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사업장 감시시스템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 실태조사’ 결과 발표
“전자 노동감시 법적 규제 시급하다”

노동자 평균 2.36개 전자기술 노출…“전자기술 사용 영향 ‘노동통제 강화’ 느껴”

KT 상품판매팀, 삼성 SDI, 하이텍 RCD 코리아, 성진애드컴…. 이들 사업장은 노동자 감시시스템에 의해 노조 탄압과 노조활동 방해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 사업장들이다. 이들 사업장에서는 도청, 미행, 휴대폰 복제 추적, CCTV, 전자카드 등을 다양한 전자기술을 사용해 노동자를 감시해온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실제 사업장 감시시스템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악영향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노동자는 평균 2.36개의 전자기술에 노출되고 있으며 4명 중 1명은 ‘노동자 감시’가 주요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자기술 사용 영향으로 ‘노동통제 강화’를 가장 심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연구 의뢰한 ‘사업장 감시시스템이 노동인권에 미치는 영향 실태조사’(연구책임자 박준식 한림대 교수) 결과를 14일 오후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발표했다.<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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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2.36개 전자기술 노출…“불안감 높아”

이번 조사는 사업장 감시시스템이 많이 도입됐다고 알려진 △제조 △공공 △금융 △판매서비스 △보건부문을 대상으로 총 204부(양대노총 사업장)을 수거해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조사대상 노동자는 평균 2.36개의 전자기술에 노출되고 있으며, 인터넷이용 모니터링(56.0%)이 가장 많고 출입카드(48.1%), ERP(전사적 자원관리, 43.5%), CCTV(34.6%), 하드디스크 모니터링(31.2%) 등의 순이라고 응답했다.<그래프1 참조>

그러나 보고서는 “실제 많은 노동자들이 활용하는 전화 및 컴퓨터 하드디스크 모니터링이 실제 노동자 감시에 활용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비율(전자기술에 의한 정보수집 내용 인지 ‘모른다’ 69.0%)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며 “전자감시에 대한 불확실성이 일상에서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가 전자기술 사용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1~4점)은 전자기술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평균 3점 이상을 차지해 불안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문 및 생체인식이 3.75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RFID(전파식별) 3.45점, CCTV 3.38점, 전화송수신 모니터링 3.28점, ERP 3.19점, 출입카드 3.07점 등의 순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4명 중 1명 “전자기술 노동자 감시목적”

사업장의 전자기술이 ‘노동자를 관찰·감독·감시할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매우 그런 편이다’ 11.4%, ‘어느 정도 그렇다’ 35.3%로 응답자의 46.7%가 노동자 관찰·감독·감시 목적이라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별로 그렇지 않다’ 32.3%, ‘전혀 그렇지 않다’ 9.0%로 응답자의 41.3%는 노동자 관찰·감독·감시 역할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전자 감시 기술에 의해 감시당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에 ‘항상’ 8.9%, ‘종종’ 8.4%, ‘이따금’ 34.0%로 전체의 51.3%가 감시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전자시스템이 어떠한 형태로든 설치됐다고 응답한 169명(87.1%)의 경우 설치 이유에 대해 ‘노동자 관찰·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응답은 23.1%로 노동자 4명 중 1명이 순수하게 노동자를 관찰·감시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자기술 설치 과정에서 19.6%는 개인고지 없이 설치했으며 21.6%는 설치 후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와의 합의 또는 협의를 한 비율도 낮았다. 합의 또는 협의한 경우는 24.2%로 ‘없었다’는 응답(30.9%) 보다 낮았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44.8%였다.

“전자감시 노동자 참여 및 규제 필요하다”

전자감시 기술 효과 중 주로 노동계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측면(1~4점)과 관련해 ‘노동통제 강화’가 3.12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사생활 침해(3.11점), 노사불신 증대(2.98점), 인사상 불이익 발생(2.87점), 노조활동 저해(2.87점), 스트레스 등 건강악화(2.79점)의 순으로 나타났다.<그래프2 참조>

따라서 전자기술 설치에 대해 노동자의 참여와 규제의 필요성을 원하는 노동자의 응답 비율이 높았다. 전자기술 설치 및 활용 시 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는 응답은 ‘적극적인 노동자의 참여’(66.5%),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하다’(21.1%)로 각각 나타났다. 또한 전자감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1~4점, 4점 만점)으로 효력있는 노사합의문(43.26점)이 가장 높았으며, 그 뒤를 정부법안(3.17점), 회사내 업무규정 포함(3.07점)의 순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설문에서 제시한 전자감시 규제의 내용(회사의 감시 여부 통보, 전자기술 도입이유 설명, 전자감시시스템 설치 노동자 동의, 노동자의 전자감시 기록 접근법, 비업무장소 외 감시 불가 등)에 대해서도 모두 높은 점수를 보여줬다”고 설명, 그만큼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높음을 시사했다.

“전자 노동감시, 법적 규제 필요하다”

이와 관련 이번 연구에서는 사업장의 전자 노동감시에 대한 법적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연구팀은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은 전자 노동감시에 대해 직접적인 규율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근로자의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일반적 입법도 없는 탓에 구체적 문제 해결은 헌법상 기본권 해석론이나 미흡한 실정법에 의지한 해석론에서 해결되고 있다”고 그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사업장의 전자 노동감시를 규제하기 위해 △사업장 감시에 관한 특별법 제정 △사업장을 포함한 일반적 감시를 규율하는 법 제정 등 2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번째 방안(특별법 제정)과 관련, 연구팀은 “정보기술발달에 따른 전자적 감시 문제가 사업장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감시에 관한 일반법률을 제정하고 그 법의 적용범위에 사업장 감시도 포함하되, 노사관계의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규정을 두거나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번째 방안에 대해서는 “노동관계법, 특히 근로기준법에 근로자의 개인정보, 사생활 및 인격권의 보호에 관한 근거규정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단체협약, 노사협의 및 취업규칙에 의해 통제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연구팀은 “정보기술이 인간의 존엄성, 프라이버시, 건강 등에 미치는 광범위한 차원의 영향에 대해 국가정책 차원에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며 “국가는 작업장 감시를 비롯해 감시기술의 사회적 부작용 문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제공하고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적절한 사회적 합의와 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