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다. 따라서 산재사망에 대해서는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새로운 형사정책을 도입하여야 한다.” 이것이 2002년부터 노동건강연대가 주장해 온 「기업살인법」제정운동을 압축한 말이다. 노동건강연대의 「기업살인법」제정운동은 시작부터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 동안 노동건강연대에서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펼치면서 주로 들었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 또는 강화하면 되지 왜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가, 과연 특별법 제정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예방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러한 의문과 문제제기는 반론이라기보다는 기업살인법 제정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문제제기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즉, 기업살인법에 대한 논란은 본격적인 주장과 반론이라기보다는 문제제기수준에서 지지와 회의적인 반응 또는 반대수준의 논란이 있었던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노동건강연대에서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을 시작한 것은 단지 보복이나 응징의 차원에서 산재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외국의 제도를 모방하고자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가 고민을 시작한 것은 비교적 단순했다. 왜, 산재책임자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감정적으로 처벌강화를 주장하기 위해 고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산재책임자 처벌수준이 단지 행정당국이나 사법당국의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법을 감정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사정책도 행정당국이나 사법당국의 의지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한 것이 구조였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고민하자 현행 노동안전보건정책은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러한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기업살인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업살인법」이야말로 현재의 문제점과 대안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2년간 기업살인법 제정이라는 문제제기 자체에 역량을 집중했다. 덕분에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은 저변이 많이 확산되었다. 따라서 이제 단순한 문제제기와 주장의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살인법 제정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해 나감으로써 현행 노동안전보건정책의 구조적 한계와 문제점을 개혁해 나가고자 한다.

계간『노동과건강』에서는 향후 3년간 ‘노동안전보건정책의 구조적 개혁’을 기획시리즈로 엮어 노동안전보건정책의 구조적 개혁을 제기해 나가고자 한다.
그 첫 번째 글로 ‘제1편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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