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재보험개혁 운동의 시작과 주장

 

2001년 10월 27일 ‘산재보험제도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가 구성된 후 2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공대위는 2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보장 후평가 제도’ 및 ‘산재노동자의 원직장 복귀 의무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교육, 선전, 집회, 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구체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노동조합 및 관련 전문가 등이 산재보험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정부와 자본측도 문제의 성격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동안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자를 확대하고, 급여범위를 넓히자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4대 사회보험의 도입에 따른 사회보장체계 확립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맞물려 일정하게 힘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적용대상자 확대 등 일정한 제도적 개선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무차별적인 산재 발생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정부와 자본의 필요성이 주요한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 개선과정에서 노동자건강권운동진영은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보다 주로 제도 개선에 따른 허점을 제시하고 한계를 비판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요한 활동의 영역은 산재보험제도에 포괄되지 못하는 노동자에 대한 개별적 보상투쟁과 보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대부분의 활동이었다.

 

이러한 측면서 공대위 활동은 현재 산재보험제도가 갖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그 구조 자체에 대한 개선을 최초로 제기한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공대위는 현장 노동자라면 누구나 경험한 직접적, 간접적 방식의 산재은폐, 근로복지공단의 권위적 태도, 평균임금이 낮은 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노동자는 생활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급여수준의 문제, 산재 후 재취업의 전망이 봉쇄되고 실업 상태에 빠지게 되어 열악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산재노동자의 문제 등이 사실 서로 관계없는 문제가 아니라 산재보험제도가 갖는 구조적 한계에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인정 여부를 먼저 심사한 후 산재 보상이 이루어지는 방식’에서 ‘산재노동자가 의료진과 만나는 순간부터 일정 기준만 되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산재노동자의 원직장 복귀를 제도화하고 의무화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산재노동자의 실업 문제, 재활 문제 등은 해결될 수 없으며, 인권적 측면 뿐 아니라 사회적 효용 측면에서도 원직장 복귀의 제도화는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IMF 체제 이후 심화된 노동유연화 정책은 비정규직노동자를 비롯한 중소영세, 여성, 장애 노동자들을 최소의 안전망도 없는 정글 속으로 밀어 부치며 빈곤을 심화시켜왔다. 노동운동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조세개혁, 교육개혁, 4대 사회보험의 개혁과 공공성 강화 등 사회임금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왔다. 건강보험,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제도 개악을 막는 투쟁은 임금노동자들의 직접임금 하락을 막기 위한 투쟁과 다를 것 없는 시급한 과제임을 노동자들의 관심과 요구가 말해주고 있다.

 

공대위가 제시한 5대 과제는 민주노총이 제시한 사회보험 개혁과제의 하나로 정식화되어 있다. 지금 당장 가시적인 투쟁으로 요구가 분출하지 않더라도, 사회보험 개혁과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은 시급한 현안 중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비정규직노동자, 영세사업장노동자, 이주노동자들처럼 기업복지혜택을 누릴 수 없는 주변부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은 절실히 필요한 안전망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산재보험개혁 요구는 대중적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산재보험에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조직노동자들은 산재보험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우며, 사전승인제 폐지가 정말 필요한 비정규, 주변부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 접근할 기회 자체가 막혀 있기 때문에 이 요구가 생소하다.

 

이런 의미에서 산재보험의 문제점에 대한 목적의식적 선전과 교육이 요구됐으나, 조직하지 못하였으며, 대중적 슬로건을 개발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원직장복귀 법제화 역시, 산재노동자가 자신의 일터로 다시 돌아갈 구조를 만들라는 것은, 노동유연화의 단맛에 빠져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최소의 보호장치도 마련되지 않는 현실에서 절박한 요구로 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기에 산재노동자의 원직장 복귀는 조직된 산재노동자 대중의 입에서 나온 요구일 때, 그들의 입으로 자본과 국가에게 요구할 때에 힘을 가질 것이다.

 

정부나 자본의 대응을 끌어내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위로부터의 정책제안이 나왔지만,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로 재구성되지 못한 것이다. 산재보험개혁요구에 도덕적 해이의 누더기를 덧씌우는 자본과 정부에 대해 큰 소리로 ‘아니다’ 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만들지 못하였다.

 

산재보험개혁요구는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으나, 노동자도, 자본과 국가도 이에 대한 관심과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노동자건강권운동진영이 산재보험개혁을 운동과제로 설정하고, 준비한다면, 우리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2. 활동의 한계

 

산재보험제도개혁투쟁은 일정 부분 정책적 진전과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조직적 기반 측면에서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다. 가장 핵심적인 조직력을 담보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경우 산재보험개혁과제가 민주노총의 수많은 현안에 밀려 민주노총의 주요 과제 또는 의제로 형성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근골곡계 집단요양투쟁의 성과물 또는 과제로서 산재보험제도개혁투쟁이 결합되지 못함으로서 현장과 결합력을 높이면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조건이 상실하게 된 문제를 발생하였다.

 

사실 민주노총의 상층 단위에서 집단요양투쟁의 동력과 산재보험제도개혁의 정책적 과제와 결합하려는 시도가 일부 있었지만, 현장 노동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선전이 부족한 측면, 내부 역학관계에 따라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 측면 때문에 실제 정책으로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공대위도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에 지지를 보내고 성명서, 집회, 선전전 등을 통해 지원활동을 전개했지만, 현장의 동력과 정책적 결합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점이 존재하였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러한 기획을 충분하게 수행하고 구체적으로 집행해나갈 정책적 능력 및 집행력이 담보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산재보험제도개혁을 위해 공대위가 구성되었지만, 초기 공대위 추동 세력이었던 일부 단체가 간사 단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로 한 애초의 결의와 달리 역량 배치와 계획에 문제를 보였고, 결국 공대위 활동에서 발을 빼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대위 활동에 중대한 활동상의 제약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점도 중요한 평가지점이라 하겠다. 그나마 취약한 노동자건강권운동진영에서 어렵게 결의를 모아 진행한 공대위 활동에서 추동 세력이었던 단체가 공대위 활동에 대한 참여 수준을 줄이거나 빠지는 모습은 향후 연대활동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공대위에 결합한 단체들이 대부분 미약한 조직력 때문에 산재보험개혁운동을 자기 조직의 운동과제로 만들지 못한 것도 공대위의 조직적 한계였다.

 

3. 남은 과제

 

지금, 공대위는 더 이상 산재보험제도 개혁투쟁을 연대투쟁의 방식으로 전개하기에 공대위 참여 단체의 조건과 상황에 비추어볼 때 힘들다는 평가에 기초하여 공식적인 해산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공대위 해산이 곧 산재보험개혁투쟁이 불필요하다거나 연대투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 이후 산재보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였고, 역설적이게도 미조직 영세사업자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개별 요양이 오히려 힘들어졌다는 점 때문에 더 더욱 근로복지공단이 쥐고 있는 ‘사전승인제도’를 철폐하고 산재보험에 대한 초기 진입이 매우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공대위와 같은 연대활동이 아니라 하더라도 노동자건강권운동진영은 내부 조직력을 강화해나가는 노력과 함께 산재보험제도개혁의 과제를 사회화시키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특히 민주노총은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의 동력을 산재보험개혁 과제와 결합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한 노동자건강권운동진영의 정책적 지원이 요구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