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가는 대한민국] ‘의료소외’ 불법체류자 2세들
[경향신문 2006-02-07 20:09:47]
-“가엾은 퀴니, 한번만 웃어다오”-
필리핀 출신의 제리코(29)·크리스티나(33) 부부는 7일 생애에서 가장 긴 하루를 보냈다. 한국에서 낳은 첫 딸인 퀴니가 서울대 병원에서 생사를 가름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리코 부부는 오전 8시부터 수술장 앞 대기실에서 두 손을 잡고 “내딸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달라”고 하느님을 찾았다.
제리코(29·오른쪽)와 크리스티나(33) 부부가 7일 서울대병원에서 수술 받기 직전 딸 퀴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안스러워하고 있다./남호진기자
퀴니는 정확히 한달 전 태어났다. 안면기형인 구개파열을 갖고 태어났지만 부부는 성형수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집으로 데려온 퀴니는 점차 얼굴이 파래지는 청색증 현상을 보였고 울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않았다. 우유를 먹였지만 자꾸 토하면서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부부는 경기 수원시의 이주노동자 의료지원센터를 찾았다. 이들은 각각 2002년과 2000년에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산업현장으로 빠져나간 불법체류자여서 아픈 딸을 어디에 데려가면 치료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지원센터는 퀴니 같은 선천성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만한 병원을 소개했고, 이 병원에선 종합병원에 가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렇게 해서 오게 된 곳이 서울대 소아병원이다. 서울대 병원에선 대동맥과 폐동맥이 붙어 있어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없는 난치병이라며 사망률이 30% 이상 된다고 판정했다. 그나마 한시라도 빨리, 늦어도 1~2개월 내에 수술해야 살릴 수 있다는 설명에 어머니 크리스티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퀴니를 살려야겠지만 선뜻 수술에 동의할 수도 없었다. 수술비가 3천만원선이어서 퀴니 부모의 한달 수입 1백40만원으로는 어림없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 있는 퀴니의 외할머니도 고혈압 치료를 받아야 해 수입의 절반은 필리핀에 송금하는 형편이었다.
현재 이들 부부가 가진 돈은 80만원이 전부. 크리스티나는 출산 문제로, 남편 제리코는 병 간호로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했다.
서울대병원측은 일단 “아이부터 살려야 한다”며 수술일정을 잡았다. 그 사이 부부의 딱한 처지를 알고있는 신부가 5백만원을 내놓았고, 소아병원 후원금 4백만원가량 지원받게 됐다. 수술비 2천1백만원은 여전히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올해부터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건강보험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는 가입할 수 없다. 불체자는 지난해 5월부터 공공보건의료법령에 따라 정부가 지정한 40개 병원을 이용할 경우 1인당 5백만원의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불법체류자 본인에 해당할 뿐 2세는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퀴니가 정부의 의료비 지원을 받을 길은 전무한 것이다.
퀴니는 수술전까지 코에 얇고 투명한 튜브를 연결해 생명을 이어갔다. 산소와 분유가 모두 이 튜브를 통해 주입되고 있다. 정밀검사를 위해 수면제를 먹고 나면 퀴니는 신음소리를 내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럴 때마다 세 가족은 모두 손을 붙잡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태어난 지 1개월, 몸무게도 3.1㎏ 그대로다.
어머니가 임신 중 야근을 해가면서 모은 돈을 산 가장 작은 치수의 하얀 배냇저고리가 아직도 헐렁헐렁하다. 어머니 크리스티나는 “딸이 웃는 모습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리고 싶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현철·임지선기자 cho197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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