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면 죽·는·다!

[오마이뉴스 2005-10-11 11:01:42]

[오마이뉴스 장영미 기자] 요즘 일본에선 일명 ‘시한폭탄 찾아내기’가 한창이다.
지난 9월 28일 국토교통성의 중간보고에 의하면 전국의 민간빌딩 및 아파트 7000여 동에서 문제의 ‘시한폭탄’이 발견되었다. 이어 9월 29일 문부과학성은 전국의 공립 초·중·고등학교 142곳의 천정, 급식실, 창고 등에서 이 ‘시한폭탄’이 발견됐다고 보고했으며, 10월 4일에는 전국 341개 병원과 498개 복지시설에서도 이를 발견했다고 후생노동성이 전했다. 아직 조사 단계이므로 앞으로 어디서 어느 정도가 더 발견될지는 예측불허다.

‘조용한 시한폭탄’이라 불리며 일본 전역을 긴장시키고 있는 이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한때 ‘마법의 광물’로 불리며 약 3000여 종으로 제품화 돼 생활전반에 스며든 ‘석면’이 바로 그 주범이다.

지난 6월 말 대규모 기계제조업체인 ‘구보타’가 자사의 옛 간자키공장 인근 지역 주민 3명에게 석면피해보상금을 지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작된 ‘석면 공포’는 석 달여가 지난 지금 일본 전역으로 확산된 상태다.

‘마법의 광물’에서 사람 잡는 ‘시한폭탄’으로

석면은 단열성, 내화성, 전기절연성, 내산성, 내마모성이 뛰어난데다 가공하기 쉽고, 저렴해 건축자재, 슬레이트 지붕, 천정, 벽, 마루 등의 내장, 배관단열재, 수도관 등에 폭넓게 사용된 천연광물이다. 또한 기계, 화학설비, 운유, 자동차 등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이 광물이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석면이 ‘마법의 광물’로 불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렇듯 유용한 마법의 광물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사람 머리카락의 5천분의 1정도의 굵기의 석면분진이 인간의 폐에 꽂히면 진폐, 폐암, 악성중피종, 호흡장해 등을 일으키게 되는 것. 특히 악성중피종은 흉막, 복막, 심막에 생기는 종양으로 주로 석면과 관련이 깊다. 이런 질병들이 석면을 어느 정도 흡입할 경우 발병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단, 흡입 후 30~40년의 잠복기간을 거쳐 발증하며, 현재까지 유효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발증 후 5년 뒤 생존율은 3.7%에 불과하다.

일본은 고도경제성장기인 60~70년대 다량으로 석면을 수입했고, 이 석면들은 건축 붐을 타고 건축자재에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구 재무성이 작성한 무역통계표에 따르면 일본은 1974년에 가장 많은 양의 석면을 수입해 무려 35만 톤에 달한다.

석면피해를 사회문제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된 구보타의 간자키 공장도 57년~75년, 연간 540~7669톤의 독성이 강한 청석면을 사용해 수도관을 만들어왔다. 간자키 공장은 70년대 초 청석면의 유해성이 문제가 되면서 75년부터 사용을 중단했지만 79년 공장 직원 등 3명이 석면 진폐로 사망한 이후 지금까지 석면 관련 질환으로 79명이 사망하였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알려졌다. 이는 종업원의 10%에 이르는 수치다.

이어 일본 최대의 석면업체인 ‘니치아스'(옛 일본석면)도 76년~2004년까지 전국의 자사공장에서 종업원 86명이 중피종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후 직접 석면을 다루던 기업뿐만 아니라 조선, 자동차, 건설 등 석면 함유제품을 다루던 분야에서도 중피종 등 석면 관련 질환 사망자가 있었다는 게 속속 밝혀지면서 석면공포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특히 석면작업과 아무 관계가 없는 공장 인근지역 주민의 피해사례는 일반인에 대한 ‘2차 피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2040년까지 석면피해 사망자 10만 명 예상

일본인들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를 압축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향후 피해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60~70년대에 석면을 흡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겐 30~40년 잠복기가 끝나가고 있는 현 시점이 발병시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당시에 석면이 다량으로 살포 부착된 건물들이 이미 노후화해 향후 10년 내에 해체 및 개수공사가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때 비산하는 석면을 흡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기적인 점이 석면을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일컫는 이유이다.

8월26일자 경제산업성 발표에 의하면 석면제조기업 및 기타기업 59사에서 451명이 석면으로 인해 사망하고 106명이 치료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와세다 대학 이공학부의 무라야마 다케히코 교수는 8월26일자 <주간 금요일>에서 “2040년까지 10만 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일부에서는 석면에 의한 건강피해를 단순한 노동재해를 넘어 공해로 봐야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둘째는 누가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피해사례가 속속 밝혀지면서 단순한 직업병을 넘어 가족 및 공장 인근지역 주민 등 일반인에 대한 2차 피해사례까지 드러나고 있는 것. 석면이 묻은 남편의 작업복을 세탁해 온 주부, 아버지의 마스크를 쓰고 놀았던 자녀, 공장 인근지역의 주민 등이 중피종에 걸린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학교 시설과 병원, 건물 주차장, 철골 및 천정 등 각종 건물에 남아있는 석면도 골칫거리다. <아사히 신문>은 “전 철도역의 40%에 달하는 3700여개 역사에 석면이 포함된 건축자재가 사용된 채로 남아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을 더욱 긴장시키는 것은 건물 외에도 석면이 두루 사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경제산업성은 9월12일 가정용품 중 석면이 사용된 124개사의 521개 제품을 발표했는데,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오븐, 난방기, 다리미, 전기스탠드, 시스템키친, 헤어드라이어, 토스터 등 방대했다. 또한 일부 베이비파우더, 다리미대, 오븐장갑, 냄비받침, 생선구이망, 실험용 철망, 도료, 접착제, 수도관 및 배관 등에도 석면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대부분의 제품은 평상시 사용할 때는 석면방출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장 또는 폐기 시의 영향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일본 정부, 알고도 석면유해성 외면

셋째,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국민들은 일본 정부가 오래 전부터 석면의 유해성을 인지했으면서도 성청간 불연계, 늑장행정과 안이한 대처로 일관해왔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 일본 정부 내에서도 이미 몇 차례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76년 구 노동성이 각 도도부현의 노동기준국장 앞으로 보낸 통달문에는 석면의 유해성과 건강장해에 대한 방지조치를 요구하는 내용과 함께 영국의 논문을 인용해 가족 및 공장주변 주민의 2차 피해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성은 공장내부는 자신들 소관이지만 주민피해는 당시 환경청 소관이었다는 것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7월20일의 중의원 후생노동위원회의 석면문제집중심의에서 밝혀졌는데 정부내의 고질적인 병으로 지적되고 있는 성청간 업무연계가 이루어지지않는 데서 생긴 폐해라는 비난을 받고있다.

또한 지난 86년 ILO(국제노동기구)는 ‘석면이용의 안전에 관한 조약’을 채택했는데, 일본은 구보타 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 7월에야 겨우 국회의 비준을 얻었다.

87년에는 전국의 초중학교 및 공공시설에 살포부착 석면이 사용된 게 알려져 제거작업을 한 바 있다. 당시 제거작업이 이뤄진 학교는 전체의 3%에 해당하는 1337개교. 그러나 이듬해인 88년, 당시 조사대상에서 누락됐던 제품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음에도 제거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최근 밝혀졌다. 때문에 최근에 다시 각급학교의 ‘시한폭탄 찾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92년 사민당이 의원입법으로 ‘석면전면폐지법안’을 제출했으나 업계와 자민당의 반대로 심의되기도 전에 폐안됐던 사례도 있다. 95년에는 한신아와지대지진 후 건물의 붕괴 및 해체공사로 인해 석면이 날려 크게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이때도 정부의 대책은 미미했다.

발등의 불… 긴장하는 일본열도

일본 정부는 지난 7월29일에야 석면 피해관련 첫 관계관료회의를 열었다. 이어 8월 26일의 회의에서 석면피해에 대한 정부의 인식 및 대응, 관계 성청의 연계가 불충분했음을 인정했다. 이어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9월29일에는 ‘석면신법’의 정부안 골자를 확정했고, 내년 통상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정부의 신법안에는 그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주민, 가족 등 2차 피해자를 노동재해로 인정해 보상하는 것과 재해신청 시효인 사망 후 5년이 넘었어도 보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의 석면문제는 현재 문제발생 단계를 거쳐 조사단계에 접어들었다. 조사가 끝나면 제거 및 폐기단계를 거쳐야하는데 비용이나 안전관리 등의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폐기단계에서도 역시 고비용, 석면비산, 안전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어 석면은 이제 마법의 광물이 아니라 핵폐기물처럼 골칫덩어리의 쓰레기가 되어버린 상태다.

석면 공포, 일본만의 문제 아니다

석면피해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1959년 유럽에서 석면과 악성중피종과의 관련성이 보고 된 이래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유해성이 지적돼 왔다. 1972년엔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석면의 발암성을 지적한 바 있다.

7월18일자 <아사히신문>은 미국의 석면피해 상황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70년대부터 피해사례가 증가한 미국은 석면으로 인한 중피종으로 연간 4000명이 사망하고 있으며, 석면피해에 대한 배상소송 건수도 2003년에만 10만 건에 이른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도산한 기업이 70개사 이상이다. 미국은 85년 환경보호청(EPA)에서 석면의 전면금지를 제안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밖에 독일(93년), 프랑스(96), 영국(99)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2005년까지 석면사용을 전면 금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현재 2008년으로 돼있는 석면 전면사용금지 시기를 2006년으로 앞당기는 안을 검토 중이다. 75년 살포부착 석면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95년에는 독성이 강한 청석면과 다석면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2004년부터는 건자재, 자동차부품 등 석면이 많이 사용되는 10종류의 제품 수입과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한국 또한 석면공포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은 97년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청석면과 황석면의 사용 및 제조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해성이 적다고 알려진 백석면은 여전히 사용중이다. 백석면은 연간 2만 톤 가량 수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석면공포에 이어 한국에서도 강남역 지하상가(6월28일), 김포공항(7월6일), 주안역 지하상가(8월8일), 용평산악썰매장(8월16일), 서울시 8개 초등학교(8월20일), 전철 제동장치(9월9일) 등에서 석면이 검출되었다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 장영미

/장영미 기자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장영미 기자는 일본에서 7년째 생활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다. 일본에 살고있는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타국에 살고있는 한국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가감없는 시선으로 한국과 일본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