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공 절대 부족… “10년뒤엔 누가 집짓나”
[한겨레 2005-10-25 19: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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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건설인력의 절대량 뿐만 아니라 질적인 수준까지 위험수위에 달했다.’
건설업계 종사자 대부분은 이런 진단에 고개를 끄덕인다. 건설현장엔 숙련된 ‘손’이 많이 필요한데, 현장에서 기술 전수가 안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인력 공급이 안되면서 질 저하가 심각히 우려되는 실정이다.
권홍사 대한건설협회 회장은 “우리나라 건설업의 기술 수준이 선진국의 60~70% 수준인데, 이런 인력 구조로는 따라잡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ㄱ건설 관계자는 “과거에도 업계에서 기능인력 부족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떨어질까봐 쉬쉬해온 측면이 있다”며 “이젠 상황 자체가 업계 내부의 고민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는 수준까지 왔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건설회사의 걱정도 심각하다. 건설회사 현장 직원 이아무개(40)씨는 “나이든 분들은 다치면 회복도 늦고 아예 누워버리는 경우도 있어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 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답이 안보인다”고 했다. 경력 24년의 현장 관리자 박아무개(54)씨는 “일은 빨리 안되고, 단가는 올라가지만 그나마 숙련된 고령자들이라도 있어서 집을 짓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계를 통해서도 이런 현상은 뚜렷히 드러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건설인력 가운데 4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64.4%에 달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 가운데 4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52.5%)에 비해 11.9%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10여년 전과 비교해 보면 차이는 더 커진다. 40대 이상 전체 취업자가 45.9%였던 1992년의 경우 같은 연령대 건설인력의 비중이 49.1%로 두 수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심규범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이런 통계로 잡히지 않는 숙련된 기능인력의 고령화는 더 심각한 수준”이라며 “건설업계에서는 숙련된 기능인력의 평균 연령은 이미 50살을 넘어섰다고 보고 있으며, 고령화와 숙련공의 고갈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능인력 고갈의 폐해와 악순환= 건설업계는 이미 2001~2002년 인력대란을 겪으면서 공사기간 지연과 산업재해 증가, 품질과 채산성 저하 등의 부작용을 겪은 바 있다. 건설현장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젊은층이 외면하게 되고, 이는 다시 건설현장의 장시간 노동과 기능인력 부족, 임금상승 등을 가져오는 악순환 구조가 된 것이다. 97년 외환위기 이전엔 현장의 ‘기술자와 준기술자, 조수’의 비율이 4:4:2 정도였다면, 요즘엔 2:2:6 수준이다.
최근에도 이런 숙련공 부족으로 공사가 원활하게 되지 않자,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적은 인원으로 무리한 야간작업을 강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무리한 공사는 부실시공이나 산업재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국내 산업재해 피해자는 모두 8만8874명인데, 이 가운데 건설업 종사 피해자가 1만8896명(21.3%)으로 가장 많다. 사망자 역시 전체 2825명 가운데 건설업이 779명으로, 하루 평균 2.1명씩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기반시설을 만들어내는 건설산업의 특성상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심 연구원은 “기능인력 부족에 임금 상승은 아파트값이나 공장 등 생산시설 원가에 반영돼 결국 민간부문에 부담을 주게 된다”면서 “나아가 도로와 같은 공공재 생산에도 영향을 미쳐 물류비 상승을 초래하는 등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국인 노동자로는 역부족= 기능인력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가운데 건설 현장을 움직이게 하는 버팀목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요즘엔 숙련된 기술을 가진 외국인도 있고, ‘십장(작업조장)’이나 ‘오야지(소사장)’를 하는 중국동포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능인력들의 생각은 다르다. 미장 경력 25년의 김희수(59)씨는 “50~60대 기술있는 사람들이 남아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결국 ‘언발에 오줌누기’식으로 상황만 더 나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뜨내기 외국인들로만 현장을 꾸릴 수 없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ㄷ건설 관계자는 “한 공정에서 외국인 비중이 70%가 넘으면 통제가 불가능해 이 비율을 맞추려고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중국동포를 포함해 현재 건설현장에서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은 2만명 정도다. 나머지 불법체류자의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된 게 없지만, 4만명 정도라는 통계와 달리 건설현장에서는 8만명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이들 불법체류자들은 산업연수생이나 고용허가제를 통해 고용된 외국인과 달리 이동이 자유로워 국내 노동자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의욕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 공사 현장에 200여명의 산업연수생들을 한꺼번에 데려온 한 건설사 관계자는 “외국인 연수생을 관리하려면 사람도 많이 필요하고 신경써야 할 것도 많다”면서 “국내 인력이 오죽 없으면 외국에서 그것도 단체로 데려올 생각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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