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신문사가 ‘21세기를 바꾸는 교양’을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그는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 : 한국사회노동문제 바로보기’의 연사로 나왔다. 그 강연회가 TV에 방영되던 날 우연히 보게 되었다.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될 이들이 공부하는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은 선택과목이다. 두껍고 골치아픈 노동법책을 공부하는 판검사가 없다. 이들이 노동자 권리를 보호할 수 있겠나… ” 이런 말로 시작한 그는 시종 긴장해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는 생존을 위해, 살길을 위해 모여있는 노동자들 앞에서의 교육이 아닌, ‘교양’을 찾아, 지식을 찾아 온 이들 앞에서의 강연은 너무 힘겨웠다고 말했다.
하종강의 글과 말은 자주 접할 수 있다. 소위 노동운동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진보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시사주간지에 연재해온 사람들 이야기는 현실의 작은 고통에도 빠지기 쉬운 자기연민을 경계하라 하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그의 칼럼은 눈에 보이는 분노를 넘어서는 차분한 성찰을 주었다.

잊고 있던 기본을 만날 때 가끔은 이것이 더 신선할 때가 있다. 노동운동이든, 노동자건강권 운동이든 각론에서 조금은 빠져나와 보편적인 운동의 원리를 확인하고는 이마를 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과건강』을 복간하면서 처음으로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하종강이다. 오늘 나눈 이야기들은 평소 그가 하던 이야기보다는 좀 무겁다. 운동의 가치를 고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노동운동의 희망을 보고, 역사의 진보를 이야기한다.

『노동과건강』도 그런 기본에서 출발하고 싶다. 미약한 힘이지만, 큰 꿈을 꾸면서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 정치적 격변기다. 대통령 탄핵이 있었고, 총선이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 거라 보나

탄핵 소용돌이 이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탄핵 싸움에 손해보는 사람들은 민중들이다. 탄핵이 있던 날 시장에 가보니 오후 4시가 되도록 개시를 못했다고 한숨을 쉬더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손님이 더 안 붙는다며 한숨이 깊다. 산불이 난 강원도를 봐라. 자원봉사자 조직이 안 된다. 폭설피해 입은 농민들을 봐라.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를 보고 울던 농민은 ‘지원 나오던 전경들도 집회 때문에 끊겼다’며 한숨을 쉬었다.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이긴다고 민중의 삶이 달라지나. 안 달라진다.
정치적 격동시기에 보람있는 삶이 뭘까, 가치있는 삶이 뭘까 고민하면서 살아야 한다.
유럽은 노동자 중심정당이 금세기 최고 번성기를 누리고 있다. 변질된 사민주의라 해도…. 지금 이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많지 않다. 유럽식 사민주의, 미국식 순수자본주의, 남미식으로 양극화된 사회, 프롤레타이아 독재를 꿈꾸는 이들도 있지만…. 미국식 자본주의로 가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거 아니냐.

– 탄핵과 같은 일이 왜 일어났을까

탄핵은 일제시대 역사가 청산되지 않은 결과다. 왜곡된 역사발전이, 왜곡된 자본주의 발전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한 세력이 분단정서를 배경으로 나와 다르면 바늘끝만한 차이라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초등학생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탄핵이 일어나고 방송국 아는 PD 한테 전화했다. ‘친일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왜곡된 역사가 퇴장하는 순간 인거 같다, 맞냐?’ 맞는거 같다고 하더라 (웃음).
수구세력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 ‘5년만 참자’ 했는데, 노무현이 다음 5년을 이어받자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극도의 불안이 오늘의 상황을 만들었다.

– 최근 우리 사회 진보운동의 전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

역사의식, 진보세력의 토대, 이런 혼란이 노무현대통령 시기의 혼란이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고, 진보세력의 토대가 될 것이다. 지금 이후가 중요하다. 100년간 진행된 왜곡된 역사의 전환기가 될 거다. 근대화 과정의 부도덕한 세력이 정리되는 과정이다. 이번 친일인사 규명법이 누더기가 돼서 통과된 현장을 봤다. 통과를 반대한 사람들은 ‘자식된 도리’로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단발마적 비명이 나온거다. 수구세력이 역사의 전면에서 퇴출되는 국면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가 곳곳에 있다가, 두꺼운 얼음 밑을 흐르던 강물처럼 나오고 있다.
길게 보자. 공무원노조를 봐라. 저기 강원도에서 전라도 소읍, 제주도까지 공무원노조 깃발이 나부낄 줄 알았나.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고등학생이 ‘소비에트 해체 이후 세계의 진보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가’를 묻는다. 질문내용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전교조 선생님들 덕분이다. 한 학생이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것에 분노하여 ‘의로운 사람들’의 대열에 함께 하고자 국회 앞에 갔다가 다음날 신문을 보니 소수 몰지각한 이들의 난동으로 뒤바뀌어 있는 걸 보고는, 아, 이 사회 모든 곳에 선한 세력을 누르려는 악한 세력이 있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1,600명 전교조 교사가 해직될 때를 봐라, 말이 1600이지 모아놓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인가. 그러나 역사는 고통받는 자의 말대로 실현된다. 전두환, 노태우 처벌하자고 했을 때 얼마나 비장했나.
당할 땐 고통스럽지만 진보는 빠르다. 민주노동당을 보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죽기 전에 노동자 정당이 헤게모니를 갖고 집권할 날도 볼 수 있고, 통일되는 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온갖 매체에서 쏟아내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파편화된 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노동자의 덕목, 운동의 덕목이 뭘까

노동자변화, 우리노사관계는 미국보다도 후진적이다. 케인즈주의적 노사협조가 대기업에 자리잡고 있다. 대기업이 변하고 있다. 희생, 사명감보다 지금 대기업 간부들은 노동자가 살아가는 선택할 수 있는 한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희생적 투쟁을 해야 하는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다수인 상황에서 현대중공업노조처럼 갈거냐, 독일식 사민주의로 갈거냐, 정상적인 노조활동가 어디냐. 노조운동이 어디로 갈거냐, 어떻게 발전할 거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운동은 원래 잘 먹고 잘 사는 운동이다, 근데 이게 사회전체에 이익을 가져오게 잘먹고 잘 사는 걸 말하는 거다. 노동운동이 타락했다고 비판하는 자들을 보라. 현대중공업 노조를 보라.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있지만 노동운동은 쉽게 타락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산별노조 전환투표를 할 때 계속 부결되지만 그 안을 보면 찬성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진다. 2/3가 되어야 규약이 통과되는데 과반수이상이 산별노조에 동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이 주점 티켓을 파는데 정규직노동자들이 한나절에 다 사 버렸다. 작년 유행했던 드라마의 유행한 대사가 뭐냐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거다.
이건 인류애의 전통이다. 비정규노동자의 아픔에 동질감을 느끼는 거, 이게 노동자의 본성이다.

– 새 집행부 출범 이후 민주노총이 달라질 거라고 보나

이수호 위원장이 된 것이 민주노총이 달라진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조직사회 안에 있는 이들에게 큰 차이로 느껴지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다르지 않다. 단병호 위원장 세대에 대해 오류가 있다고 평가하는 건가, 아니다. 단병호 체제를 깎아내리면서 이수호 위원장에게 새로운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이수호 위원장에게 요구하는 게 비정규노동에 관심을 가져라, 책임지는 투쟁을 해라, 사회연대적 전략을 가져라 같은 것들인데 새로운 요구들인가, 아니다. 조직 안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민주노총이 대기업노조 중심 인 것이 단병호 위원장의 잘못이었나, 아니다. 어느 특정한 정파가 그런 오류를 범한 게 아니다. 잘못이 아니라, 현실이 그런 거였다. 물론 차이가 없진 않다. 작은 차이를 크게 부풀려 큰 차이로 만들면 운동 전체에 손실이 될 뿐이다.

–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만나다 보면 여전히 지원이 필요하고, 운동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교육을 다닐 때 대기업노동자, 공무원 노동자들도 많이 만나지만, 일반노조 조합원들 많이 만난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운 걸 보면 사회양극화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사회가 남미화 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대기업이 비정규노동자들 위해, 영세노동자들 위해 기금을 출연하려 한다. 이렇게 가는게 맞다. 나누어야 한다. 비정규기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이다. 대기업노동자들이 자기일로 삼을 때가 됐다.

– 그런데 이런 현실을 노조운동 비판에 끌어들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나..

최근 현대중공업노조가 보여주는 모습은 노사관계가 협조주의로 갔을 때 최악의 안 좋은 행태를 보여주는 거다. 현장으로부터 노동자 권력창출을 못한 결과가 사회전체적으로 해를 끼치고 있는 거다.
노동자의 삶이 양극화되는 건 사회의 비극이다. 부채감을 가져야 한다. 홍세화 선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지금 운동의 화두는 부채감이 되어야 한다. 교사들은 많이 공감한다. 잡상인들이 물건을 꼭 팔고 나간다는 게 교사들이라는 데 정말 그런 거 같다(웃음).
양극화되면 공동체 전체가 불행해지는 사회가 된다, 같이 가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기업노동자들은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 해도 노동운동을 비난하면 안 된다. 자신이 한 말이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사람들은 옳은 소리라 생각해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다. 열린우리당 사람들이 노동운동에 시비를 걸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줄을 타는 광대가 균형을 잡는 건 부채로 조절을 하기 때문이다. 잘났다고 부채를 가운데로 들면 바로 줄에서 떨어진다. 공정하게 본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뱉어내는 건 사회에 해로운 것이다. ‘역사가 평가한다’ 부채를 어느 쪽에 펼칠까. 역사는 그 사람이 평등에 기여했는지, 차별을 공고히 했는지 평가한다.

– 지금 노동운동이 편협하게 자기 이익만을 고집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자문제가 그것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통시적 관점에서 봐야 오늘의 노동이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 보인다.
자기만의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함께 사는 걸 고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면 전체적으로 보자는 말이 먹힌다. 고달픈 활동 속에서도 정신적 만족감이 있다. 운동의 가치를 고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운동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정체되는 게 당연하다. 그럴 때는 일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어느 가치로 살 것인가. 노동운동은 본래, 가치를 고민하는 운동이다. 얼마전, 농공단지 비닐하우스에서 조합원 10명이 모여 교육을 한 적이 있다. 이분들도 함께 하려는 노동운동의 가치를 공감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 지난 1년 노무현 정권하에서 노동교육 다니는게 예전하고는 많이 달랐을 거 같다.

대통령 여섯 번 바뀔 동안 노동자 권리 옹호하기가 지난 1년처럼 힘든 시기가 없었다. 내가 나가는 사적인 모임이 있는데 여기서 노동자 얘기를 해서 아무의 지지도 못 받은 건 작년이 처음이다. 노동운동 안하는 사람이 당당하게 노동운동을 비판한 적은 전에는 없었다. 가장 개혁적이라는 대통령 아래서 가장 보수적 상황이 연출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세력이 위기감을 갖고, 조중동이 총력을 들여 공격하고 있는 이 때, 노무현이 당선된 것만으로 개혁이 된 것처럼, 친노동자 정부가 들어선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이 착시현상을 사실로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여성, 장애인의 권리가 높아지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노동자 권리가 보장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민정수석이 되고, 국정원장이 되고, 법무부 장관이 됐다. 근데 무슨 일이 벌어졌나. 집시법이 개악됐고, 테러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이건 한나라다이 밀어부친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다. 그래서 내가 노동자들에게 말한다. 아하, 그 사람들은 원래 인권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변호사라는 게 중요하다. 변호사가 누구냐. 제도권이 부여하는 최고의 특권을 쥔 사람들이다. 개혁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거였다고 말한다.

– 전경련이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대졸자들, 중고등학생들에게 까지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교육하고 있다..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짓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한국 자본은 케인즈 주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노예가 인간이 아니었다, 이게 당연했다. 지금 전경련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그 주장과 동일하다. 역사적 정당성을 잃은 것은 소멸하게 되어 있다. 전경련의 이론가들은 ‘평등의식은 기업의 적’ 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실패하게 되었다. 원숭이 무리에서 실험을 해 봤다. 평등의식과 정의감을 태어날 때부터의 본성이다. 공동체 전체에 유익이 되도록 행동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 비정규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나..

통계를 봐라. IMF가 한국의 비정규 노동자 숫자를 줄이라고 했다. 한국이 얼마나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지 웅변하고 있다. 사회양극화가 혁명의 물적 토대라 기대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벼랑끝으로 몰리는 노동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행할 힘을 갖는게 아니라 변혁의 힘을 잃어버리고, 파편화된다. 경제 양극화에 건강한 자영업자들도 설자리가 없어지는 형국이다.
비정규 노동의 문제는 휴머니즘에도 위배된다. 경제에도 해롭다. 단위사업장에서 단기적 비용절감에 눈이 멀어 있지만, 한국경제의 이해관계와도 배치된다는 걸 깨달을 거다. 외국의 파견과 우리의 파견은 다르다. 전경련이나 경총이 외국을 인용하지만 맞게 인용한 적은 한번도 없다. 외국은 파견을 해도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이 나오고, 사회보장이 된다.

– 노동자건강문제로 좀 화제를 돌려 묻고 싶다.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근골격계 투쟁에 대해 어떻게 보나

근골격계 문제가 언젠가 터질줄 알았다. 10년 전에 그런 얘기 하지 않았나. 외국 사례들을 보면,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발전하면 근골격계문제는 터지게 되어 있는거다.
근골격계 투쟁이 미조직노동자들, 비정규노동자들의 이해를 함께 대변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좀 애틋한 불안감이 있다. 조직노동자 운동이 정당성을 가질려면 미조직 노동자 이해를 대변해야 한다. 노동자정서가 그걸 깨닫기 어려운 게 우리 사회니까. 학습하고 공부하는 노동자가 요구된다.
근골격계 투쟁의 전망을, 역사적 의의를 고민해야 한다.

– 노조가 산재문제를 풀 때 전문적, 의학적 문제로 풀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산재문제를 운동으로 만들려면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편견이 이 운동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그렇다. 척추모형 갖고 교육하는 노조 간부들이 있었다. 전문지식만으로 활동하는 간부들은 오래 하기 어렵다. 세계사 속에서 성찰, 고민이 없으면 어렵다. 잔머리 굴려서 성공하는 운동은 없다. 준전문가로 활동하는 모습을 극복하자. 전문지식은 전문가들에 맡기고, 노동자가, 노동운동이 맡을 영역이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라 했을 때 그걸 상상하는 게 불가능한 사회에 살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산재문제에 대한 노조운동의 대응도 장기적인 걸 고민해야 한다.

-산업재해라는 용어가 노동자건강문제를 주변적 문제로 만들고, 편협하게 만든다는 문제의식도 많이 말씀했었는데..

산업의 입장에서 산업재해가 아니다, 노동자의 눈에서 노동재해가 돼야 한다. 노동문제를 봐라. 사회의 다수가 노동자인데도, 소수문제처럼 치부되어 왔다. 노동자건강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가 이 사회의 다수이므로 노동자건강문제도 다수의 문제다. 노동자가 국회에 들어가면 노동문제가 의제가 될 수 있을 거고, 노동자건강의 문제를 국회에서 중요하게 다룰 수 있다. 노동운동에서 건강문제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나. 외국의 선험적 사례를 봐야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직장인의 건강문제가 사회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지 봐야 한다.
민예총 강좌를 나가서 젊은 친구를 만났다, 어느 학교를 나왔나 물으니, ‘저는 학벌없는 사회를 지향하기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더라. 작은 일이지만 신선했다. 그 후에 보니 ‘학벌없는 사회’ 단체도 생겼더라. 작지만 열심히 하면 누군가에게 호소력이 생긴다. 이에 비하면 노건연의 지평은 넓다.

– 노건연 활동에 대해 하고 싶은 말씀은 없는지

노건연에는 항상 부채감, 미안함이 있다. 노건연이 하려는 기업살인 운동에 대해서도 의견이 있지만, 현재 참여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할 수 있나(웃음).
노건연이 말한 선보장, 후판정이라는 산재보험 개혁방안에 대해서도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통합과정, , 사회보험 전체의 통합 관점으로 이해했다. 장기적으로 보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

– 몇 년간 발행을 안 하던「노동과건강」을 복간한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읽고 싶은 책을 만들어 달라.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노동자들이 읽고 싶은 매체를 만들어보는 거다. 지금은 다른 일들에 밀려 꿈만 꾸고 있지만..

– 어떻게 만들어야 읽고 싶은 책이 나올까

어떻게 만들어야 읽고 싶어할까 고민해보자. (웃음).

인터뷰 후기
이 인터뷰는 3월 15일에 이루어졌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고, 바로 행해진 인터뷰이기에, 4월 15일 행해진 17대 총선결과를 반영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탄핵에 대한 역사적 판단, 진보정당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의미있는 대화를 나눈 셈이다.
아울러 역사는 고통받는 자의 말대로 실현된다는 그의 말은 현재의 진보운동에 주는 축사이자, 닥쳐올 고난 속에서도 기억해야 할 힘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