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장기취급자 관리 엉망
[한겨레 2006-01-03 20:42:37]
[한겨레]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물질을 장기간 다루거나 다뤘던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가 엉망이다. 특히 10~30년의 잠복기 이후 치명적 직업병을 낳는 발암물질의 특성 때문에 앞으로 희생자가 잇따를 것으로 보이는데도 정부는 무방비 상태다. ‘벤지딘 방광암’ 첫 발병=인하대병원 산업의학과(과장 임종한 교수)는 3일 “25년 동안 벤지딘염산염을 다뤘던 한아무개(53)씨가 최근 벤지딘염산염 장기노출에 따른 직업성 암인 방광암 발병 사실이 확인돼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벤지딘계 염료를 제조·취급하는 노동자에게 방광암 발생이 공식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인하대병원은 “한씨의 발병 원인 추적과정에서 같은 사업장에서 30년간 일한 조아무개씨가 2000년 퇴사 뒤 방광암이 발병하자 자살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벤지딘은 호흡기를 통해 몸 안에 흡수된 뒤 20~30년의 잠복기를 거쳐 방광암을 유발한다. 임 교수는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노동자 수천명이 벤지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앞으로 발병이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14개물질 관련자에 ‘건강관리수첩’ 교부 불구추적관리 허술…교직자 19%만 무료검진 받아 허울뿐인 건강관리수첩=한씨나 숨진 조씨는 2000년 2월 노동부 장관이 교부한 ‘건강관리수첩’을 발부받았다. 건강관리수첩 제도는 수십년의 잠복기를 갖고 있는 치명적인 발암물질 14개 취급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관리할 목적으로 1992년부터 시행했다. 수첩 교부자에게는 추적·관리와 함께 연간 1회의 무료 건강검진이 지원된다.
그러나 산업안전공단 한 관계자는 “실태 파악 결과, 한씨의 사업장에서 수첩을 교부받은 노동자 30명 가운데 27명이 이직했으나, 이 가운데 공단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건강진단을 받은 사람은 5명에 그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씨나 한씨 모두 그동안 ‘벤지딘이 장기 잠복 뒤 방광암을 유발한다’는 교육이나 설명을 어디서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산업안전공단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까지 니켈, 카드뮴, 벤젠, 석면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물질을 다루거나 장기간 다룬 탓에 건강관리수첩을 교부받은 노동자 3513명에 가운데 퇴직자는 모두 633명이다. 이들 가운데 지난해 무료 건강검진을 받은 이는 122명에 그쳤다. 게다가 수첩 교부 인원은 느는 데 건강검진을 받는 이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표 참조) 2005년 수첩 교부자 현황을 보면, 퇴직자 633명 가운데 21명은 이미 숨졌고, 47명은 ‘소재지 불명’으로 생사조차 파악이 안 됐다. 손놓은 노동부=임 교수 등 산업의학 전문가들은 “치명적 유해물질에 따른 직업성 암 발생의 피해가 크게 우려되나, 정부는 제도 개선은커녕 시행중인 제도조차도 허울만 남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수첩 교부자들에 대한 △추적관리 시스템의 전면 개선 △특화한 건강검진 체제 마련 등을 촉구했다. 송영중 노동부 산업안전국장은 “건강수첩 제도에 대한 홍보 부족을 느끼지만 구체적 개선책은 아직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양상우 기자 y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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