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진짜로 나가야 되나요?”

 

최근에 필자는 ‘여성이주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강의’를 매주 진행하고 있는데, 강의에서 만나는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이 질문은 2001년, 정부가 체류기한을 연장해주면서 강제추방방침을 세웠을 때도, 2002년 또 한번 체류기한을 연장해주면서 강제추방방침을 세웠을 때도 계속 접했던 질문이다. 이처럼 똑같은 질문을 매년 접하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 하나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운영에 관한 것이다. 지난 8월 고용허가제 관련 법안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40만을 넘어서고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도, 우리나라에는 이주노동자 관련 법안이나 정책이 전무하였다. 정부는 오로지 허울뿐인 ‘산업기술연수생제도’만을 붙들고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는 ‘눈가리고 아옹’식으로만 대응했던 것이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대응하다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면 ‘강제추방방침’만을 천명하였고 그 때마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던져졌던 것이 바로 ‘체류기한연장’이다. 정부는 체류연장기한이 끝나면 몇몇 공단을 본보기로 단속하고는 다시 ‘눈가리고 아옹’ 식의 자세로 돌아갔으며, 이주노동자들은 단속기간동안 몸을 숨겼다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이런 식의 숨바꼭질이 몇 차례 거듭되면서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으며, 이주노동자들 중 많은 수가 이번 ‘강제추방’도 똑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번에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자진 출국을 하지는 않을 듯 하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자진출국기한인 오는 11월 15일을 기해 강력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다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경로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부의 입장과 내년 8월 시행 예정인 고용허가제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아마도 사실일 듯 하며 분명 이전과는 다를 듯 하다.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방침을 믿지 않고 버티고 정부는 강력한 단속을 시작한다면…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양치기 소년(정부)의 계속되는 거짓말 때문에, 동화와는 다르게 마을 사람들(이주노동자)만 피해를 입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에 있어서 ‘기준’의 문제점이다. 정부는 지난 8월 고용허가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한시적 경과조치로서 2003년 3월 말 현재 기준으로 국내에 4년 미만 체류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만 고용허가를 인정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결국 정부안에 따르면, 국내에 4년 이상 거주한 자의 경우에는 자진 출국하거나 강제 추방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4년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이다. 국내에 4년 이상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오히려 한국어도 능숙하고 기술도 뛰어나서 국내 경제에도 효과적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정부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제시한 바 없으며, 4년 이상 체류해서는 안 된다는 앙상한 원칙만을 내세우고 있다.

 

아무런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당신은 4년이 넘었으니 출국해야 한다는 식의 정책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듯하다.

 

과거에 정부가 고용허가제 도입과 관련해서 주장했던 내용들을 살펴보면 그 의도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데, ‘정주화 방지’와 ‘저임금 고수’가 그 숨겨진 의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에 정부는 고용허가제 도입과 관련한 우려 지점으로 ‘합법 체류 자격 부여에 따른 임금 인상’을 몇 차례나 언급한 바 있으며, 고용허가제 도입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지점으로 ‘정주화 방지’를 몇 차례나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다.

 

결국, 4년 이상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은 국내에 정주화할 가능성이 크고 4년 미만의 저숙련 이주노동자들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기 때문에, 출국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국가간 교류가 활성화 되고 전세계의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정부 스스로도 ‘Globalization’ 을 외치고 있는 때가 아닌가?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의 ‘정주화 방지’라… 조금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더욱이 이들이 장기 체류하게 된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정부 책임이라는 것이 자명한데도 말이다.

 

이처럼, 정부는 아직도 ‘눈 가리고 아옹’식의 정책 기조를 버리지 못하고 현실성 없고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눈에 보이는 문제들만 비껴가려는 듯 하다. 결국, 이와 같은 정부 정책은 근본적 문제 해결은 하지 못한 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갈 것이며, 그에 따르는 부담은 모두 이주노동자들이 떠안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이주노동자들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을 이방인이 아닌 노동자로 인식해야 할 것이며,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우리 법의 정신을 정부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