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고없는 사회, 대학이 출발점”

[뉴스메이커 2005-12-16 12:34:35]

서울대 환경안전원장 이정학 교수 “대한민국 안전 파수꾼” 각오

서울대 환경안전원장 이정학 교수는 기자들에게 불만이 많다. 환경안전관리 규정을 개정한 그는 정운찬 총장을 설득해 최근 `‘서울대학교 환경안전 선언문’을 발표토록 했다. 정 총장은 그날 참석한 기자들에게 이 원장의 열정을 칭찬하며 `‘(반면에) 일 주일에 하루 정도만 학교에 나오는 게으른 교수도 많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기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그 내용만 기사화해서 정작 `‘환경안전원’이나 선언문 내용은 사라졌다.

6년 전에도 그랬다. 모 신문기자에게 `“대학이 사고의 무풍지대니 경각심을 심어줄 안전사고에 관한 기획기사를 써보라”고 제안했지만 묵살당했다. 그리고 얼마 후 3명이 사망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영안실에서 다시 만난 기자는 그제서야 “안전에 관해 한 말씀…”을 부탁하더란다.

평가시험 통과해야 출입증 발급

화학자인 이 원장이 이처럼 `‘안전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은 모두 그의 `‘값비싼’ 체험 덕분이다. 1997년 어느날 새벽에 그는 “연구실에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학교로 달려가보니 누전으로 인해 연구실은 몽땅 타버렸다.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알토란 같은’ 사재를 털어 1억 원을 연구시설 복구비로 지불했다. 돈도 돈이지만 그는 자신이 그동안 한 번도 안전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지난해 서울대 환경안전원 원장이 된 후엔 ‘`환경안전 전도사’로 변신했다. 지난 2월 환경안전교육에 참여한 대학원생과 연구원 171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66.1%가 `“내게도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실험실 주변에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52%가‘있다’고 대답했으며 84%는 “환경안전교육을 이수한 뒤 안전행동에 관한 생각이 달라졌고 행동도 변할 것 같다”고 답해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입증했다.

사고 줄자 보험료 수가도 내려가

“우리나라는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비율, 즉 사망만인율이 타 OECD 국가들에 비해 10배 이상입니다. 근로자 1만 명에 90명의 재해자가 발생하고 산업재해로 인한 직간접 경제적 손실측정액은 12조4000억 원에 달합니다. 대학 및 연구기관의 크고 작은 사고는 물론 씨랜드나 대구지하철 화재 등 대형참사들로 `‘사고공화국’이란 오명을 쓰는 이유 역시 안전불감증과 안전교육 부재 때문입니다. 미래의 산업체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주역으로 활동할 학생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올 1월부터 서울대 환경안전원은 이공대(미대 포함) 대학원생 및 연구원의 환경안전 교육을 의무화해 환경안전교육을 받지 않으면 실습실에 출입할 수 없도록 했다. 교육은 연 2회로 나눠 총 14개 과목을 교육생 전공에 맞춰 3개 과정으로 분류해 교육한다. 강사진은 소방교육을 맡은 소방관을 제외하고는 현직 교수들이며 강사진이 직접 쓴 `‘실험안전의 길잡이’가 교재. 교육을 받은 이들은 평가시험에서 일정점수를 받아야 수료증이 발급된다. 만약 교육에 참가하지 못했거나 평가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환경안전원 홈페이지를 통해 사이버교육을 수강하고 사이버교육 특별시험을 보면 된다. 이 수료증이 바로 실험실 출입증이 된다. 올 3월부터는 총 1368개 실험실에 `‘환경안전교육 수료증’을 부착도록 했다.

의대, 치대, 수의과대, 자연대, 농생대, 생활대, 공대, 사범대는 물론 미대의 서양학과와 조소과에서도 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환경안전 관리, 독성화학물질, 전기의 안전취급, 실험실장비 및 취급요령, 사고의 심리학, 소방안전, 응급처치는 공동과목이며 전공에 따라 방사선 안전관리, 실험동물취급, 직업병, 인간공학 등 다양하다. 과학도가 아니더라도 인체구조부터 심리학, 직업병까지 배울 수 있어 학생들이 흥미있게 수업을 듣는단다. 1996년에 500여 명이던 환경안전교육 수료자가 2005년에는 2509명으로 는 반면 사고목격률은 1996년에는 응답자의 40%에서 2005년에는 19%로 줄어들었다.

올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의 반응도 뜨거웠다. 교토대학의 환경안전담당인 히로시 다카수키 교수는 “안전교육시스템에 관한 한 서울대가 교토대보다 훨씬 앞섰다”고 부러워했고 미국 MIT 대학의 담당자는 “우리 학생들에게 더 일찍 안전교육을 시켜 사회에 내보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단다.

또 서울대가 가입한 AIG손해보험회사는 환경안전교육 관련 자료를 검토한 후 “2006년 `학교경영자 ‘책임보험’과 `‘화재보험’ 입찰시 보험료 산출에 적극 반영해 보험료 수가를 내리겠다”고 통보해오기도 했다. 연간 운영비 1억 원 정도인 안전교육의 효과는 학생들의 안전 외에도 이처럼 다양한 효과를 내고 있다.

“경제손실이나 당장의 사고만이 아니라 장시간이 흘러야 나타나는 만성병도 무섭습니다. 제가 알던 미국동포 여교수가 암으로 죽었는데 담당의사는 그녀가 실험중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진 것이 암의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환경안전교육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우리의 생명도 지켜주는 가장 필요한 교육입니다.”

학생들이 `‘교수님들도 이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원해서 내년부터는 교수들도 교육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또 이 원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어느 학교나 기관들도 모두 환경안전교육의 내용을 알 수 있게 공개하자고 동료교수들에게 제안했다.

시스템 전수는 물론 강의요청이 오면 어디든지 달려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서울대가 쌓아온 노하우를 다른 이들은 짧은 시간에 전수받도록 하는 것이 국립대학의 의무라는 생각에서다. 비록 기자들은 대학입시나 `‘총장님 말씀’에만 관심이 있지만 이원장은 “서울대는 물론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다”는 각오와 자부심으로 한겨울 추위에도 몸과 마음이 뜨겁기만 하다.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