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안전국’ 스웨덴 “안전은 돈과 비교할 수 없는 것”
노동재해 왕국 멍에를 벗자 ⑥ 함께 이루는 ‘안전한 일터’

▲ 지난달 27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쪽으로 150km 가량 떨어진 니쇼핑시 말브그리스하겐 지역 거대한 암반 위에서 건설노동자가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기 위한 천공작업을 하고 잇다. 니쇼핑(스웨덴)/특별취재팀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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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스웨덴의 소도시 니쇼핑의 한 택지조성공사 현장. 이른 아침부터 공사장 한켠에선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려 거대한 바위에 구멍을 내는 굴착기의 굉음이 귀를 때렸다. 산자락은 깎이고 바위들은 벌집처럼 변하고 있었다. 혼란스런 공사현장에 견줘 모자와 신발 등 안전복장을 갖춘채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선 ‘질서’와 ‘안정감’이 물씬 배어나왔다.

“스웨덴 땅은 대부분 얇게 덮인 수십㎝의 흙만 걷어내면 모두 바위 투성입니다. 무슨 공사든 일단 암반과 전쟁부터 치러야 하지요. 그 준비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안전을 확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 첫째가 차림새죠.”

스웨덴 최대의 건설회사 ‘스칸스카’의 현장감독 요르겐 라르손은 공사개요를 설명하며 노동자와 주민의 안전부터 강조했다. 실제 북유럽에선 공사 전에 모든 작업에 대한 철저한 위험도 분석 및 대책, 이에 대한 예산이 편성돼야만 공사허가가 떨어진다. 공사허가 뒤에도 현장 감독들은 공종과 작업 내용을 다시 뜯어보며 작업별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수십여개 항목의 점검표를 만들고 나서야 공사를 시작한다.

“돈은 안전과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안전사고나 노동자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되지요. 사고가 나면, 곧바로 공사가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숨지는 중대사고엔 2주~2달까지 공사가 중단됩니다. 현장감독은 해촉되고요. 노동자의 안전확보에 실패한 경력이 있는 현장감독은 다른데서도 자리를 구하기 힘듭니다.”

이곳에선 한국처럼 산재예방 구호가 적힌 요란한 펼침막이나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사무소 복도 벽을 가득메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게시물들은, ‘사고 예방’에 관한 한 ‘만족’을 모르는 스웨덴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고위험 대책·예산없인 공사허가도 받을 수 없어
노동자 숨질 땐 공사중단·현장감독 해촉…한해 50건도 안돼

택지조성 현장 근처에서 전력케이블 매설공사를 하고 있던 스웨덴전력회사의 프로젝트매니저 칼에릭 베르그렌은, “한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비오는 날 고공에서 쇠파이프에만 발을 의지한채 일하는 걸 본 순간 ‘킬링필드’가 연상되더군요. 안전(충격완화)조끼같은 것은 물론이고, 안전모나 안전화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모습에 불쑥 ‘화’가 치밀었습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데 말입니다.”

스웨덴에선 전체 노동자 460만명 가운데, 연간 사고로 숨지는 수가 50명 미만이다.(?5n표 참조) 노동자 수는 한국의 4분의 1 가량이지만 사고로 숨지는 노동자는 3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1950년대 후반에는 업무상 사고사망 빈도는 한국과 비슷한, 연간 400여명이었다.

변화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독립적 정부기관인 스웨덴노동환경청(SWEA)의 베르틸 레마에우스 부위원장은 “스웨덴에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한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 정치적 대립이나 이견이 없다”며 “바로 이 점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기관들에 힘이 실리는 핵심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못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높은 생산성을 낳는다”는 사용자들의 인식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 굳이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스웨덴국립노동연구소의 카이 엘그스트란드 국제협력비서는 “스웨덴엔 (다른 일부 선진국들과는 달리) 노동재해와 관련한 과중한 벌금이나 형사처벌 등의 제도가 없다”며 “그런 제도 없이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사용자들의 주의와 노력이 충분히 확보된다”고 설명했다.

사회와 사용자들의 인식과 철학은, 독일 등 서유럽 지역도 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나라들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300여명의 노동자가 세탁제 등 화학제품을 만드는 회사인 독일 졸바이의 만프레드 스테르너 노동안전위원은 “노동재해는 예방이 최선이라는 게 회사의 경영철학”이라며 “80년대만 해도 노동재해가 한해 10여건 이상 발생했지만, 2000년 이후로는 한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노동자들의 수영장 등에 보조금을 지원할 정도로 노동자들의 건강에 신경을 쓴다”며 “노동자의 건강은 생산성과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꼽히는 스웨덴,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 그들의 경쟁력과 부는 어디에서 왔을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제일로 여기는 사용자와 사회의 인식은 ‘건강한 노동’만이 아니라 ‘풍요로운 나라’도 함께 만들고 있었다.

스톡홀름·니쇼핑(스웨덴) 호이닝겐·세인트아우구스틴(독일)/특별취재팀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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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재해 은폐는 있을 수 없는 일”

스웨덴의 비결은 정확한 재해통계

▲ 지난달 27일 스웨덴 니쇼핑시의 한 택지공사현장 사무실 복도에서 현장감독 요르겐 라르손이 벽에 게시된 ‘사고발생 대응지침’을 가리키며 “재해 은폐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니쇼핑(스웨덴)/양상우 기자 ysw@hani.co.kr

“노동재해 은폐요? 그게 가능한가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웨덴의 니쇼핑시의 택지조성공사 현장감독 요르겐 라르손은 “은폐되는 노동재해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동자가 다치는 사고가 나면, 관리자나 노동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확하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응급조처-112(병원) 신고-사고현장 보존-가족에 대한 연락응급조처와 이 각 단계에 대한 기본 지침이 있습니다. 이 지침을 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스웨덴 노동환경청의 베르틸 레마에우스 부위원장이나 스웨덴국립노동연구소의 카이 엘그스트란드 국제협력비서도 “노동재해 예방를 위한 첫번째가 정확한 재해통계에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이 세계 최고의 노동안전국이 된 데에는 바로 재해 은폐가 없고, 이에 따라 정확한 재해통계와 분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특히 레마에우스 부위원장은 “노동재해가 은폐되면 제대로 된 대책도 세울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재해를 숨기는 것은 재해를 발생시킨 것보다 더 큰 잘못이라는 인식도 분명히 드러냈다.

스톡홀름/특별취재팀 ysw@hani.co.kr

사용자한테만 보험료 받아 노사공동으로 재해예방 노력

독일선 어떻게 하나

“노동재해 예방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자 의무입니다.”

독일직업공제조합연합(HVBG)의 스벤 팀 국장(?5n사진)은 6일 노동재해 예방의 중요성을 거듭거듭 강조했다. 독일 사용자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모든 재해의 책임을 져야 한다. 팀 국장은 “독일 사용주들은 과거 이러한 역사적 전통 때문에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기금을 조성해 사고가 나면 부담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독일 노동재해보험의 담당기관인 26개 직업공제조합은 사용자에게만 보험료를 받는다. 하지만 사용주와 노동자 대표가 동수로 참여해 자치 운영한다. 직업공제조합은 각 산업별로 구체적인 예방지침을 마련해 기술감독관을 통해 감독하고 상담한다.

팀 국장은 “처벌과 강요보다 예방규정을 지키면 유리하다는 점을 인식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에 미용사들이 머리염색약 때문에 피부와 기관지에 이상을 일으키자 전직 훈련에 많은 비용이 지출됐다. 당시 직업공제조합은 염색제조업체 및 연구소와 함께 다른 물질의 염색약을 개발해 해마다 1200만유로를 절감시켰다. 팀 국장은 “결국 노동재해보험료 분담금도 줄어서 경영자에게도 유익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사가 참여해 공동으로 예방에 치중하면서 노동재해도 줄었다. 1960년 전일 노동자 1700만명 가운데 노동재해로 숨진 이가 3021명이었는데, 지난해 전일 노동자 3천만명 가운데 산재 사망자는 645명에 지나지 않았다. 1인 노동자 기준 보험료도 1960년 임금 대비 평균 1.51%에서 2004년엔 1.33%로 줄었다. 팀 국장은 “노동재해도 줄고 사용자의 보험료 부담도 적어져 효율적인 제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고의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로 노동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는 용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술감독관이 3차례나 개선명령을 내렸는데도 노동재해가 일어나면 직업공제조합이 보상해주고 지불액만큼을 사용주한테 받는다. 그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검찰에 사건을 넘긴다”고 말했다.

세인트아우구스틴(독일)/특별취재팀 y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