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급이 이루어진 경우의 손해배상 관계

사건의 내용 – 크레인에서 자재를 받아 내리다 고압선에 감전되다

 

박OO은 제주시내에 신축 중이던 빌라 공사를 하던 도중 고압선에 감전되어 화상을 입었다. 위 빌라 공사는 △△건설이라는 업체가 수주를 받아 진행 중이었는데, △△건설은 그 공사 과정 중 골조 작업 부분을 최OO에게 하도급하였고, 박OO은 하도급을 받은 최OO에 고용된 노동자였다. 최OO이 위 작업을 할 때 △△건설의 직원들이 위 공사 현장에 상주해 있으면서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점검하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최OO은 위 골조 공사를 거의 다 마친 후 각 층에 널러져 있던 자재를 크레인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리려고 하였다. 크레인 작업은 이전에도 몇 차례 이루어졌는데 그 때는 모두 위 건물 뒤쪽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위 날은 유독 위 건물 앞쪽에서 크레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한편 거기에는 고압전선이 설치되어 있었고 모두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건설의 직원은 최OO이 위와 같은 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냥 방치하였다. 박OO이 건물 아래에서 크레인에 매달린 자재를 받아 내리던 중 크레인 선이 전선에 닿아 박OO은 고압선에 감전되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당사자의 주장 – 하도급업체의 불법행위에 대해 원청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다

 

박OO은 위 사고로 오른쪽 어깨와 오른 손에 부상을 입어 오른 손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박OO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여 승인을 받았다. 최OO을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있지는 않았지만, 원수급자인 △△건설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박OO이 요양승인을 받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산재보상보험의 적용에 있어서는 사업이 수차의 도급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경우에도 그 원수급인을 사업주로 보기 때문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9조), 박OO이 당연히 요양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OO은 치료를 종결하면서 장해 등급 4급(“한 팔을 팔꿈치 관절 이상에서 잃은 사람”)을 받았고, 연금을 선택하였다(4급의 1년치 연금 액수는 평균임금×224일분이다). 다만 치료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든 관계로 2년치는 선급으로 받았다. 연금을 선택한 경우에도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자는 4년분까지, 그렇지 않은 자는 2년분까지 선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위 법 제42조 제5항).

 

박OO이 이처럼 공단으로부터 산재보험급여를 지급받았으나 당장 생계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박OO은 회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결심하였다. 박OO은 최OO과 △△건설 모두를 대상으로, 동시에 또는 선택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최OO이 영세업자로서 가진 재산이 없었으므로 △△건설만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박OO은 그와 동시에 △△건설의 재산(부동산과 은행 계좌)을 파악하여 가압류를 하였다.

 

△△건설은 골조공사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OO에게 완전히 하도급을 주었으므로 골조공사를 진행하던 중 발생한 위 사고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건설의 주장대로 하도급을 준 원청업체는 하도급 업체가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민법에는 “도급인은 수급인이 그 일에 관하여 제삼자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 그러나 도급 또는 지시에 관하여 도급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되어 있다(제757조). 이 규정에 의하면 도급인은 수급인이 행한 불법행위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책임이 없고, 다만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지면 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위 규정은 완벽한 형태의 도급, 즉 일의 진행 및 완성에 대해 수급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형태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현실에서 그런 형태의 도급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수급인이 영세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배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실에 위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법원은 위 규정에도 불구하고 도급인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두 가지 상황을 인정하였는데, 그 첫째는 하수급인이 공사에 관여한 정도 및 도급인이 사전에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도급인이 직접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이고(1992. 10. 27. 선고 91다30866), 그 둘째는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이다.

대법원은 “도급인이 수급인의 일의 진행 및 방법에 관하여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유보한 경우에는 도급인과 수급인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 및 피용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으므로 수급인 또는 그 피용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도급인은 민법 제756조에 의한 사용자책임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이치는 하도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도급인이 단순히 공사의 운영 및 시공의 정도가 설계도 또는 시방서 대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확인하여 공정을 감독하는 데에 불과한 이른바 감리만을 행한 경우에는 그러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보았다(1992. 6. 23. 선고 92다2615).

결국 도급인이 감독을 했느냐 감리를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법원은 도급인의 직원이 현장에 상주하였는지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OO은 위와 같은 판례를 근거로 원청업자인 △△건설에게 기본적인 안전 시설 설치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건설의 직원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공사를 감독하였으므로 △△건설이 감독자로서 사용자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의 선택 – 원청업체가 사고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

 

박OO은 재판과정에서 △△걸설의 직원이 실제로 현장에 상주하였는지 여부 및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입증하기 위해 △△건설의 직원이었던 정OO와 크레인기사 구OO 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였고 사고 발생 장소의 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검증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고압선 근처에서 공사를 하는 경우 시공업자가 어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에 사실조회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법원은 고압선에 대한 안전조치는 원청업체가 해야 한다는 사실 및 위 공사현장에 병이 파견한 직원 정OO이 현장대리인으로서 공사를 지휘?감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법원은 그런 사실을 토대로 “피고(△△건설)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로서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정OO)와 동일한 장소에서 작업을 하던 피고의 수급인(최OO)이 고용한 근로자인 원고(박OO)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 즉 크레인의 작업 위치 및 유로폼의 적재 위치의 적절한 선정을 위한 지휘, 감독과 고압선에 대한 절연조치 등의 안전조치를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할 것이므로 위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제주지방법원 2004. 2. 3. 선고 2003가단8083).

법원은 대법원이 인정한 위 두 가지 상황 중 첫 번째 경우를 이 사건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현재 법원은 위험의 공평 부담이라는 차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청업체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청업체라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서는 안 된다. 이익을 향유한 자가 그 위험도 부담해야만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법원이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