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12% “아파도 병원 못 가요”
[한겨레 2006-02-20 21:27:17]
[한겨레]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는 등 매우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10명 가운데 7명이 정기 건강검진을 전혀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은 국제보건의료발전재단이 설동훈(전북대)·홍승권(서울대) 교수팀에 맡겨 지난해 10월24일부터 11월27일까지 수도권 지역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 685명을 조사해 20일 발표한 결과에서 밝혀졌다.
이를 자세히 보면, 국내에 들어와 아픈 경험이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전체의 61.3%였다. 조사 대상 노동자의 71.1%가 정기검진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대상 노동자 가운데 12.8%는 아파도 진료비 등을 이유로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병원에 가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36.1%는 진료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라고 답했으며, ‘병원 갈 시간이 없어’라고 대답한 이도 30.5%에 이르렀다.
이들이 앓고 있는 병은 위·십이지장 궤양이 25.1%로 가장 높았고, 이밖에 고혈압(24.9%), 알레르기(18.4%), 류머티스 관절질환(12.7%), 당뇨병(10.3%) 차례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이들의 상당수가 정신건강을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점수가 높게 나타나는 일반정신건강(GHQ) 조사를 보면, 이들의 평균 점수는 13.56으로 나타나 정신적 고통이 심했던 전남 순천의 주암댐 수몰지구 주민의 평균점수인 10.91보다도 높았다. 이는 ‘사회적 역할 수행과 일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연구팀은 풀이했다. 두통이나 요통을 호소하고 불면증도 심하게 나타나는 등 불안의 정도를 나타내는 불안 평균점수도 40.26으로, 주안댐 수몰지구 주민의 평균점수 38.99보다 높았다.
이들은 “만사가 순조로울 것 같지 않다, 머리가 아프고 목덜미가 무겁다, 이유없이 피곤하다, 마음이 불안정하고 불편하며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 가슴이 답답하다”는 등의 불안 증상을 많이 보였다.
홍승권 서울대 교수는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외국인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에 대해 정부는 아직까지 원시적인 대처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 보건의료지원사업을 추진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의 건강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