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도 살인이다> 연중기획⑨
만성피로·요통 ‘운전대’가 흔들린다
운수노동자 건강권 위협 심각…불규칙한 근무형태와 과로·스트레스에 노출
“버스운전을 10년 이상 했는데 의사가 척추가 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100미터 이상 걷는 것도 힘들지만 개인택시 받는 날을 기다리며 통증을 참고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안 해주겠지만 산재처리는 생각도 안 해봤습니다.” “지하철공사 구역에서 차가 심하게 튕기면서 허리를 비끗했습니다. 운행을 마치고 파스 몇 장 붙였는데 늦었지만 지금이라고 산재처리가 가능합니까?” “차량충돌 사고로 허리를 다쳤는데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저를 해고했습니다.” 버스운전 노동자들의 상담 기록들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산재신청을 포기하거나, 어렵게 산재신청을 하더라도 외면받기 일쑤다.
“그 정도 충격에 승객들은 괜찮은데 당신만 왜?” “1년 전 치료사실이 있는데 당신 개인질병이지 어떻게 산재냐?” “근무환경이 나빴다고 하더라도 사고경위도 없고, 고작 2년 근무하고 무슨 직업병이냐.” 버스운전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을 받기란 험난하다.
▲ 줄지어 서있는 버스들. 배차시간을 지키기 위해 10분도 채 쉬지 못하고 운전을 계속한다. 장시간 운전은 사고의 주범이다. ⓒ 매일노동뉴스
혈관질환·요통·소화·호흡기 만성적 질환 노출
버스 운전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질병은 혈관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이 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다. 장시간 운전, 진동, 기타 스트레스 요소에 의해 위장병, 요통 등 만성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조사대상자의 66.3%가 요통 경험(1997년, 박소연), 조사대상자의 53.5%가 요통 경험(2000년, 이승주, 차상은) 등의 연구결과는 버스노동자들의 요통과 업무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이 1999년 한해 요통을 포함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승인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운전직 종사자는 46건(11.2%)으로 2위를 차지했다. 전체 27개 직종 가운데 제조업(235건, 57.3%) 다음인 것이다. 운전직 종사자의 근골격계 질환의 대부분이 요통(운전직 46건 중 44건(95.7%)이 요통)이라는 점은 다른 직종 평균 51.6%와 견줘 요통발생률이 대단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어렵게 산재승인을 받은 사례들을 보자. 장시간 운전으로 피로가 누적된 버스 운전기사 정민우(가명)씨는 지난 7월 운전을 하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산재요양신청서를 내려고 하자 회사측은 경위서 내용 등의 이유로 신청서에 날인을 거부했다. 근로복지공단의 무성의는 한 술 더 뜬다. 지난해 10월 버스운행 중 뇌경색으로 쓰러진 10년차 운전기사 최동인(가명)씨는 산재신청을 했으나 같은 해 12월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불승인 통지를 날렸다.
“재해발생일 전 재해자의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3일 연속적으로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행정업무 시행규칙은 버스노동자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하루 18시간 업무시간의 30%는 약 5시간 업무량 증가를 의미하고, 하루 23시간을 그것도 3일 연속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재심의 요청을 통해 결국 산재신청을 받았지만 산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사와 공단측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떠나질 않는다. 이와 가족은 회사쪽에 업무 중에 일어난 사고이니 만큼 회사에서 책임지고 공단에서 부담하지 않는 ‘비급여’를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의 답변은 희한했다. “관례가 없고 지급할 의무가 없다.” “퇴직금에서 가불해줄 수는 있다.” 휴업급여(임금의 70%)에 대한 나머지 30%에 대한 보전, 위로금 지급까지는 바랄 사항도 아니었다.
▲ 촘촘한 배차시간을 맞추려면 무리한 운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틀이고 삼일이고 밤새다시피한 운전사. 사고가 나면 대부분 본인이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 매일노동뉴스
교통사고, 개인부담 하든가 사표 쓰든가?
경기도 고양시 ㅁ운수는 400여대의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탄탄한 버스회사다. 9××번을 타고 차고지인 ‘탄현영업소’를 찾았다. 들고 나는 버스로 분주한 차고지 한편의 대기실. 위궤양, 소화불량, 만성피로, 요통, 근육통 등 텔레비전 옆의 사물함에는 운전기사의 이름과 함께 각종 약봉지들로 가득 차 있다. 버스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불규칙한 근무형태로 과로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버스 노동자들. 새벽부터 자정까지 하루 18시간의 ‘종일근무제’는 서울과는 달리 ㅁ운수만의 근무방식이다. 한 달 15일 만근을 해야 150~170만원 월급이 떨어진다. 만근을 못하면 월급은 50~70만원 정도가 깎이니 아프고, 피곤해도 근무일수는 채워야 한다.
▲ 대기실 텔레비전 옆의 운전기사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사물함은 각종 약봉지들로 가득 차 있다.
ⓒ 매일노동뉴스
매일 다른 출퇴근으로 규칙적인 식사는 애초에 찾아볼 수가 없다. 노선을 한번 도는 데는 대략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차고지에 들어와 20~30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운행을 해야 하지만 도로사정에 따라 막히는 날에는 쉴 시간도 없다.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식사도 허겁지겁 급하게 먹거나,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운행에 나가기도 한다. 점심 식사 후 2~3시간 지나서 미리 먹는 희한한 습관도 이 때문에 생기고 있다.
오후 4시30분,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버스운전 노동자 김정렬씨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식당으로 기자의 손을 이끈다. 그는 지난 8월27일 교통사고를 냈다. 차고지 근처에서 신호대기중인 앞차를 들이 받은 것이다.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운전 조작이나 판단이 느려지고, 그러면 사고가 나는 거죠.” 사고 전날 학위수여식으로 인해 도로는 정체되었고, 김씨는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다음날 또 운전을 나갔던 것이 원인이었다.
‘중상 2명, 경상 4명, 대물 700만원’ 대기실의 교통사고 발생현황판에 쓰인 내용이다. 회사는 사고가 난 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개인이 부담을 하든가 아니면 사표를 쓰고 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죠.” 회사는 수년 전부터 취업규칙의 ‘징계’를 들어 중상 1인, 50만원 미만은 ‘견책’, 중상 1명이상 250만원 미만은 30일까지 ‘정직’, 사망 1명 이상과 250만원 이상은 ‘해고’한다는 규정을 적용하고 있었다.
“근무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사직서와 자부담을 강요하고, 보편타당하지도 않은 징계는 사회통념에도 어긋납니다.” 사고자에게 사직서를 강요한 회사는 그 자리에 신규입사를 채용하면서 1년간 상여금, 퇴직금, 연차, 근속수당, 휴가비 등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음은 물론이다. 김씨는 자신의 억울함이 버스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상황임을 설명했다.
버스회사 ‘무사고 운동’의 허구성
버스회사는 영업소별로 조장과 조원으로 구성된 ‘무사고 조’를 운영하고 있다. 무사고 100일은 10만원 상품권, 200일은 20만원, 300일은 30만원 등으로 조별 포상까지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외여행까지 내건 달콤한 ‘무사고 포상’에는 함정이 숨어 있었다. 조별로 사고가 날 것에 대비해 미리 얼마씩 거두거나 포상금까지도 적립하고 있는 것. 크고 작은 사고는 빈번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사고의 책임을 회사가 아닌 본인이나 조별로 부담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액수가 적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몇 백에서 1천만원 이상 넘어가면 동료들 간에 논란이 생기게 마련이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동료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안긴 것에 대해 괴로워하고 눈치를 보게 된다.
“회사가 진정한 무사고 운동을 하려면 배차와 탕수를 보다 여유 있게 조정해야 합니다. 장시간 운전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무사고’를 얘기하는 것은 기만이죠.”
▲ 버스회사내의 자체 정비소. 묵중한 기계들과 씨름하다 보면 언제,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 정비 중 허리를 다친 한 노동자가 일과 후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김씨는 산재와 관련 거의 혼자 ‘동분서주’하고 있다. 노조에서조차 버스노동자들의 산재와 노동조건 개선에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평조합원인 김씨는 힘이 부칠 뿐이다. 고양시 일산의 ㅁ운수 본사. 버스정비 7년차인 조아무개씨는 올 4월 범퍼를 달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추간판탈출증’으로 산재승인을 받고 두 달 동안 입원한 그는 완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에 복귀했다.
“정비쪽은 산재신청하면 승인은 잘 해주는 편이에요. 그런데 다쳤다고 누가 봐주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산재요양 중에는 한 달 급여의 70%만 휴업급여 명목으로 지불되기 때문이었다. 한번 다친 허리가 재발할까봐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동료들은 천천히 쉬어가며 하라고 배려를 해주었지만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낮에는 어떻게 일하냐.” “작업일지 보니까 오늘 두 번 (정비)했던데 그게 뭐가 힘드냐.” 열흘에 한번 정도 돌아오는 야간당직을 빼달라는 말에 회사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람이 없으니까 무조건 (야간당직) 서라고 하는데 참 답답합니다.” 조씨는 정비하다가 차에 눌려 다리가 부러지거나 허리를 다쳐 결국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옮긴 상급자들을 떠올리며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하고 있었다.
버스노동자들의 척추 질환
버스노동자의 척추질환의 발생은 일반인에 견줘 매우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 외국 연구문헌에 따르면 그 원인으로 전신진동(진동의 강도와 진동에의 노출기간)과 척추의 불편한 자세 등을 들고 있다.(Massimo Govenzi, Antonella Zadini. 1992 : Robert Anderson 1992 등)
1998년 상반기 전국버스노동자협의회 대경지부에서 실시한 ‘버스노동자건강실태조사’에서도 버스노동자의 49.7%가 주 3회 이상의 목 부위 및 어깨에 심각한 통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42.4%는 주 3회 이상의 허리통증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나, 버스노동자의 경우 운전이라는 업무로 인해 만성적으로 요통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운전업무가 척추재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산재인정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작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척추재해(목, 허리통증)의 경우 현 산재보상법에서는 중량물 취급정도와 추락, 전도 등 발생원인이 뚜렷한 경우에 한해서 인정을 하고 있다.
산재보험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은 재해가 발생하기 이전에 해당부위에 치료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를 요양판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두고 있다. 즉, 산재인정에 대한 행정관행상 척추재해의 경우, 명확한 사고 경위를 입증하여야 하므로(재해주의 원칙) 만성질환의 경우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 명확한 재해경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치료경력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질환명이 퇴행성, 선천성인 경우 더더욱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김정렬 ㅁ운수 조합원은 “버스노동자들의 척추재해에 대해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산재인정기준의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민주노총,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는 “산재사망도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을 지난 4월27일부터 시작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책임 수반과 사회전반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연중기획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관련기사는 www.labortoday.co.kr에 마련된 별도의 공동캠페인 게시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수현 기자 shlee@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