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MBC, 의료시장 개방 ‘왜곡보도’ 중단하라”
[기고] “해외진료로 한 해 1조원이 샜다고?”

2004-10-28 오후 1:56:33

“해외 진료로 한 해 1조 원이 샜다고?”
-조선일보와 MBC 뉴스데스크, 의료개방 유도 위해 왜곡보도

MBC 보도의 오류

요즘 우리나라 의료에 관한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를 지켜보노라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된다.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이 그릇된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거나, 문제점 분석과 해결책 제시에서 균형 감각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보도의 형식을 빌려 기자 자신의 주장을 교묘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10월26일 MBC 뉴스데스크는 <1조원 샜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해외 진료의 규모는 해마다 늘어 의료계에서는 연간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해외 진료 규모를 추정했다는 ‘의료계’의 정체도 미심쩍다.

지난 19일 보건복지부와 재정경제부가 함께 연,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 허용에 관한 토론회에서, 충북대학교 이진석 교수는 미국 상무부 통계를 인용, “미국 병원이 해외환자를 통해 벌어들인 진료비 합계는 1998년 1조1천억원 규모였으며, 2002년은 1조2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미국 병원에서 진료 받는 해외 환자가 모조리 한국인이 아닌 한, 결국 “1조원 샜다”는 보도는 취재 대상에 대한 관심과 성의만 있었으면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던 셈이다.

같은 날 뉴스데스크의 <서비스 불만>이라는 제목의 뉴스는 균형 감각을 상실한 의료 관련 언론 보도의 대표적 사례라 할만하다. 뉴스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한 대학이 조사한 결과 국내 의료서비스에 불만이라는 의견이 70% 수준에 달했습니다. 의료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허용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게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합니다.”

기자의 말을 뒷받침하는, 예의 그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뒤를 잇는다. 그러나 방송은, 의료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는, 또 다른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영리 병원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심지어 영리 병원의 환자 사망률이 비영리 병원보다 의미 있게 높다는 연구 결과들은 다뤄지지 않는다.

예컨대, 경북대학교 감신 교수는 <예방의학회지> 37권 2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영리 병원과 비영리 병원의 의료의 질을 비교한 외국의 연구 결과를 꼼꼼하게 검토한 다음, 영리 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는 불분명하거나 거의 없는 반면, 의료의 질적 수준에서 있어서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다. 심지어, 의료기관의 다양성을 위해서 영리법인 병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세대학교 이해종 교수도 영리법인이 환자 만족과 경영 효율성 면에서 비영리 법인보다 특별히 우위에 있다는 보장이 없음을 같은 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인정하고 있다.

다만 부유층의 욕구와 소비자의 선택을 확대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자는 것인데, 이것이 의료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70%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안이 아닌 것임은 분명하다. 최근 정부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과 기업도시법 제정과 관련된 영리 법인 병원 허용 문제가 의료계의 뜨거운 쟁점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MBC는 마땅히 상반되는 의견을 같이 소개하여 시청자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주어야 했다. 언론인의 능력과 자질보다는 균형 감각의 부재가 문제였던 것이다.

조선일보 보도의 오류

<조선일보>의 10월27일자 기사 <한국은 국내 외국인도 갈 병원 없어>는 “아시아 각 나라가 의료 허브(hub)를 향해 발 벗고 뛰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의료서비스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문을 연다.

기사의 지적대로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조악한 경제 논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처지를 바꾸어 외국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이 점에서 기사의 지적은 타당하다. 주한 외국 기업인뿐 아니라 적지 않은 이주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의료 접근권 보장에 정부는 응당 나설 일이다.

이 대목에서 기사는 갑작스레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유명 병원 유치”, “동북아 중심 병원 육성”, “영리 법인의 병원 설립 허용”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진다. 외국인이 좋은 병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정부나 기업은 적합한 병원을 알선하고 연결해야 한다. 외국 의료보험의 미적용이 문제라면, 외국의 사례를 참고하고 국내 여건을 고려하여 제도 개선 방안을 강구하면 된다.

그런데 난데 없는 외국 병원, 영리 병원이라니. 외국 병원이 없어서 문제였던가? 영리 병원이 없어서 말썽이었나? 이렇게 보자니 기자의 관심사는 외국인들의 의료 편의 도모라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은, 태국, 싱가포르,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은 의료 허브 건설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의료 허브 격인 동북아 중심 병원, 곧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유명 병원 유치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가를 따지는 게 기사의 초점인 셈이다.

그러나 의료 허브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나라에 의료 허브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경제자유구역내 외국 유명 병원 유치가 곧 의료 허브 건설인지, 이렇게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효과와 부작용은 무엇인지, 기사는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다. 다만,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청맹과니마냥, “남들이 한다니까” 하자는 식이다. 원고지 5매 분량의 신문 기사에 짜임새 있는 논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기사는 단순한 사실 보도 기사가 아니라, 사실 보도의 형식을 교묘하게 빌려 기자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논설에 가깝다. 적어도 논설이라면 기본적인 설득 논리는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언론은 자신의 주장을 표명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 동시에 언론은 사실 보도에 관한 한 정직성과 성실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의료 문제에 대한 일부 언론(과연 몇몇 언론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일까?)의 보도 태도는 상궤(常軌)에서 벗어나 있는 것만 같다. 취재 내용이 사실인지 미리 확인하려는 성실성을 찾기 어렵고, 논란이 되는 사안에 관하여 상반되는 의견을 소개할 만한 균형 감각도 부족하며, 사실 보도 형식을 빙자하여 교묘하게 주장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번 정기 국회에 정부가 제출한 법률 제-개정안들은 향후 우리나라 의료 체계의 기본 틀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제도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국민과 정치권이 판단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도록 언론의 공정하고 성실한 보도 태도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를 위한 언론의 맹성(猛省)을 촉구한다.

최용준/한림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