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에 노조원 20여 명이 들이닥쳤다. A사에 함께 근무하던 그들은 근로복지공단이 자신들의 산재 요양 신청을 승인하지 않은 데 대해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공단 직원을 감금하고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사장은 노조의 강압에 못 이겨 “산재 승인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합의서를 작성해 줬다. 근로복지공단은 며칠 뒤 이 사실을 알고 통영지사장과 보상부장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노조원 3명을 폭력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B씨는 2003년부터 목디스크(경추간판탈출증)로 병원에 입원해 산재 요양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6월 술을 마시고 친구를 옆좌석에 태운 채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다 추돌사고를 냈다. 사고 뒤 달아났던 B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B씨가 요양 중이던 병원은 B씨가 외출하고 음주까지 하는데도 이를 모른 척했고, 근로복지공단에도 알리지 않았다.
#2004년 초부터 좌측 어깨관절을 삔(좌측 견관절 염좌) 증세 등으로 통원치료 중이던 C씨는 그해 5월 다른 회사에 취업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6월 30일 요양을 종결하면서 장애등급 12급 판정을 내리고 장애급여로 948만여원을 지급했다. 2개월여 뒤 예전에 다니던 회사 직원이 이중취업 사실을 근로복지공단에 알렸고 보상금은 회수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수집한 엉터리 산재 환자 사례다. ‘도덕적 해이 사례 모음-사업장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이 보고서에는 ▶산재 요양 신청 때 업무 관련성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노조의 외압에 산재 승인을 해주고▶의료기관이 수익에 눈이 멀어 엉터리 산재를 눈감아 주는가 하면▶산재 환자가 이중취업을 하는 사례들이 나열돼 있다.
경총 관계자는 “엉터리 산재환자가 산재보험기금의 재정상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근로복지 공단이 산재보험법 규정에 쫓겨 현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산재 인정을 해준다고 지적했다.
신청 후 7일 이내에 산재 인정 여부를 판정해야 하는 산재보험법 규정 때문에 질환의 직무 관련성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산재승인율은 94.4%(2004년 말 기준)에 달한다. 일본은 정신질환의 판정기간은 10개월이고, 뇌심혈관질환은 8개월이다. 독일은 근골격계질환 판정기간을 1년으로 정해놓고 있다.
또 노조는 산재 승인이 나지 않거나 요양 종결 처분이 내려지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집단적인 압력을 넣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최근에는 산재 환자 개인이 산재신청을 하기보다 사용자와 공단을 압박하기 위해 노조가 신청을 받아 집단으로 요양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요양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절차를 무시하고 시위 등으로 해결하려 든다”고 털어놨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부정한 방법으로 산재보험의 취지를 흐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를 빌미로 산재보험을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개악하려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신수식 고려대 교수는 “산재보험의 도덕적 해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엉터리 환자만 막아도 산재보험기금의 재정이 훨씬 건전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