, 공사 중에는 환기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1년 4월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등이 냉방 공사 중인 지하철역 1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청역의 경우 밤낮 할 것 없이 환승 통로와 승강장에서 호흡성 먼지와 공기 중 석면 농도가 기준치(외국의 허용기준 0.01개/cc)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측정 결과 석면 농도는 지하 1층 환기실에서 밤에 0.026개/cc, 지하 2층 매표소에서 밤에 0.015개/cc, 지하 2층 통로에서 낮에 0.015개/cc로 나타났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곽현석 연구원은 “지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호흡기 질환 때문에 감기에 걸렸을 때도 회복 기간이 상당히 길어진다”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석면에 대한 작업장 노출 기준으로 0.1개/cc,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 관리법은 석면 권고 기준으로 0.01개/cc를 제시하고 있는데, 석면 작업장 노출 기준은 석면암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석면폐 정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라돈은 암석이나 토양에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우라늄에서 생성되는 기체로 지상의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 건물의 지반에서 방출된 라돈 가스가 건물 바닥의 갈라진 틈을 통해 실내로 들어와 라돈 농도가 증가하게 되는데, 라돈은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환기 상태가 나쁜 지하 공간에서는 심각한 오염물질이다. 라돈은 먼지 형태로 공기 중에 떠돌다가 인체에 들어갈 수 있고, 폐에 흡착돼 장기적으로 폐암을 유발한다. 미국 환경청은 라돈 ‘실내’ 관리기준 농도로 4pCi(피코큐리)/ℓ를 제시하고 있다. 곽 연구원은 “국내에서 폐암 사망과 관련해 라돈의 발암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데, 사실 라돈은 지하철 역사의 공기질 관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유해인자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2002년 조사에서 사당역 지하 3층에서는 미국 기준(4pCi/ℓ)을 초과하는 라돈 농도가 검출됐고, 2003년 연구에서는 화강암을 기반암석으로 하는 6개 지하 역사에서 미국 권고기준을 초과하는 라돈 농도가 검출됐다. 특히 환승역 등 지하수 발생이 많은 역사일수록 실내 라돈 농도가 높았다. 2003년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239개 지하철 승강장과 매표소, 29개 환승 통로를 대상으로 라돈 농도를 조사한 결과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 3호선 충무로역 등 11개 역사 승강장과 동대문운동장역 환승 통로에서 권고기준을 초과했다.
청계천에 방류할 지하수가 위험하다?
지하철 터널에는 항상 지하수가 흐른다. 한 연구를 보면, 라돈 농도가 높은 지하철 역사의 경우 지하수에서 라돈이 1471∼9689pCi/ℓ까지 검출됐다. 3호선 안국역의 지하수에 함유된 평균 라돈 농도는 6000pCi/ℓ이상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하로 내려갈수록 지하수의 영향, 토양, 환기율 저하로 인해 라돈 농도가 증가한다. 곽 연구원은 “라돈은 석면에 비해 지하 공간 실태 파악이 더 안 돼 있다. 지하철 지하수에서 라돈 농도는 매우 높다. 지하철을 보수·점검하는 노동자들은 지하수를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라돈 노출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에 지하 작업환경에 관한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지하철 노동자들은 작업환경 측정이나 특수건강검진에서도 제외돼왔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라돈에 오염된 지하수를 마시면 위암이, 라돈에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 폐암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하철 역사의 지하수를 청계천에 방류하겠다는 서울시는 과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지하수에 함유된 라돈이 공기 중에 비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 역사와 터널에서 미세먼지는 어떨까? 미세먼지는 △크기가 직경 10㎛ 이하인 PM10 △직경 2.5㎛ 이하인 초미세먼지(PM2.5)로 나뉜다. 미세먼지는 0.5∼5.0㎛ 정도면 폐를 통해 혈관에 침입하는데, 인체에 피해를 끼치는 건 대부분 폐에 그대로 흡착되는 PM2.5다. 현행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 관리법은 PM10에 대해 24시간 평균치로 150㎍/㎥를 제시하고 있을 뿐 PM2.5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준도 없다.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 5월 지하철의 지하 터널 심야작업 중에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측정한 결과, 레일연마 작업의 경우 PM2.5 농도는 작업시간당 평균 576㎍/㎥으로 전체 PM10(작업시간 평균 1580㎍/㎥)의 36.5%로 나타났다. 터널 외벽 물청소 작업의 경우 PM10 가운데 PM2.5는 20.8%였다. 곽 연구원은 “측정된 PM2.5 비율은 지하 터널의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지하철 운행이 끝난 심야 시간대에 지하 터널에서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일수록 미세먼지와 라돈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밤에 지하 터널의 환기장치가 모두 꺼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여러 작업 중에 발생한 미세먼지들은 터널 안에 장시간 머물게 되는데 전동차 운행과 함께 인접 역사로 계속 퍼져나간다.
이산화탄소 많아 졸음 싣고 달린다
한국방송통신대 박동욱 교수(환경보건학과)에 따르면, 전동차 객차 실내공기를 측정한 결과 1호선 동대문∼종로5가 구간을 운행 중일 때 미세먼지가 207.5㎍/㎥로 나타났다. 실내공기질 기준치(150㎍/㎥)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객차 안의 초미세먼지는 평균 118.4㎍/㎥로 홍콩(44㎍/㎥), 멕시코(61㎍/㎥)보다 더 높았다. 지난 3∼9월 승무원실 실내공기를 측정했을 때, 1∼2호선 승무원실은 지하 운행구간에서 PM10이 실내기준치보다 높게 나타났고 종로3가∼종각 구간은 330.2㎍/㎥로 가장 높았다. PM2.5도 1∼2호선 승무원실에서 미국 기준(24시간 평균 65㎍/㎥)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승무원실의 이산화탄소는 안전운행과 직결된다. 실내공기가 이산화탄소 허용한도(1천ppm)를 초과하면 신선한 공기가 부족해 졸음이 쏟아지게 된다. 지하철을 타면 졸리는 건 객차에 신선한 공기가 잘 공급되지 않고 이산화탄소가 쌓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팀의 측정 결과 지하철 1∼4호선 승무원실 모두 이산화탄소 농도가 기준치를 훨씬 초과해 4천ppm까지 올랐다. 박 교수는 “바깥 도로의 자동차 배기가스가 지하철로 흘러들어오는데, 자동차 연소물은 입자 크기가 매우 작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객차와 승무원실에 신선한 공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오염된 지하철 공기가 여과 없이 객차로 공급되고 객차에서 오염된 공기가 그대로 승무원실로 유입되는 구조라서 승무원실은 객실의 공기질보다 5배 정도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노조 한상국 산업안전부장은 “서울지하철을 빼고 도시철도공사와 부산·인천·대구 지하철은 모두 1인 승무제라서 기관사 혼자 운전하기 때문에 졸아도 뭐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고, 결국 승객들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승무원실은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아 졸음을 싣고 달리는 지하철”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