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구소련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최초로 채택하고, ILO에서는 1935년에 1주 40시간 노동을 제47호 조약으로 발호하였습니다. 노동시간단축의 역사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움 삶 쟁취의 역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ILO에 의한 보편성은 이미 세계의 상식이 되어 있고 여기에 기반을 둔 나라들은 좀 더 나은 인간적인 삶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제기준은 뒷전으로 하고 세계의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주40시간을 지난 2003년 8월에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이 ILO에 가입한 시기가 1991년이므로 세계의 보편적 상식이라 할 수 있는 주40시간노동을 한국이 대놓고 무시해왔던 기간은 무려 십수년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한국은 산재왕국이란 오명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연간 2,50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노동으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여 이로 인하여 산업재해가 다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OECD 국가중 연간노동시간이 2,000시간을 상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2002년도 OECD 주요국 연간노동시간
한국이 주40시간제를 채택하기 약 5개월전 프랑스는 주35시간 법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우리의 노동법이 선진국 수준으로 볼 때는 아직도 ‘정체(停滯)’ 그대로의 상황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주5일제 도입논의는 IMF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법제화와 함께 일자리나누기(work-sharing)차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차일피일 미뤄져오다가 정부안이 작년 8월에 법제화된 것입니다. 정부안이 통과되다보니 오히려 개악된 부분 또한 많습니다.
개정된 내용으론 우선 법정근로시간이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단축되었으며, 월차유급휴가를 아예 삭제하고 연차유급휴가를 대폭 축소하였습니다. 또한 여성노동자의 경우 월1일의 유급생리휴가를 무급화시켰으며 노동자 건강을 훼손할 위험이 높은 변형근로시간제를 확대하였습니다. 주40시간으로의 단축을 제외하곤 개악된 법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자본의 대표격인 경총에선 지침을 발표하였는데,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초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주5일은 7시간, 1일은 5시간 혹은 1일 7시간 15분, 격주 주휴 2일제 형태등을 제시하면서 기형적인 40시간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주40시간으로의 법정근로시간단축은 연속된 2일간의 휴무 보장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있으므로 경총의 위와 같은 기형적 주40시간 지침은 자의적인 아전인수격 해석에 불과합니다.
어떻든 주40시간 즉 주5일제는 장시간노동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한국노동자들에겐 분명 유익한 것임엔 분명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저임금 상태의 대다수의 한국노동자들이 이틀간의 휴일을 선택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왜냐하면 주40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된 만큼 임금이 저하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은 부칙에서 사업주의 임금보전의무를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강행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에 불과하다고 이미 해석을 내린 바 있습니다.
또한 주5일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도별로 사업장 단계에 따라 실시하기 때문에 50인 미만의 한국의 대다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주5일제는 아직 요원하기만 합니다. 이렇듯 한국의 노동현실을 무시하고 형식적으로 도입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나, 주5일제가 실질적으로 적용될 경우 근로시간단축은 분명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노동자 건강권 쟁취에 이바지할 것임엔 틀림없을 것입니다.
주5일제는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감소를 도모하고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를 제공하여 노동력의 재생산 재충전에 기여하고 삶의 질을 개선시킬 여지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 위해선 일정요건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임금보전의 문제와 여가를 영위할 수 있는 사회복지 인프라의 구축, 재교육차원의 자기개발의 기회 제공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등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기반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5일제를 시행한다면 70%에 육박하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모면하기 위하여 시간외 및 휴일근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자본의 노동착취는 여전할 것이며, 개악된 근로기준법 내용을 이용하여 주5일제를 무색하게 만드는 기형적 형태의 변형근로시간제를 운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IMF이후 대대적으로 단행된 구조조정이후 한국의 노동현실은 비정규직 양산으로 대표되는 고용불안 문제와 살인적인 노동강도강화로 인한 산업재해 급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매년 2,700여명이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약 8만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5일제가 명실공히 산업재해와 직업병 감소를 도모할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고 과로에 노출되지 않도록 실시되려면 고용안정의 문제 또한 연동해서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주5일제가 현실적으로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선 임금삭감없이 적용되어야만 하며 사회복지 및 교육 인프라의 구축 , 그리고 무엇보다 고용안정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제반 여건 위에 시행되는 주5일제야말로 노동자 건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