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신체질환 비율 비정규직 더 높아
[한겨레 2006-01-19 20:00:51]
[한겨레] 어떻게 조사했나 <한겨레>의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실태 조사는직접 설문과 자료조사를 병행해 이뤄졌으며 현대차 공장 노동자 2323명(정규직 2194명, 비정규직 129명)과 여수건설 노동자 208명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에는 여수건설노조와 현대 비정규직 노조가 참여했다. 여수건설노조 건설노동자들은 <한겨레> 특별취재팀이 직접 설문조사를 했고, 현대자동차 공장노동자는 <한겨레>의 의뢰를 받아 이 공장의 노조가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와 더불어 이들 지역 노동자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도 함께 수행했다. 어떻게, 언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가 됐는지, 어느 지점에서 건강장해가 발생하는지, 또 노동조건과 임금구조, 노동시간 등을 조사했다. <한겨레>와 손미아 교수팀이 현대자동차 등 세 곳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직무 강도나 스트레스가 더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피로나 우울감을 더 느끼고 있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기존의 여러 연구 결과들과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산업의학 전문의)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에 비해 직무 스트레스, 근골격계 질환, 급·만성 질환 유병율은 물론 산업재해를 입는 비율이나 산재사망도 크게 높다”며 “이는 비정규직이 임금, 노동조건, 사회보장 등의 여러 측면에서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공동조사에서도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근무시간, 작업강도, 연봉 등에서 열악한 조건이었다.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사람이 정규직은 6.9%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24.0%나 됐다. 작업 강도 역시 비정규직이 더 셌는데, 비정규직은 높은 강도의 작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56.6%로 절반을 넘었다. 이에 비해 정규직은 42.3%였다. 연봉은 정규직의 85.2%가 2500만원 이상인데 견줘, 비정규직은 2000만~2500만원이 45.7%, 1500만~2000만원이 24.0%였다.
이런 작업 조건 등은 결국 비정규직의 건강 문제로도 이어졌다. 실제 직무 스트레스와 관련된 우울증 비율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높았다. 지난해 11월 말 발표된 조정진 한림의대 교수의 직무스트레스 연구 결과를 보면, 우울증 유병율은 정규직이 15.7%로 가장 낮고, 계약직이 16.3%, 일용직이 22.7%로 가장 높았다. 정규직 이외의 고용형태를 모두 비정규직으로 재분류해 분석했을 때는 비정규직의 우울증 비율은 17.1%로 나왔다. 이 연구는 329개 사업장 8522명을 대상으로 7달 동안 이뤄졌다. 고상백 연세대 원주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결국 비정규직은 직업 불안정성이나 노동 강도는 크고, 사회적 지지도는 낮은 데다가 불충분한 수면 등으로 정신 건강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는 정신 건강의 문제 뿐만 아니라 혈압 상승, 근육 긴장도 증가, 면역체계 약화 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일반적인 신체 질환도 비정규직이 더 앓고 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 2003년에 국민건강영양조사(1998)를 재분석한 결과 정규직은 48.7%가 급성 질환을 앓고 있었으나, 비정규직은 53.1%가 이에 해당됐다. 지난 석 달 동안 앓고 있던 만성질환도 비정규직은 61.8%, 정규직은 58.7%였다. 이와 함께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 등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높아 심혈관계 질환 위험성도 더 큰 것으로 나왔다.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지난해 자료를 보면, 근골격계 질환도 정규직보다는 파견 노동자들이 많다. 파견노동자들은 36%가 고통을 호소한데 반해, 그런 정규직은 14%에 지나지 않았다.
또 산업재해나 이 때문에 사망하는 비율도 비정규직이 높았다. 산업안전공단의 2001년 통계에서 정규직은 재해율이 1.16이었으나, 비정규직은 1.24로 나왔다. 노동자 1만 명 가운데 산업재해로 사망한 비율도 정규직은 0.29명에 불과했지만 비정규직은 10배가 넘는 3.09명이었다. (특별취재팀)
비정규직 건강보호 대책은?
건보 가입·사회안전망 구축 필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해선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관련 법규와 사회 보험제도는 1960년대 정규직 완전고용을 기준으로 돼 있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40%에 이르는 현재 고용형태를 반영해 비정규직의 노동환경에 맞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손질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말한다.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강화=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파견·하청업체 노동자에게 건강문제가 생기면 원청업체가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하청업체가 부도가 나거나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특수관계 때문에 원청업체가 연대책임을 지는 일은 드물다. 원래 법 취지를 살려서 원청업체에 연대책임을 엄격하게 물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한편, 노동부의 감시체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업종별·지역별 안전망=고상백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부정기적으로 여러 사업장을 옮겨 다니는 특성 때문에 어느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를 입었는지를 밝히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노동자에게 업체를 상대로 재해를 규명하라고 떠넘기지 말고 업종별·지역별 사회 안전망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관련 업체들이 업종 혹은 지역별로 연대해 공동으로 노동자의 건강기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4대 보험 적용 현실화와 건강검진 기회 보장=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부정기적으로 고용계약을 하기 때문에 소속 사업장의 정기 건강검진을 받을 기회를 드물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건강수첩 등을 발부받아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뒤 비용은 사용자 쪽으로 청구하는 등 비정규직에 맞는 건강검진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직장 건강보험에 가입해 실질적인 산재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험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