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체르노빌 비극”…방사능낙진 안사라져
[세계일보 2006-03-15 00:36:49]
옛 소련(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지 근 20년이 흘렀지만 유럽은 여전히 방사능에 오염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최근 각국에서 원전 건설이 다시 각광을 받는 가운데 에너지 정책 재검토를 앞둔 영국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전망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4일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 2400여㎞를 날아온 방사능 낙진으로 자국 내 농장 375곳을 비롯해 사육 중인 양 20만여마리가 약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라는 점을 보건부가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에너지 정책 재검토를 앞두고 고든 프렌티스 영국 하원의원(노동당)에게 제출된 서면 답변서에서 밝혀졌다.
당시 웨일스 355곳, 스코틀랜드 11곳, 잉글랜드 9곳의 농장에 내려졌던 긴급명령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영국에서는 특별허가증을 받고 안전한 것으로 확인된 지역에만 양을 방목할 수 있다. 양을 키워 경매에 부치기 전에는 환경식량농업국(DEFRA)이 세슘 오염 여부를 확인한다. 방사능 낙진은 비가 와도 토양에 그대로 남기 때문에 비교적 엄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산화탄소(Co2) 배출량과 천연가스 의존도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강변 중인 토니 블레어 총리는 뜻밖의 악재를 만나게 됐다. 정부 자문기관인 성장유지위원회는 지난주 테러리스트의 공격과 방사능 누출 등 원전 개발의 5대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하원 환경감시위원회도 이달 말에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23일에는 런던에서 체르노빌 참사 충격을 장기적 관점에서 짚어보는 국제회의도 열릴 예정이다. 영국 대다수 원전 시설은 전력을 생산하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핵 프로그램은 정책 재검토가 끝나는 6월 발표될 예정이다.
농민들은 당장 건강 문제에 소비 감소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울파에서 양 700마리를 기르는 데이비드 엘우드(49)는 “어느 누구도 방사능 통과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다”며 당혹스러워했고, 전국농장연합 대변인은 “소비자들의 안전과 신뢰가 제일 큰 문제”라고 말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참사도 최악이었지만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면서 “수백가구의 농장 근로자들이 방사능 낙진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이상 원자로 건설에 찬성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북부 70㎞ 지점의 원자력발전소에서 4호기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방사능이 누출된 체르노빌 참사로 31명이 현장에서 숨졌으며, 낙진 후유증에 따른 사망자는 1만50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 러시아 등지에서 사고 영향을 받은 사람은 최소 900만명에 달한다는 게 유엔의 추정이다. 우크라이나는 안전을 강조하기 위해 2002년부터 폭발 원자로를 직접 둘러보는 관광상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광객 수는 매년 3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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