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연수제와 고용허가제의 병행실시
근 10여년간 끊임없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켰던 외국인력도입제도가 드디어 산업기술연수제와 고용허가제 병행실시라는 형태로 7월 20일 현재 국회 본회의 표결절차만을 남겨놓고 있다. 여야가 합의하였고 경제 5단체가 동의하였으니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본회의 표결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니, 그 동안 이주노동자 운동진영에서 일관되게 요구해왔던 산업기술연수제 폐지와 노동허가제 실시라는 최선의 해결방안은 결국 물 건너가 버린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해도 될 듯하다. 여야는 마치 거래하듯이 병행이 어려운 두 제도의 병행실시를 결정함으로써 ‘동일 영역내에서 차별의 제도화’에 합의하였다. 이는 향후 이주노동자 문제에 또 다른 문제점을 배태하게 될 것이 예측된다.
그러나 비록 차차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도라고는 해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현재보다는 분명히 향상된 측면을 가진다는 점은 짚어야 할 것이다.
고용허가제 도입이 이주노동자에게 미치는 가장 큰 의미는 ‘노동3권이 보장되는 노동자’로서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 취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의 삶에 총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조건
현재 78.9%에 달하는 불법체류 신분인 이주노동자의 경우 총체적인 측면에서 불편함과 불이익을 안고 있다. 장시간노동, 저임금, 무방비로 노출되는 산업재해, 질병….
이 중에서 산업재해와 질병은 ‘노동’하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꼽힌다. 특히 산업재해는 이들이 주로 3D업종에 취업함으로 해서 사고성 재해, 직업성 질환 등 언제라도 이들을 급습할 수 있는 위협적인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불법체류라는 신분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고작 위험한 사업장에 취업하지 않음으로써 산재피해의 확률을 낮추는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재피해를 입지 않는다 해서 이들의 건강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익숙지 않은 풍토에서 부족한 영양,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야말로 한국인보다 더 많은 건강상의 배려가 필요함에도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이들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이 땅을 떠나기 전에는 해소되지 않는, 불법체류자로서 생존해야 하는데 따르는 강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이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이 고용허가제가 도입됨으로 해서 호전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편법이긴 하지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지고 취업하고 있는 산업기술연수생이나 해외투자법인 연수생의 경우를 본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 동안 합법적인 법의 테두리 밖에서 존재하면서 소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몇몇 선량한 한국인들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인 원리에 의해 보장될 수 있는 첫 걸음이 된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 도입은 이들의 상황을 이전보다는 호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보자.
첫째, 그 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였던 한국의 노동법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으므로 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이나 연장근로 및 휴일에 관한 조항 등 노동자들의 ‘건강한 노동’을 위한 조항들이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노동법상의 ‘모성보호 조항’은 그림의 떡인 것이 현실이다. 연장근로 및 야간근로 제한조항, 생리휴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보호조항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면 현재의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이 지금보다는 호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무방비로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산재피해를 줄이고 피해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산재피해를 입었던 이주노동자 54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실태조사에 의하면, 안전장치 혹은 안전장비의 미비가 산재발생의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한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질수록, 1일 근로시간이 길수록, 작업안전교육을 받지 않았을수록 빨리 산재를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 서툰 한국어로 노동을 제공함에 필요한 사전 적응교육이 적절한 정도로 제공되지 못함으로 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사업주도 불법체류자를 채용하면서 충분한 한국어교육과 안전교육을 위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지 않았다. 거기에 불법체류라는 약점과 이를 악용하여 산재로 처리하면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겠다는 사업주들의 협박으로 인해 산재보상보험법 절차 포기에 치료비 자비부담, 산재사고 후 해고(절대적 해고금지기간에도 해고는 쉽사리 이루어진다.) 등 이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업장에서 불법체류자 채용사실이 밝혀질 경우 회사가 입게 될 불이익을 염려하여 이들의 취업에 대한 어떤 자료도 남겨놓지 않아 막상 산재보상보험법의 절차를 밟게 되었을 때에도 평균임금 하락 등 이들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았다. 대다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취업하는 상시 근로자 30인 미만의 소기업이 부도라도 난다면 취업을 증명해줄 수 있는 증인을 찾지 못해 상황은 더더욱 어렵게 된다. 직업성 질환의 경우, 자신이 근로조건에 대해 대등하게 계약을 맺을 수 없었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잦은 사업장 이동, 의료서비스의 미흡으로 조기발견이 어려워 그 실태조차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합법적인 노동자로서 취업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정도의 한국어교육실시, 충분한 안전교육 실시, 정기적 건강검진, 산재보상보험법의 정상적 적용 등이 보장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산재피해는 훨씬 경감할 것이다.
셋째, 사회보장제도의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됨으로 해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나 일부 선량한 한국인들의 온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질병 예방과 치료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특히 그 동안 강제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각종 사고로 인한 후유증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경우는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고용허가제 도입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일부 해소시킬 수 있고 경감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고용허가제 도입에 따라 자동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노동자’로서 도입되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보장을 요구함에 있어 법적 제약이 상당히 해소된 상태에서 고용허가제 실시가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 자신들의 권리의식의 고양과 함께 한국 노동운동진영의 적극적인 관심과 견인이 요구된다.
차차선의 제도로 평가받는 고용허가제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투쟁, 고용허가제의 운용체제가 이주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이끌어내는 투쟁, 그리고 고용허가제보다 더 나은 외국인력도입제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이 향후 노동운동권에 요구되는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