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주의체제의 공황적 성격

역사상 대부분의 생산양식들은 필요비용 이상의 초과분 즉, 사회적 잉여를 생산해 왔다. 서구에서 시작하여 세계의 대부분에서 지배적으로 수용된 자본주의는 두말할 나위 없이 더욱 가혹하다. 자본주의체제는 시장지향적인 상품생산,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개인주의적이며 탐욕적이며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위양식을 기초로 한다.

자본주의체제는 임금노동착취와 자본의 경쟁적 축적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쟁과 효율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이 체제는 과잉생산, 재고누적, 수익성 저하, 부도, 도산, 실업을 수반하며 체제적 위기에 직면한다. 이는 공황으로 나타나는데 자본주의 시장문제와 공황문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문제다. 자본주의체제는 본질적, 태생적, 항상적 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화폐론을 분석한 본 펠드(W.Bonefeld)는 과잉이윤축적은 과잉착취의 다른 표현이며 위기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은 노동조정 즉 노동해체의 또 다른 표현이라 했다.

김수행교수는 그의 에서 자본주의경제는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이 일어나는 환경이고 이 환경 안에서 경제성장이 진행되면서 그 성장자체를 중단시킬 수 있는 공황의 원인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공황의 원인이 작용하여 유효수효의 부족이나 신용질서의 혼란 등 공황을 예비한다. 공황의 폭발은 회피할 수 없으며 또 이 공황을 통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들(경제성장을 파괴시킨 원인들)이 일시적으로 해소되어 자본주의경제는 새로운 성장을 시작한다.

경기변동이나 공황적 상황을 극복하는 자본주의체제의 복원력은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자본은 노동을 개별화하여 통제관리하고, 잉여노동력의 착취를 통해 확대재생산하며, 확대재생산은 이윤율 저하라는 경향적 법칙을 통해 위기에 직면하지만 노동착취라는 구조조정을 통해 자본은 위기를 극복한다. 개별화된 노동자는 경기의 상승기나 후퇴기 할 것 없이 자본주의체제 유지를 위해 재배치된다.

노동의 재배치는 자본주의 상품시장 확보전쟁이든 제국주의 자원침략 전쟁이든 모두 노동자를 동원하며 이는 실업을 해소하는 자본의 정치적 결단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체제의 공황적 성격은 자본의 세계화와 더불어 구조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빠른 속도로 주기적 반복을 거듭한다. 자본주의체제의 위기가 증폭하면 자본은 주기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데 노동을 주요대상으로 한다.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은 경제불황이나 경제위기의 자연스런 결과가 아니다. 자본은 자신의 재생산위기를 노동자들에 대한 반격의 기회로 이용한다.

2. 금융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15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 스페인에 의해 시작된 서구 제국주의 침략은 산업혁명 이후 영국과 후발 자본주의국가인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식민지국가는 제국주의 상품시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원료는 물론이고 노동력의 무제한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식민지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1,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오늘날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는 양 차 세계대전, 한국전과 베트남전을 거치며 세계 제1의 정치, 경제, 군사 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이다. 이라크침략전쟁에서 보듯이 전지구적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노동과 자본의 타협에 의한 지속적인 경제성장모델인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1980년대 공황을 경험하면서 통화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였다. 하이에크류의 구자유주의인 시장근본주의와 레이거노믹스 및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신보수주의가 결합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군사력과 결합된 금융자본주의의 극단적 모습이다. 18c 암스테르담, 19c 런던이었던 금융중심지는 20c 이래 뉴욕으로 이전하였고 미국은 뉴욕 월가와 군산복합체의 지원을 받으며 자본주의 세계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1960년대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과 1971년 닉슨에 의한 달러의 금태환 중지, 이로 인한 1973년 고정환율제 파산으로 브레튼 우즈 체제는 붕괴하였다. 미국의 달러화에 의한 세계지배, 세계적 인플레, 달러발권을 통한 화폐권력이 수립된 것이다. 이어 1989년의 동구권의 몰락으로 뉴욕금융자본의 세계지배와 침략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IMF외환위기 이후 변동환율제로 전환하였고 1999년 4월 금융시장 완전개방으로 금융의 세계화체제에 편입되었다. 이제 경제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될 채비를 갖춘 셈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민중에 대한 착취를 강화한다. 소수의 번영과 다수의 빈곤(95:5의 사회)이 확대되고 있으며 중산층의 몰락과 노동자 민중의 삶이 악화되고 있다. 셰계화는 총노동과 총자본의 대립국면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자본의 이윤극대화와 경쟁적 생존전략은 문명화에 대한 위기를 초래하고 자본주의 진전이 가져온 첨단기술의 승자와 패자, 노동계급을 위한 진혼곡, 더욱 더 위험한 세계(실업, 범죄, 전쟁) 등으로 노동의 종말을 예고하였다.

19c 의 저자 힐퍼딩은 자본주의 공황의 형태는 금융공황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금융자본은 수많은 종류의 파생금융상품을 생산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 1973년 달러-금본위체제가 붕괴하고 변동환율제가 일반화되면서 새로운 통화제도라 할 수 있는 달러-월스트리트체제(dollar-wallstreet system)가 출범하였다. 이는 한 국가의 화폐발권과 금융관리에 대한 권리의 박탈과 부(富)의 일방적 이동을 의미한다.

오늘날 세계화의 양상은 식민지 상품시장과 원료확보를 위한 전통적이고 군사적인 제국주의 침략과는 달리 금융시장 지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자본주의 본래 모순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소유보다는 개별기업의 최대한의 이윤추구가 무정부적인 경쟁을 초래하는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농업과 공업의 불균등, 기업간 불균등 발전이 격화되고 이는 자본주의 세계전쟁으로 나아간다. 달러-월스트리트 체제하에서 소위 IMF식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금융자본에 의한 노동계급의 억압과 착취를 강화할 뿐이다.

3. IMF체제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자본주의 체제는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황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오늘 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노동력을 착취한다. 이와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는 한 기업이나 한 국가 내에 머무르지 않고 금융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전지구적으로 관철해 나간다.
1960년대 이래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해 오던 한국 경제는 아시아 금융위기에 직면하여 경기후퇴와 마이너스 성장, 대량실업이라는 최대의 시련에 직면하였다. IMF구제금융에 다른 경제운용 프로그램은 IMF와의 정례협의 하에 이루어졌고 실질적인 경제신탁통치로 전락하였다. 그리하여 물질적 풍요와 성장 그리고 선진 경제대국의 대열에 진입하겠다던 희망은 좌절로 바뀌었다. IMF금융위기 원인에 대해서는 내부요인으로는 개발연대의 한국경제성장모델로 대표되는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중심경제구조와 정책실패다. 외부요인으로는 냉전질서 붕괴, 거대 초국적 자본의 확대와 급격한 이동이다.

IMF이행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정부의 경제주권은 상실하였고 구조조정이 단행되었다. 1998년이후 IMF외환위기 5년간은 구조조정 경제정책의 핵심이었다. 기업의 구조조정은 노동시장유연화로 귀결되었다. 임금, 노동시간, 고용의 전부문에 걸쳐 노동의 유연화가 전개되었다. 외형적으로 임금이 인상되고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2004년 상반기 현재 실업률이 3.9% 수준에 머무름에 따라 노동시장의 안정성이 제고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급격한 확대와 노동자간 임금격차의 확대, 실노동시간의 증가, 고용불안의 증대 등 IMF외환위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재벌대기업의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대량 정리해고로 이어졌고 사회적으로는 실업문제를 야기시켰다. 실업은 IMF금융위기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 잠재되어 있는 문제다. 특히 현대 경제의 성장전략인 지식과 기술 혁신주도의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포드주의 생산방식인 소품종 다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방식 등 유연생산방식을 채택한다. 그것은 유연기업과 유연노동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1980년대부터 전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은 1990년대 자본시장의 개방과 세계화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IMF금융위기 이후 노사간에 벌어진 대립과 갈등은 바로 노동유연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기업의 존립을 위한 구조조정과 노동자의 생존권 확보투쟁이었다.

구조조정을 통한 자본의 노동유연화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후퇴하고 있으며 노동현장의 노동조건은 악화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통한 노동착취는 강화된다. 자본의 이윤축적을 극대화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동법을 개악한다.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노동시장 내 이중구조를 강화 내지 고착화시킨다. 저임금 비정규, 하청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양산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불가피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산업(노동)재해를 빈발하게 한다.

4. 신자유주의 공세와 노동자 건강

1984년 157,800명을 정점으로 1998년 51,000여명까지 계속 감소해 오던 재해노동자수가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계속 증가하여 2002년 현재 820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특히 중대재해인 사망자수가 2,600여명에 달해 후진적이다 못해 야만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산재로 인한 공식적인 경제적 손실만도 10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산재직업병은 전통적으로 제조공장과 건설 현장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보험서비스 등 전산업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소규모사업장과 근속기간 1년미만 사업장에서 전체재해의 60.5%로 재해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노동시장유연화로 인한 비정규노동자들이 높은 산재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노동환경이 월등하게 좋다고 볼 수도 없다.

1970년 창사이래 현대중공업은 32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700여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당했다. 최근 6개월 사이에만도 1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였는데 그 중 7명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다. 박일수 열사의 분신은 물론이고 최근 현대 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재요양중인 노동자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 두명의 자살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져온 노동환경 악화는 규모에 상관없이 전사업장, 전노동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965~75년의 10년간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이 연인원으로 수십만명에 달했는데 부상자 7만여명에 전사자가 5,000여명이었다. 이와 비교할 때 산재로 인한 부상자나 사망자수는 가히 전쟁보다 훨씬 더 참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망만인률에서 보면 영국보다 20배가 높고 미국, 일본에 비해서도 4배나 높게 나타난다. 은폐율을 감안하면 더 높을 것이다.

지난 3년간 근골격계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가 961%나 늘어났고 과로사하는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산업현장의 노동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95년 한국통신전화교환노동자들의 검진을 통해 확인되기 시작한 근골격계질환은 집단적으로 발생하거나 그 심각성이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은 노동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관리시스템이나 노동조건 개선 또는 시설을 마련하기보다는 노동자개인의 안전 의식이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업재해는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상실하고 생존권의 위협에 처하므로 사실은 노동재해(勞動災害)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노동재해는 노동과정의 사고로부터 발생하는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만을 의미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인 자본의 이윤축적과 확대재생산에서 비롯한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고용불안과 노동재해에 노출된 채 대량생산의 톱니바퀴에 끼어 압착당하는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의 값싼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재해는 단순히 불행을 당하는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에게 항상 가까이 존재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외침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얘기하는 상부구조의 개혁은 진실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부 자본주의 생산구조의 현실을 외면한 그 어떤 제도개선이나 정치적 구호도 자본의 이윤확보에 중심이 있음을 노동현장에서 확인된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하루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허덕이는 일용건설 노동자, 불법체류의 멍에를 안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단순 노무 서비직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 그리고 장애인 노동자들은 자본의 이윤착취의 대상이 되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본의 과잉축적은 과잉착취의 다른 표현이라 했다. 자본에 의한 노동의 분할 지배 전략은 노동재해 부문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비정규직의 문제 특히 건설, 제조업 현장의 하청 노동자 문제는 자본에 의해 쳐진 정규와 비정규 노동자 분할 지배의 표본이며 그곳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는 대량살상과 과잉노동력폐기의 극단적 단면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부분은 자본에 의해 철저하게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지급된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열되면 될수록 자본이 비정규하청노동자들에게 이를 폭력적으로 전가하여 광범위한 노동재해를 유발시키고 있다.

노동재해는 자본의 이윤추구와 맞물려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엉터리 산재통계를 유지시키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노동재해의 현실을 은폐하거나 개인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적 저항을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노동운동 역시 조직된 다수 노동자들의 요구와 문제에 급급한 나머지 자본의 밀려오는 재난과 재앙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단체협약 모범안 총 14개장, 188조항 중 산업안전보건 관련 장은 24개 조항이다. 실제 제조업현장에서는 임단협 시기에 산업안전보건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지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임금, 고용 등에 밀려 한계에 직면한다.
노동현장에서의 노동 개선과제는 노동조합의 조직적 규모나 힘의 뒷받침 없이는 확보할 수 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경제(개발)성장과 노동자 건강의 선후문제 내지 조화를 둘러싼 철학이다. 노동현장의 산재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