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휴직제, 官·經 유착 ‘로비스트’ 전락
입력: 2006년 01월 12일 07:10:31 : 3 : 3

민간기업의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공무원이 민간기업에 취업하는 ‘민간휴직제’가 당초 취지와는 달리 기업의 ‘로비스트’를 양산하는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1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서울시 민간휴직 공무원 명단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에서 휴직 후 기업에서 근무 중인 공무원 12명 전원은 서울시가 인·허가권을 쥔 건설사나 서울시 산하기관 관련 기업의 고위직을 맡고 있다.

특히 ㅅ과 G건설에 파견 근무 중인 시 공무원 등은 해당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로비스트’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돼 물의를 빚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해 10월 사망자 9명이 발생한 경기도의 한 대형 물류센터 붕괴사고 관련 회사로, 이곳에 취업 중인 공무원이 서울시를 자주 방문, 선처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두 기업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최근 시청을 부쩍 자주 찾아온다”며 “사고 발생 후 서울시 행정1부시장 등 고위층은 물론 해당 실무부서까지 방문, ‘선처’를 호소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서울시 기술직 공무원은 “최근 민간휴직으로 기업에 나가 있는 선배들이 저녁식사에 초대한 뒤 해당 기업에 유리하도록 각종 민원을 제기해 여러 차례 곤혹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는 “향후 1~2년 뒤 시청으로 복귀할 선배 공무원의 민원을 무시할 수 있겠느냐”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현재 두 회사는 물류센터 붕괴사고의 과실책임을 둘러싸고 재판을 받고 있으며, 책임이 큰 기업은 서울시로부터 3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을 전망이다. 이들 기업에 행정처분이 내려지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해 해당 기업은 행정처분 무마에 사활을 걸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휴직제가 이처럼 파행 운영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시와 해당 기업의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다는 데 있다.

서울시는 간부급 인사적체 해소를 원하고, 건설업체 등은 시와 통하는 ‘채널’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민간휴직 공무원은 길어야 2~3년 뒤 시청의 간부로 복귀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1등급 로비스트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기업은 민간휴직 공무원에게 임원급 직책과 공무원 임금의 2배가 넘는 연봉을 주고 있다. 여기에 거액의 활동비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시는 이들에게 휴직기간 동안 월급을 지급하지 않는다.

ㄷ건설 관계자는 “임원급으로 영입한 공무원이 서울시 관련 민원만 해결해 줘도 회사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며 “민간휴직제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털어놨다.

김영종 숭실대 교수(인사행정)는 “현행법은 공무원의 경우 퇴직한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관련기업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며 “민간휴직제는 이런 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 제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