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논리의 함정
산재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은 대부분 크게 ‘사전 예방적 정책차원’과 ‘사후 보상적 대책마련’이라는 틀로 나누어 접근한다. 정책수립과정이나 산재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에 대한 분석의 틀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 접근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산재문제에 대한 정책 보고서와 자료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논의가 이러한 관점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 왔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식적 접근은 ‘사전=예방’과 ‘사후=산재노동자 보호’라는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사전예방=산업안전보건법’과 ‘사후조치=산재보상보험법’이라는 사고가 지배하도록 한다. [그림 1]과 같이 우리나라 노동안전관련 법이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라는 양대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고체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체계에서 산재예방은 주로 전자에 국한되기 쉽고 논의자체가 산업안전보건법의 틀 안에 묶여 버릴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산재예방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위와 같이 사전조치는 ‘예방적 차원’으로, 사후조치는 ‘피해자 구제’의 차원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산재예방 대책을 사전조치에 국한시키고 사후조치에 대한 부분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일반적인 오류를 낳게 된다. 또한 사후조치를 사전예방과 연계시키기 위하여 취지나 목적이 본질적으로 다른 산재보상보험법과의 연계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산재보험료율을 개별사업장의 산재율과 결부시키려는 시도나 주장이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도는 산재보험제도가 산재예방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피해자의 보호와 구제를 목적으로 사전예방과 다른 차원의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반적 오류라고 판단된다. 피해자의 보호와 구제 그리고 사회안전망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사전예방강화라는 관점에서 산재보험료율을 개별사업장의 산재율과 무리하게 결부시킴으로써 실익도 크지 않으면서 제도의 본질적 측면을 손상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방대책은 산재 피해자에 대한 사후대책의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며, 시간적 전후 개념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즉, 예방활동은 사건 전?후의 개념이 아닌 일상적, 지속적 활동이다. 따라서 예방은 사전예방측면과 사후조치 및 그로 인한 예방활동 강화를 모두 포함한다. 예방대책을 사후적인 구제대책과 구분한다면, 산재발생 시점이 아니라 주요 대상과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구분해야 할 것이다. 사후 구제대책이 피해자를 주요대상으로 한다면 예방대책은 가해자 또는 책임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 예방과 보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자. 예방에도 사전예방-사후예방이 있고, 보상에도 사전보상과 사후보상이 있다.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 예방과 보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보자. 예방에도 사전예방-사후예방이 있고, 보상에도 사전보상과 사후보상이 있다.”
사전예방이란 현행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전형적인 예이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은 지나치게 명령지시적인 규제(command control regulation)로 되어 있는 점과 기술기준적인 문제로 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는 하지만 이 문제는 차후에 다시 논하기로 한다. 모든 사업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던, 하였던, 하지 않았던) 일상적인 노동과정에서 사전에 취해야 할 안전보건상 의무조치를 규정하는 것이 사전 예방법인 산업안전보건법이다. 사후예방이란 문법적으로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산재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정부가 개입하여 다시는 그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함으로써 예방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과 같다. 만약 소를 잃었다면 반드시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사후예방조치는 사고조사와 적절한 처벌을 가함으로써 사업주로 하여금 사전예방의무를 보다 충실히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매우 중요한 시스템인 것이다.
사후보상에 대해서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직업병 인정기준’ 또는 ‘선보장-후판정’과 같은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사후보상이라는 개념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전보상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어감이 이상하게 들리거나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사고로 사망 또는 신체에 손상을 입었거나 직업병에 걸린 경우에는 사후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직업병에 딱 걸렸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몸이 상당히 불편한 경우 또는 그러한 노동환경에서 계속 일할 경우 직업병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경우, 어떠한 형태로든 일정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면 이는 사전보상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가장 흔한 예가 명백한 위험작업에 대한 위험수당 또는 생명수당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엄청난 논란이 있을 것이다. 일단 여기에서의 논의는 사전보상을 실시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의나 주장을 펼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여기에서의 논의는 예방과 보상은 그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산재예방을 위한 정책은 사전예방이라는 미명아래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국한시키고 산재사고이후의 논의는 오로지 보상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노동안전보건정책과 노동계의 투쟁에는 오류의 함정이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안전보건 정책과 제도는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의 사고체계가 실효성 있는 산재예방정책의 도입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방식을 ‘예방대책’과 ‘피해대책’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다.
은 이와 같은 인식체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법체계는 민법과 형법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달하면서 전통적인 민법과 형법만으로는 다양성과 전문성 또는 특수성을 지닌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비효율적이거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법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법을 보통 특별법이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법들은 모두 정부가 헌법을 집행하기 위하여, 즉 국가의 기본적 의무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므로 보통 행정법으로 분류하며 기능적인 측면에 따라 상법, 노동법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각 개별법에 처벌조항을 두고 있어 형법적 요소도 지니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의 형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노동안전보건정책과 제도는 사전예방과 사후보상이라는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의 사고체계가 실효성 있는 산재예방정책의 도입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방식을 ‘예방대책’과 ‘피해대책’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형식적 체계의 구분을 통하여 산재예방 수단을 검토하면, 산재예방 정책이나 수단을 강구함에 있어서 논의구조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안에 국한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II. 산재책임자 처벌강화에 대한 구조적 한계
1. 산재책임자 처벌현황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물론 일부는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되고 있는 현황을 살펴보면 개략적으로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는 실질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처벌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986년부터 2001년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에 대한 처벌현황과 산재사망자수를 분석한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구속된 자의 수로써 직접적인 처벌수준을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구속여부가 처벌수위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산재사망자수와 구속조치된 현황을 비교해 보는 것은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수준을 평가하는데 적절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2000년도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제1심 선고공판이 이루어진 것은 108건으로 이중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건수는 단 2건에 불과하여 실제 처벌수준이 솜방망이라는 비난이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구속된 비율은 산재사망자수와 비교하여 1~2%수준에 불과하다. 을 보면 2000년도 한해 동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기소가 이루어진 9,246건 중 구속상태에서 공판이 이루어진 경우는 단 5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서 2000년도 처리인원이 9,084인데 에서 접수건수가 9,246으로 차이가 있는 것은 전년도에 발생하였으나 공판이 이루어진 것은 2000년도 넘어 온 것 등이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년도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제1심 선고공판이 이루어진 것은 108건으로 이중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건수는 단 2건에 불과하여 실제 처벌수준이 솜방망이라는 비난이 상당히 일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산업안전보건법에 나타난 처벌수준
일단 위에서 나타난 결과로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크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 처벌되고 있는 수준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처벌수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에서의 처벌수준을 대폭 강화하면 법원에서의 처벌수준이 다소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 형량수준은 다른 법과 비교하여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에서 반론이 만만치 않으며, 형량수준을 높인다고 해서 실제 처벌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렇다면 이제 남아 있는 것은 검찰과 법원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검찰이나 법원이 좀 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처벌을 강화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과연 그럴 수 있겠는지 몇 가지 현실을 살펴보자.
3. 현실
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공안사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가 일반 형사사건이 아닌 공안사건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있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범죄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은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검찰은 몇 개의 부서로 나뉘어져 있는데 과거 독재정권의 산물로 노동사건은 공안사건으로 분류되어 처리되고 있다. 공안담당 검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사업주를 기소할 때 처벌수준을 강화하려 할 것 같은가 아니면 낮게 처벌하고자 할 것 같은가?
나.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의 사법권한은 오로지 산업안전보건법
실제 산재사고가 나면 사고조사와 수사를 담당하는 사법경찰관리는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다. 물론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초기에는 일반 경찰도 수사를 하지만 일단 그것이 산재사고라고 판명이 되면 대부분 사고조사와 수사는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담당하게 된다. 노동법에 대한 수사는 특별사법경찰관리인 근로감독관이 수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의 수사범위는 노동관계법으로 국한되어 있으며, 산재사고의 경우 바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여부에 대한 수사는 일반 형법처럼 사고에 대한 과실치사상죄의 여부를 추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정된 의무이행여부를 따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산재사고에 대한 처벌을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정한 조항 위반여부를 찾아야 한다. 극단적인 예로 산업안전보건법상 특별한 의무위반을 찾아내지 못하면 처벌하기 매우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근로감독관이 산재사고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샅샅이 훑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엉뚱한 특수검진 대상자가 누락된 것을 처벌한다든지 법정 게시물의 미게시와 같은 사항으로 처벌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고육지책처럼 보인다. 그러한 위반사항으로 과연 검찰이 높은 형량을 구형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법원은 높은 처벌을 선고할 수 있겠는가?
현재 산재책임자 처벌에 대한 논의가 원론적인 주장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도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의 틀이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법일 뿐이다.
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법
산재책임자 처벌에 대한 논의는 ‘처벌을 강화하여 산재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부터 ‘누가 산재책임자인가’ 즉,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하는데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쟁거리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그것이 구호로 나타나던, 현실에 적용된 모습으로 나타나던 간에 ‘처벌강화’와 ‘불가(不可)’라는 주장의 차원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장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인데 그 장벽의 핵심은 다름 아닌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테두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반론은 부지불식간에 모두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한 처벌강화나 불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산재에 대한 책임문제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큰 틀에서 사회정책적 개입의 법적 체제와 그에 따른 집행구조의 문제이다. 그러나 산재예방정책에 대한 논의는 모두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산재책임자 처벌에 대한 논의가 원론적인 주장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도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의 틀이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틀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법일 뿐이다.
III. 구조적 인식오류
이와 같은 상황은 구조적인 측면에 대한 인식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인 문제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관련 법적 체계와 집행구조를 말하며, 인식오류란 현재의 문제를 법적 체계와 집행구조로 보지 않고 현행 체계내에서 처벌을 강화하면 될 것이라고 보는 인식에 오류가 있다는 뜻이다. 즉,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법적 제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방식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노동법학자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먼저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검찰이나 법원의 자료를 살펴보면 산업안전보건범죄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행위로 기소된 것이나 처벌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산업안전보건범죄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범죄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범죄라 하면 산재사고와 관련된 모든 범죄를 총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며, 그 중에서도 산재사고라는 결과를 초래한 범죄, 특히 사망과 같은 중대산업재해를 초래한 범죄를 염두해 두고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예방책임과 결과책임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방 그 자체, 즉 산재사고라는 결과를 수반하였거나 수반하지 않았거나 법에서 규정한 의무이행사항에 대한 책임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차원이고, 산재사고 등으로 인하여 타인의 신체나 생명에 피해라는 결과를 초래한 책임과 처벌에 대해서는 형법적 차원의 문제이다.
이미 전술한대로 산업안전보건법은 행정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이 취하여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이에 대한 이행을 확보하기 위하여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한계가 있다.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하였다고 해서 중한 처벌을 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라는 결과와 상관없이 법의 적용대상이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예방법으로 일종의 질서유지법이다. 따라서 법에서 정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즉 질서를 위반하였다고 해서 아무런 피해가 발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론에서는 보호법익의 침해정도에 따라 침해범과 위험법으로 구분한다. 침해범은 보호법익이 침해되어야 기수가 되는 범죄이며, 위험범은 보호법익이 침해되지 않고 보호법익을 침해할 위험성만 발생시키면 기수가 되는 범죄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안전보건상 예방의무를 단순히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보호법익의 침해라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위험범일 것이다. 그러나 보호법익을 근로자 안전과 보건의 유지?증진 그 자체라고 해석하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행위의 상당수는 침해범이다. 이에 대한 논란은 전재경 등, 산업안전보건법 집행의 실효성 확보방안연구,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00, pp. 103-104와 오영근, 형법총론, 대명출판사, 2002, pp. 98-100 참고.
엄한 처벌을 가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점에서 정당성을 주장하기 힘들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다른 모든 법에서도 같은 논리로 처벌강화를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로교통법상 단순 신호위반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문제이다. 둘째, 산재가 발생한 특정한 사업장만 선별하여 적용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법적용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으며, 오히려 산업안전보건법 집행의 실효성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똑같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여러 개의 사업장이 있는데 산재가 발생한 사업장만 처벌을 받거나 중한 처벌을 받는다면 개별 사업장의 입장에서는 산재라는 결과가 발생할 확률이 크지 않다고 보고 의무이행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크며, 산재예방이라는 법의 취지가 손상될 것이다. 셋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의무를 모두 이행한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근거의 미비로 처벌하기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이행한 사업장이라면 사업주로서 선량한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그 특성상 사업주의 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미국 산업안전보건법(OSH Act) 제5조 (a)항은 다음과 같이 일반의무(general duties)라 하여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29 USC 654 Sec. 5.(a)Each employer (1) shall furnish to each of his employees employment and a place of employment which are free from recognized hazards that are causing or are likely to cause death or serious physical harm to his employees; (2) shall comply with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standards promulgated under this Act].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에도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를 산업안전보건법 준수나 단순한 노력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의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선언적 의무규정에 불과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조(사업주의 의무) ①사업주는 이 법과 이 법에 의한 명령에서 정하는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기준을 준수하며, 당해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를 근로자에게 제공하고, 근로조건의 개선을 통하여 적절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고, 근로자의 생명보전과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하도록 하여야 하며, 국가에서 시행하는 산업재해예방 시책에 따라야 한다. ②기계?기구 기타 설비를 설계?제조 또는 수입하는 자, 원재료등을 제조?수입하는 자 또는 건설물을 설계?건설하는 자는 그 설계?제조?수입 또는 건설을 함에 있어서 이 법과 이 법에 의한 명령에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하여야 하고, 그 물건의 사용에 의한 산업재해발생의 방지에 노력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법규에서 모든 안전보건규정이나 조치를 다 열거할 수 없다. 따라서 법규에서 정한 사항을 모두 이행하였다고 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준수하였다고 볼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곧 산재예방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법의 특성상 법규의 준수여부는 형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법적 준수와 실제 내용이나 활동은 별개인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은 문제는 예방책임과 결과책임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방 그 자체, 즉 산재사고라는 결과를 수반하였거나 수반하지 않았거나 법에서 규정한 의무이행사항에 대한 책임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차원이고, 산재사고 등으로 인하여 타인의 신체나 생명에 피해라는 결과를 초래한 책임과 처벌에 대해서는 형법적 차원의 문제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벌칙조항에 대한 형량수준은 타법과 비교하여 그렇게 낮은 수준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산재예방을 위하여 사업주가 취하여야 할 의무이행조치의 불이행에 대하여 중벌을 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인하여 설령 산업안전보건법의 형량수준을 상향조정한다고 하여도 최종적으로 법원에서의 양형결과는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조항에 대한 형량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처벌을 강화하거나 이로 인한 실효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조항에 대한 형량을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그 동안 사법부의 판결결과를 종합해 볼 때 기대 실익(實益)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산재책임자 처벌강화와 이를 통한 산재예방 억지력의 확보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처벌수준의 분석과 논의는 후술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산재예방=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인식의 틀에 오류가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물론 산재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드시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한 처벌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우선 산업안전보건법의 형벌수준을 높이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산재 책임자 처벌이나 이를 통한 산재예방의 억지력(抑止力)을 확보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즉, 산재책임자 처벌강화와 이를 통한 산재예방 억지력의 확보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한 처벌수준의 분석과 논의는 후술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산재예방=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인식의 틀에 오류가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IV. 산재예방의 3가지 측면
이제 산업재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문제에 대해 국가나 사회가 개입하는 방식은 에서 보는 바와 같이 크게 행정적 규제, 민사적 제재 및 형사적 제재라는 3가지 측면이 있다는 것이 좀 더 명확해졌으며, 이것은 모두 예방정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행정적 규제와 민사적 또는 형사적 제재방식의 가장 큰 차이는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시기가 다르다는 점이며, 산재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적 문제를 억제하는 수단이나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민사 또는 형사적 제재는 기본적으로 산재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면 개입기제가 발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잠재적 피해자에 대해 충분한 보호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산재라는 결과에 대한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산재사고는 직접적 산재당사자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전체에게도 막대한 간접적 피해를 줄 우려가 크기 때문에 미연에 산재사고에 대한 예방대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나서서 미리 사회적 질서를 유지시킨다. 이것이 곧 행정적 개입이며, 정부규제 또는 행정규제이다. 따라서 행정규제는 민간 경제주체들의 통상적인 경제활동에 정부가 일정한 통제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간섭을 하게된다. 즉, 행정규제는 피해나 사건이 발생되기 이전에 정부가 경제주체들의 경제행위에 일정한 제약이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형사적 제재는 국가가 원인제공자나 가해자에게 신체적 또는 금전적으로 형벌권을 행사함으로써 그러한 행위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형사적 제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방적 기능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민사적 제재도 원인제공자에게 일정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불법행위를 억제한다는 점에서 예방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사적 개입은 주로 사인간(私人間)의 관계에 있어서 가해자에 대한 응보나 처벌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원상회복이나 구제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사상 책임은 주로 피해에 대한 보상과 원상회복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며, 이것은 가해자에 대한 부분보다 피해자 구제의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보통 민사적 개입은 사후보상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민사적 개입에 있어서도 잠재적 가해자나 원인제공자에 대하여 위협을 가함으로써 사전예방의 억지력을 확보하기도 한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친 경우, 가해자나 원인제공자에게 피해의 실질적 가치보다 훨씬 과중한 배상을 하도록 함으로써 고의나 중대한 과실과 같은 불법행위를 스스로 억제하도록 하는 것이 이러한 예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민사적 개입이라고 하더라도 구제의 측면이냐 또는 제재의 측면이냐에 따라 그 목적과 기능 그리고 기본적 원리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대국가에서는 기능적, 지역적, 전문적, 기술적 또는 계층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민법이나 형법에서 규율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행정정책적 차원에서 규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규율한 법규를 민사특별법 또는 형사특별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환경범죄단속에관한특별법’이나 ‘보건범죄에관한특별조치법’ 등은 형사특별법에 속하며, 법규의 위반과 단속의 많은 부분이 행정부처에서 위임되어 있다. 한편 민사특별법으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예를 들 수 있다.
산재예방 ‘실효성’은 궁극적으로 산재예방의 ‘실제적 효과’를 거두는 것을 의미하며, 실효성 확보의 ‘방안’이란 정부의 개입방식이나 방안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국가의 개입방식은 크게 행정 정책적 측면, 형사 정책적 측면 그리고 민사 정책적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3가지 측면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문제에 대해 국가가 국민 또는 법인과 같은 민간경제주체에 개입하는 방식이며, 이러한 개입방식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유무와 위하력에 대해서 노동안전보건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에서 보는 바와 같다. 에서 각각의 이행수단에 대한 노동안전보건분야에서 적용범위나 위하력에 대해서 논란이나 반론이 있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산안법상 불량보호구나 미검정 보호구의 수거 폐기 등의 조치는 행정상 강제집행수단인 직접강제에 해당하며 이러한 방안이 제도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 이러한 행정개입방식이 주로 ‘사업주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이 의무를 위반하는 자에 대한 간접적 제재방식을 취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직접강제가 제도적으로 장착되어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노동안전보건분야에서의 적용범위나 위하력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기준이나 잣대로 분류한 것은 아니며 전체적인 분석 틀과 사고체계를 제시하기 위하여 을 제시하였다.
V. 노동부의 한계, 행정의 한계
그 동안 노동안전보건정책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온통 노동부를 향해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현행 시스템에서 노동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며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노동부를 비호하거나 노동부를 과소평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필자도 노동안전보건에 있어서 노동부의 역할이나 의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익숙한 비판에서 빠져 나와 다른 틀을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꺼내고자 함이다.
행정법규상의 의무이행확보수단은 일반적으로는 크게 ‘강제’와 ‘제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강제’는 행정기관이 법규의 의무사항을 강제로 집행하는 것으로 대집행, 집행벌, 직접강제, 강제징수 등이 있으며 보다 직접적인 의무이행확보 수단이다. ‘제재’는 의무불이행이나 법규위반자에게 행정벌을 부과함으로써 행정대상이 법규를 준수하도록 하는 간접적인 수단이다.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이행은 현실적으로 ‘사업주’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즉, 노동안전보건은 반드시 사업주를 통해야 하는 ‘이중적 구조’에 있다.
1. 노동안전보건의 이중적 구조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이행은 현실적으로 ‘사업주’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길거리에 불법광고물을 설치하면 행정관청에서 강제로 철거할 수 있지만, 즉 강제집행이 가능하지만 사업장의 안전보건확보는 현실적으로 정부가 강제로 시행할 수 없다. 유기용제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정부가 강제로 국소배기를 설치할 수 없는 일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은 ‘사업주가 알아서 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은 사후에 ‘감독과 처벌’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 즉,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을 위한 의무이행확보수단은 거의 전적으로 ‘제재’라는 간접적인 수단에 의존한다. 즉, 노동안전보건은 반드시 사업주를 통해야 하는 ‘이중적 구조’에 있다.
2. 부작위와 작위
어떤 행위를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범죄가 형성되는 것을 작위(作爲)에 의한 범죄라고 하며, 그러한 범죄자를 작위범이라 한다. 살인죄, 절도죄와 같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생각하는 형법상 범죄는 대부분 작위범죄이다. 불량식품을 제조하여 유통시키는 행위와 같은 범죄도 작위범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범죄가 성립되는 것을 부작위범죄라 하며,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부작위범이란 한다. 산업안전보건범죄는 대부분 부작위 범죄이다. 안전상 또는 보건상 규정된 의무이행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범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작위범은 알고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떠한 행위가 범죄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몰래 또는 대부분 의도를 가지고 그러한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작위범의 경우에는 어떤 것이 범죄가 되는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부작위범죄에 대한 제재방식은 작위범죄와는 다를 수밖에 없고 형사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
3. 산업안전보건법 집행강화?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강화? 대부분 당연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짐작을 했겠지만 필자는 아니라고 말하고자 이 말을 꺼냈다. 물론 현행의 시스템에 국한시켜 하는 이야기지만.
산재예방정책의 기본적인 모델을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분히 선형적이며, 분절적(分節的)이다. 크게 보면 투입은 산재예방정책이며, 산출은 산재감소 또는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의 유지?증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재감소나 노동자의 안전보건 유지?증진에 대한 직접적인 투입은 정부가 직접 수행할 수 없고 사업주 또는 사업장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의 노동안전보건정책은 지원과 제재라는 간접적인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투입은 특정한 지원사업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한 행정감독의 형태와 같은 지원이나 제재인데 그에 대한 직접적인 일차적 산출(output)은 사업장의 대응이다. 다만 사업장의 대응이 적절하여 정부의 지원사업이나 제재가 궁극적으로 산재감소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모델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모델에 실제 산재예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투영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현행의 시스템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만 강화할 경우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보다는 행정규제준수에 집중할 것…사업장내 진정한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오히려 저하될 수도 있으며, 행정규제가 오히려 사업장의 자율적인 안전보건활동을 가로막는 장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등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먼저 [그림 2]와 같은 모델에서 보듯이 산재감소나 사업장의 안전보건 유지?증진은 궁극적인 목적 또는 지향점(goal)이지 정부가 수립하고 집행하는 산재예방정책의 직접적인 목표지점, 또는 성과로 설정할 성질이나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은 사업장이나 사업주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중적 구조의 한계로 인하여 산재예방이라는 투입이 산재감소라는 산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선형적 가정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재예방사업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커다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사업장이라는 매개(媒介)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산재감소라는 직접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투입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림 3]은 노동안전보건의 행정규제에 대한 사업장의 대응방식과 노동안전보건 목표달성과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 모델을 도식화 한 것이다. 노동안전보건의 규제는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상 안전 및 건강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이러한 법익의 침해가 나타나기 이전에 사업주에게 특정한 예방의무를 부과하고 이러한 방식을 통하여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즉, 직접적 개입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보호법익이라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일상적인 기업의 활동에서 사업주에게 안전보건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사업장의 안전보건활동이 이루어지고 그로 인하여 궁극적으로 산재예방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그림 3]의 A). 그러나 많은 경우 사전규제방식은 사업장에 안전보건활동을 정착시키거나 활성화를 도모하기보다는 규제자체만 준수하는 것에 그치는 단점이 발생한다. 심한 경우에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대한 역량을 본질적인 안전보건활동보다는 행정적 규제준수에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사업장내 진정한 안전보건활동이 저하되기도 하며, 행정규제가 오히려 사업장의 자율적인 안전보건활동을 가로막는 장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등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을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사업장은 그 행정규제 맞추는데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부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노동안전보건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마 아닐 것이다.
사업장내부의 안전보건활동이라는 의미도 크게 두 가지의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사업주에게 부과된 법적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재예방을 위한 사업장 자체의 노력과 활동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이론적으로는 동일한 것이다. 전자의 목적이 본래 후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며, 후자의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전자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측면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보호법익이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상 안전 및 건강보호이지만 이러한 근로자의 법익을 침해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 즉 정상적인 기업의 활동에서 사전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가벌적(可罰的)인 유형을 설정하는 입법형식을 띄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사고로 인한 노동자의 사망, 신체의 손상 또는 직업병의 발생과 같은 보호법익의 침해결과에 대한 응보적(應報) 해결이나 처벌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일반 형법은 대부분 사후 응보나 처벌 위협을 통하여 간접적 예방을 도모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정형법이 그러하듯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안전보건상 예방조치라고 하는 어떠한 행위를 하였거나 하지 않았으면 산재사고의 발생이나 직업병의 발생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행위자체를 처벌하는 직접적, 사전적 개입방식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위반은 결과범(結果犯)이 아니라 위험범(危險犯)의 형태를 띄게 된다. 여기에서 문제는 어느 정도의 위험에 대해 처벌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처벌을 전제로 하는 위험정도를 계량화하는 것은 시간적 변이, 기술상 난점, 그리고 감독 인력의 수나 질적인 문제로 인하여 거의 불가능하다. 죄형법정주의라는 형사정책적 측면에서 명확성(明確性)의 원칙(原則)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처벌이나 감독은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규에서는 사업장에서 행해야 하는 사항이 무엇인지 법규에서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규제이외의 다른 사회?정책적 제재장치가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안전보건의 행정규제적 제재만 발달할 경우 사업장의 대응은 [그림 3]의 C와 같이 행정규제의 준수에 주안점을 두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산재예방의 사회정책적 개입의 현황이 A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C와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을 강화하려 하면 할수록 사업장은 그 행정규제 맞추는데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부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노동안전보건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마 아닐 것이다.
VI. 문제는 적절한 제어시스템이 없다는 것
투입과 산출의 모델에서 제대로 된 체계(system)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어나 환류(feedback)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어나 환류과정이란 사업장의 안전보건활동 그 자체와 함께 사업장의 안전보건 성과에 대한 평가를 통한 적절한 제재를 말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바람직한 산재예방활동은 사업장에서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안전보건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산재예방활동은 사고와 직업병의 예방이라는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업장의 산재예방활동 및 그 성과에 대한 적절한 평가, 보상 및 제재와 같은 사회?정책적 개입기제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정책평가나 사업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사업장의 산재예방노력과 그로 인한 바람직한 결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시스템이 있는가, 또는 산재예방노력의 부재와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 즉 산재사고나 직업병발생과 같은 결과에 대해 적절한 제재나 억제시스템이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구조적 환류시스템(feedback system)을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구조적 환류시스템이 없다. 단지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스템이 자체가 없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정부의 산재예방정책이나 산재예방사업이 사업주나 사업장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에서, 보다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은 사업장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다. 사업장의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러한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제재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서 보상이라는 말을 넣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나중에 자연스럽게 논의가 되겠지만 제어는 처벌강화와 함께 면책이나 책임의 경감(輕減) 등의 보상도 같이 논의되어야 실질적인 제어시스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V. 목표지점
이제 목표지점을 밝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림 4]가 그것이다. 사회전체로 볼 때 산재예방의 실효성은 단지 행정규제의 준수여부나 산업안전보건정책의 효율적인 집행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업장의 자체적인 안전보건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며 사업장 안전보건활동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산재예방은 물론,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을 이룩하도록 유도되어야 한다. [그림 4]는 현재의 산재예방 체계와 향후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산재예방체계를 도식화 한 것이다. [그림 4]의 A와 같이 적절한 제어나 환류시스템(feedback system)이 없는 현행의 선형적 산재예방체계에서는 산재예방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강화하면 할수록 자발적인 사업장의 산재예방노력보다는 단순한 행정규제의무를 이행하는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산재예방의 실효성 확보강화란 곧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집행강화를 의미한다. 산업안전보건법규는 그 특성상 명령-통제형 규제(command and control regulations)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명령-통제형 규제는 자연히 사업장의 실제적인 노동안전보건의 확보보다는 일정한 형식을 강제할 수밖에 없다.
노동안전보건의 실질적 확보는 사업주가 실제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 산재책임을 강화하는 기업살인법이 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규의 집행이나 이행이 곧바로 실제 산재예방의 실효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그 동안 우리의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동안의 경험이나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현행의 시스템에서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고 해도 산재예방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을 통하여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효율을 높이고자 처벌규정의 상당부분을 행정형벌에서 행정질서벌(과태료)로 전환한 바 있다. 노동부차원에서 곧바로 과태료를 부과함으로써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과태료의 부과를 통하여 사업장내 자발적 안전보건활동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안전보건의 실질적 확보는 사업주가 실제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에 산재책임을 강화하는 기업살인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