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고용불안·저임금…스트레스에 허우적
아파도 내색조차 못하고 10명 중 3~4명꼴 고통 호소

이민상(가명·40)씨는 여수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청소·용접 등 닥치는 대로 일한다. 늘 온몸이 쑤시지만 현장에선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하면 일거리를 안 줄까봐 겁이 나서”라고 이씨는 말했다. 철도 노동자 오병상(가명·32)씨는 늘 술과 담배에 절어 산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단기 계약직’이란 처지, 저임금, 차별 등으로 우울해진 마음을 다스릴 건 술뿐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과도한 직무 스트레스를 겪는 등 정신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비정규직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여수지역 비정규직 건설 노동자는 10명 중 3명 정도가 과도한 직무 스트레스 탓에 지속적으로 고통을 겪는 것으로 분석됐다. 스트레스는 우울증과 불면증, 면역기능 저하 등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정신건강 장해요인이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가 지난 12월 손미아 강원대 의대 교수팀과 함께 현대자동차와 여수지역 건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 실태조사에서 나타났다.

조사 결과, 현대차 공장에서 지나친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들은 정규직의 15.13%(2194명 중 332명)였으나, 비정규직은 42.64%(129명 중 55명)나 됐다. 여수지역 비정규직 건설 노동자들의 경우 과도한 직무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전체의 27.33%(150명 중 41명)로 나타났다.

이런 직무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은 두 곳 모두 ‘비정규직이란 노동조건 자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스트레스 원인은 구체적으로 현대차에서는 연봉 1500만원 이하의 저임금 상태, 작업 중 여유시간 감소, 부서 인원 수 감소 등으로, 여수 건설 노동자의 경우에는 노동강도, 저임금 구조, 일년내 실직할 가능성이 높음 등으로 나타났다.

손 교수가 별도로 분석한 한국철도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을 무시하거나 차별할 때, 하루 노동시간이 아주 길 때, 원하는 시간에 병원에 못갈 때 등 비정규직으로 차별을 받는 상태가 직무 스트레스의 주요 요인이라고 답했다.

손 교수는 “이번 조사내용은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게 되는 불완전 노동상태인 ‘비정규직’ 자체가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객관적인 증거”라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삼권이 확보되는 등의 근본 대책과 함께 건강보장을 위한 제도적 보완 등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