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언론과 건강캠페인에서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대개 금연과 절주, 규칙적 식사와 운동, 수면 등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과연 노동자들이 이 권고사항들을 지키면 건강해질 수 있을까?
건강을 보는 두 가지 시각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일찍 사망하는 이유를 개개인들의 행동에서 찾는 시각들이 있다. 매일 아침 방송되는 TV 프로그램이나 건강캠페인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 어떤 건강식품이 좋더라. 등등.
이러한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적 연구들 중에 이른바 ‘장수마을 연구’라는 것이 있다. 한국 노화학회, 백세인연구단 등에서 ‘연구’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장수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오래 까지 직업활동을 해왔다는 것. 남성은 75세, 여성은 72세까지 농사일 등 생업에 종사했다. 1백세 이상 장수자의 38%는 지금도 집안일과 마을 나들이, 밭일 등 육체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가장 즐기는 여가활동은 TV 시청으로 67%를 차지했다…. 1백세 이상 장수자가 인구 10만명당 21인을 초과하는 이른바 장수촌이 전국적으로 14개 시.군에 달한다. 이들 지역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주변의 중산간 지역에 몰려있으며 전남 및 제주 해안이 일부 포함된다1).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 85세 이상 노인 비율이 높은 지역이 “담양-곡성-구례-순창”이고 이곳이 한국의 장수벨트라는 연구도 있다2).
직접 만나본 이들의 두드러진 공통점 중 하나는 몸을 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일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토란줄기나 고추를 다듬고, 텃밭을 일구며 잡초를 뽑는 것은 운동 삼아 하는 적절한 노동인 셈이다…..식사 습관은 어떠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삶은 돼지고기, 국수, 나물 등 개인차를 보였으나 평상시 메뉴는 대체로 쌀밥과 무공해 또는 저공해 채소로 차린 소박한 밥상이다3).
이러한 ‘연구’의 치명적 약점은 사회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농현상으로 젊은 층이 농촌을 떠나 노인인구가 농촌에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하여 노인인구비율이 농촌에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도 고려되지 않는 연구가 무슨 연구인가? 이들이 들고 있는 장수의 특징을 보자. 노동을 한다고? 농촌의 노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 육류섭취가 적다고? 소득수준이 낮다보니 음식물 섭취는 당연히 육류섭취가 적다. 돼지고기를 좋아한다고?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가? 이러한 ‘연구’가 주류의학계와 매스컴이 연구하고 선전해대는 것들이다.
건강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이 있다. 건강이나 수명이 사회적 요인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최근 진보적 소장학자 8명이 펴낸 ‘빈곤과 건강’이라는 연구서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에서의 건강수준은 소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흡연, 음주, 혈압 등의 이른바 주류언론과 주류학자들이 선전하는 위험요인이 똑같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일찍 죽고 질병에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소득등급을 다섯 단계 또는 네 단계로 나눌 경우,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군보다 가장 낮은 군은 사망률이 2배 높은 것이다.
이에 비하여 의료 서비스는 저소득층이 고소득층에 비하여 훨씬 적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빈곤층은 고소득층에 비하여 건강수준은 낮으면서도 의료이용은 적게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격차는 국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002년 UNDP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미화 1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는 인구가 12억 명에 이르며, 매년 1,100만 명의 5세 이하 어린이가 사망하고 있다. 1998년 현재 영아사망률은 OECD 국가가 1,000명 출생당 6명인데 비하여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은 무려 92명에 이른다4).
간단하게 말하면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하고 흡연을 안하고 절주를 하고 고혈압을 치료해도 부유층이나 기업주보다 두배 이상 많이 죽고 이를 수명으로 계산하면 10년 이상 못산다는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다. 심지어 노숙자들의 평균수명은 50살에도 못 미친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부자들이나 기업주보다 최소 30년 이상 일찍 죽는다.
개인의 건강이나 수명이 개인의 노력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물론 그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과 수명의 가장 큰 규정요인이다. 노동자 개인이 아무리 건강관리를 해도 건강의 불평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원인들이 제거되지 않는 한 노동자는 건강할 수 없다.
건강보험과 노동자의 건강
그렇다면 건강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노동자들을 일찍 죽게 하고 병들게 하는 사회적 원인들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것이 낮은 우리사회 의료보장의 매우 낮은 보장률이다. 간단히 말해 건강보험이 보험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보험은 사고에 대비하여 평소에 이를 대비하자고 만든 제도이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인 사회보장제도는 전국민이 병자나 노인들을 위해 조금씩 십시일반하여 돈을 모아 중병이나 노후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고가 터지면 , 즉 가족 중 한 명이 중병에 걸리면 건강보험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건강보험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보험증은 의료할인쿠폰에 지나지 않는다.
표 1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공적보험(건강보험과 의료급여) 보장률은 45%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병원비가 1000만원이 나오면 자기 주머니에서 550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 중 한사람이 암에라도 걸리면 진료비가 2-3000만원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암치료나 난치병 치료는 한 두 해에 끝나는 일도 아니다. 단돈 몇 백 만원 구하기도 힘든 노동자가 수천만원이 넘는 돈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처음에는 집을 팔아 월세로 또는 월세에서 사글세 방으로 옮긴다. 그래도 병원비를 마련할 수가 없어 퇴직금을 얻기 위해 사표를 쓴다. 친척들에게 몇 백만 원씩 빌린다. 그래도 병원비가 더 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머지 가족들의 앞날을 위해서 환자를 죽이거나 죽기까지 치료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 중증질병에 걸린 딸의 병원비를 대다가 결국은 자신의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낼 수밖에 없었던 어느 노동자 애비의 이야기이다. 이것이 불쌍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인가? 아니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환자의 생명인가 아니면 나머지 가족들의 앞날인가 라는 ‘야만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이다.
부자들은 그리고 기업주들은 평소의 저축이 있으니 중병이 생겨도 걱정이 없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오로지 사회보장뿐이다. 다른 나라들을 보자. 대개 80% 이상의 의료비를 정부가 부담한다. 그리고 그 의료비도 일정액수 이상이 되면 본인부담 상한제가 있어 얼마이상의 돈이 들면 정부가 그 돈을 부담한다. OECD 국가라고 자랑을 하는 한국 정부, 걸핏하면 글로벌 스탠다드를 운운하는 한국정부, 세계 무역대국 12위라고 자랑하는 한국정부가 정작 따라가야 할 글로벌 스탠다드는 2만불 국민소득의 장미빛 미래를 떠들 일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의료보장의 스탠다드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에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하고 진료비의 80%를 정부가 부담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정부가 하는 일은 다른 것을 다 떠나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예산액의 90%를 삭감한 일이다. 참여복지? 일인당 200만원 이상의 진료비가 들 경우 정부가 그 이상의 돈을 대신 내주는(물론 국민세금으로 내주는 것이다)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하려면 1년에 약 8000억원 가량의 돈이 든다. 이렇게만 하면 중병에 걸린 딸네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일은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 예산에 1조 5천억원의 국방비를 증액시켰고 여기에 더해 이라크 파병에만 1조원을 쓰겠다고 한다. 이게 노무현 정부가 내세우는 참여복지이다.
공공의료와 노동자의 건강보장
그런데 왜 노동자가 기업주나 부유한 사람들에 비해 질병에 많이 걸리고 건강하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일까? 그 원인은 바로 공장과 사무실에서, 즉 그들의 노동에서 찾을 수 있다. 한해에 3천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산재와 직업병으로 죽어나간다.
노동자들의 실수인가? 기업주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산재에 관한 기업주가 후원하는 연구나 주류학계의 연구들을 보면 “산재다발 노동자들의 특성연구”와 같은 산재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는 연구들이 수없이 많다. 산재조차도 노동자 개인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안전시설의 부족, 노동환경의 열악함, 노동강도의 강화 등으로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고 직업병으로 과로사로 장애인이되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98년 경제위기 이후 안전기준의 규제완화와 급격히 늘어난 노동자 사망률만 보아도 이는 명확하다5). 산재와 직업병 같은 직접적인 질병만이 아니다.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한 장기적 피로와 스트레스는 이른바 성인병이라는 고혈압, 당뇨, 암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 이 부분은 다른 글들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으리라 짐작되어 여기서는 줄인다. 다만 노동자가 불건강한 원인은 바로 노동자가 기업주의 이윤을 위해 인간이 아니라 기계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 명확해져야 한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기업주의 이윤을 위해 뼈빠지게 일을 하다 산재에 걸리고 직업병에 걸리고 성인병에 걸려 병원에 가면 그 병원에서조차 노동자는 또 한번 그 병든 몸뚱아리마저 다시 한번 기업의 이윤을 위한 도구로 바쳐질 수밖에 없는 기막힌 현실이다. 표 2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사적의료기관비율은 90%가 넘는다. OECD 평균 공적의료기관비율이 75%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공적의료기관의 비율은 10%이다.(표 2참조)
그런데 그 사적의료기관이 어떤 곳인가? 대표적인 병원을 생각해보자. 삼성병원과 현대병원이 대표적인 재벌병원이고 사적의료기관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본은 그것이 병원자본이건 산업자본이건 이윤을 위해 존재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노동자의 병든 몸은 적정진료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돈이 되는 진료와 과잉진료의 대상이 된다. 단적으로 보아 한국의 CT와 MRI와 같은 고가의료장비의 인구당 비율이 전세계에서 미, 일에 이어 3위이다.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병이 많아 이런 고가장비들이 필요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들도 고가장비를 이렇게 많이 갖추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평균수명은 우리보다도 훨씬 높으며 의료비부담도 적다. 이러한 이유는 오직 하나 즉 사적 자본이 의료부문에서도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불필요한 고가장비를 수입해왔기 때문이다. 고가장비를 도입했으니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불필요한 검사가 남발된다. 두통만 있다하면 엠알아이를 찍고 배가 아프다면 CT를 찍는다. 이른바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이 진료비는 똑같은 병으로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을 대 드는 비용의 2-3배가 든다. 가뜩이나 부족한 국민의 보험료로 걷은 보험료가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병원부문에 투자된 자본의 돈벌이에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의 주머니에서 그 많은 돈이 나가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높은 질의 치료라도 받는 것인가? 병원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지적하고 투쟁하고 있듯이 사적의료기관은 다른 모든 기업과 마찬가지로 구조조정을 통해 의료인력과 의료보조인력을 최대한 줄이고 병원에서 맡아야할 간병을 환자보호자에게 맡긴다. 격무에 시달리는 병원노동자들이 환자에게 친절할 수 있겠는가 아니 제대로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제대로 챙길 수나 있겠는가?
병원에서 환자가 이윤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보살펴야 할 대상이 되려면 병원이 이윤추구와 무관한 공공의 소유와 운영이 되어야만 한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국가의료체계의 근간이 공공의료기관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만 낭비 없는 의료행위, 적정한 진료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고 재정절감을 통해 의료보장의 확대가 쉬워진다.
어떻게 하면 노동자가 건강해 질 것인가?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매스컴이나 수많은 건강캠페인에서 말하는 건강수칙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노동현장에서 기계취급을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투쟁하는 것이다. 노동환경과 노동강도를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 수 있도록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료보장과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의 모자람을 이야기하면 정부당국자와 주요언론들은 ‘그거야 그나라들이 잘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답을 한다. 그러나 잘살아도 의료보장이 엉망인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평균 국민소득은 훨씬 높지만 전국민의 15%인 4500만명이 아예 의료보험증이 없다. 한마디로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복지후진국이다. 바로 공공보험과 공공의료기관이 적어서 그렇다. 거꾸로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공공의료를 대폭확충하고 의료보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영국이 그 체계를 도입하였던 것은 1945년이었다. 그 당시 영국이 지금 우리나라보다 잘살았던가? 아니다. 결국 한 사회의 경제적 수준과 사회보장과는 별 연관이 없다.
오히려 사회보장수준과 연관이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각과 투쟁이다. 유럽의 사회보장이 잘된 나라들은 어떻게 그런 상태에 도달했을까? 기업주들과 정치인들이 알아서 복지혜택을 주었을까?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잘 알다시피 투쟁 없이 얻어지는 노동자들의 몫은 하나도 없다. 이른바 사회보장 선진국들의 노동자들은 수십년 동안 아니 거의 백년 이상 사회보장을 위해 싸워왔다. 나라마다 그들의 사회보장을 얻어낸, 의료보장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를 늘린 과정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투쟁의 역사였다.
기업주들과 부자들에게 사회보장은 별 필요가 없다. 자신들은 병에 별로 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에 걸려도 쌓아 놓은 돈이 있고 노후보장도 걱정이 없다. 또 사업주는 의료보험이 확대되면 보험료를 50% 부담해야 하고 연금도 그만큼 부담해야 한다. 공공의료가 늘어나면 당장삼성병원과 현대병원은 과잉진료하기가 어려워진다. 또 의료보장이 확대되면 삼성생명이나 엘지보험같은 곳에서 암보험이나 생명보험을 팔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재벌들은 의료보장 강화와 공공의료기관 강화에 죽어라고 반대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다르다. 의료보장이 되어야만, 사회보장이 강화되어야만 기댈 곳이 조금이나마 생기게 되고 최소한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사회보장이 잘될수록 노동자들은 개별 기업주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의료보험이 되고 노후보장이 되며 실업보장이 있고 교육이 공공적으로 보장되면 개별 기업주가 보장해주는 것보다 사회가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부분이 커지게 된다. 간단히 말해 기업에서 해고위협을 해도 충분히 강력하게 싸울 수 있는 든든한 빽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줄여보도록 하자.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무엇인가? 건강수칙을 지키는 것인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노동자는 기업주와 부유층보다 두 배는 많이 죽고 10년이나 이 아름다운 세상을 먼저 하직해야만 한다. 이것이 숨김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한가지이다. 노동자의 몸이, 건강과 생명이 자본의 이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노동자가 기계나 소모품 취급받지 않게 하는 투쟁, 그리고 의료보장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 그 방법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지는 방법? 그것은 건강수칙의 준수이전에 노동자의 건강을 저해하는 사회적 원인과 제도에 맞서는 투쟁이다.
각주
1) 중앙일보, 2002.7.23 “한국 장수자들 대부분 산간지역 거주, 데치거나 찐 음식 먹고…70세 넘게 농사일 즐겨”
2) 서울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 2003.11.8 ‘장수 벨트(Belt)지역 특성에 대한 심포지엄’
3) 문화일보 2003, 10, 06 “놀면 뭐해 많이 움직여야제”
4) 빈곤과 건강, 김창엽외, 2003.9 한울
5)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다루는 부분이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