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 산재은폐 위해 로비 총력전

[내일신문 2006-02-01 17:27]

건설현장 산재사고 영업정지로 이어질까 우려

노동부 요청하면 3개월 이내 영업정지 가능

공사 수주 못해 수백억대 매출 감소 등 불이익

건설현장에서 추락이나 감전 등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업체는 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기보다 돈으로 유족의 입을 막으려는 등 사고를 감추기에만 급급하다. 산재로 처리될 경우 영업정지와 관급공사 입찰제한 등의 불이익이 두렵기 때문이다.

심각한 산재 사고 사업장에 대해 노동부가 영업정지를 요청할 경우 해당 행정기관은 3개월 이내의 영업정지 또는 3000만원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게 된다. 영업정지가 최종 결정될 경우 이들 업체는 제재기간 동안 공사수주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규제개혁의 명분을 내세우며 산재율을 근거로 업체에 불이익을 주던 제도를 없앤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흥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며 강력 비판하고 나서 진통이 예상된다.

◆업체 ‘일단 감추고 책임 미루고’ = 산재로 인한 사망이나 중대사고가 일어난 사업장에서는 은폐 시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강동구 S건설 주상복합 신축현장 12층에서 일용직 노동자 이 모(41)씨가 추락, 사망한 사건에 대해 해당 업체는 ‘자살 가능성’까지 흘리며 산재 가능성을 덮는데 급급했다. 업체는 유족과의 합의에 서두르는 등 사건의 신속한 종결을 위해 발빠른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6일 발생한 경기 이천시 G홈쇼핑 물류센터 붕괴사건과 관련, G건설과 S물산은 서로 ‘네 탓’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공사인부 9명이 숨진 중대재해로, 최고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을 최소화하자는 의도에서다. 노동부는 현재 서울시와 송파구청에 해당업체를 대상으로 영업정지를 요청한 상태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경기도 부천의 D사의 건물 신축 현장에서 사망한 일용직 노동자 유모씨의 사건도 산재은폐라는 의혹이 일었다. 유씨의 직접적 사망원인이 심근경색으로 밝혀졌지만 지병으로 인한 것이라는 회사측 주장과 낙하물에 의한 것이라는 노조와 유족의 주장이 강하게 맞섰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건설사의 산재은폐 사례는 △2001년 1097건 △2002년 1033건 △2003년 674건 △2004년 2140건 △2005년 1477건(6월 말까지) 등이었다.

◆경찰·노동부·자치단체 로비대상 = 건설사들이 산재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유족과 언론

등을 상대로 총력전을 펴는 이유는 관급공사 입찰에서의 불이익 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유족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돈이 들지만 산재사망사고로 처리될 경우 국가가 주관하는 수백억~수천억원대의 관급공사를 수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건설업체의 산업재해발생률에 따라 가점 또는 감점을 부여한다. 재해발생률이 평균을 밑돌 경우 안전사항 자율점검 등의 혜택을 주지만 평균보다 높을 경우 일정 주기로 사업장 안전시설과 안전규정을 점검한다.

특히 공사현장에서의 재해사망은 업체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동시에 3인 이상의 근로자가 사망한 재해시 노동부장관이 관계행정기관장에게 사업주의 영업정지 처분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관급공사는 물론 민간공사의 입찰도 제한된다. 이 경우 해당 업체는 막대한 영업손실을 입는 등 치명적인 상황에 몰린다.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치명적 질병을 앓아도 사업주들은 공사입찰 등에서의 불이익이 두려워 돈으로 입막음을 하면서 산재처리를 꺼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실 조사에 솜방망이 처벌 = 진상을 밝힐 경찰의 초동수사가 허술한 것도 문제다.

앞서 언급한 S건설 사망사고와 관련, 관할서인 서울 강동경찰서는 사건 발생 일주일인 1일까지도 과실치사 여부를 가리는 핵심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사고 당일 화물용 승강기가 한차례 고장 난 사실이나 안전모가 사망한 이씨와 상당히 떨어져 있었던 점 등을 비춰볼 때 안전시설 미비나 규정 미준수 등의 가능성이 큰 데도 초동수사에서 이와 관련한 물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처벌 또한 솜방망이라는 지적이다.

한성대학교 박두용 교수(기계시스템공학과)는 지난 2000년 산업재해와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기소된 9246건 가운데 책임자가 구속된 상태에서 공판이 이뤄진 경우는 단 5건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제1심 선고공판이 이뤄진 것은 108건이었지만 이 가운데 3년 이상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은 단 2건에 불과했고 27건은 집행유예, 67건은 벌금형이었다.

박 교수는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산재사고에서 안전의무를 소홀히 한 기업주가 실제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산재사망을 살인범죄로 규정하는 호주 등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재사망 늘지만 정부는 시대 역행” =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건설현장에서의 노동자

사망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1999년 583명에서 △2000년 614명 △2001년 659명 △2002년

672명 △2003년 762명 △2004년 779명 등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고 원인을 분석하면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대부분이다. 2004년의 경우 전체 1만8896명이 안전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쳤는데, 이 가운데 추락이 6161건으로 제일 많았고 △전도(엎어지고 넘어짐) 3200건 △낙하 2595건 △협착(끼임) 2085건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기획단은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해온 재해율 감점제를 올 1·4분기 내 폐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해율 감점제는 재해가 많은 업체들에게 공공공사 입찰 때 감점(-2)을 줘 입찰을 제한하는 제도다.

경실련 윤순철 시민사업국장은 “2004년 한해동안 건설업 노동자 779명이 사망한 현실에서 재해율 감점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노동자를 죽음에 몰아넣은 건설업체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나서서 ‘건설노동자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 포기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윤 국장은 또 “현행 재해율 감점제 하에서도 재해율이 감소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불이익 제도마저 폐지된다면 사람의 목숨마저도 돈으로 흥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허신열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