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이 새로운 IMF발 경제위기가 벌써 6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 사이 IMF는 국제기구의 이름이라는 지위를 벗어나 경제위기의 상징으로 우리 국민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고, 아직도 경제적 불안정과 불황을 나타내는 용어로 살아있다. 이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기간이 지났지만, 아직 경제위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상황은 한마디로 “만성적인 경제위기”라고 할 만하다.

경제위기의 차별적 영향

IMF 체제가 한국 경제와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단기적으로 실업과 가계소득의 감소로 전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겼고, 그 고통은 계층 간에 균등한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에게 집중되는 차별적 양상으로 나타났다. 표 1에서 보듯이 실업률은 1998년-1999년 사이에 천정부지로 상승하였고, 그 이후에 다소 완화되었다고 하나 2002-2003년에도 3.1-3.4%로 경제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이러한 수치조차 비정규직의 급증과 구직희망의 포기 등에 가려진 과소추계된 것이다. 그림 1에서 보듯, 비정규 노동은 이제 아예 보편적인 노동의 양식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경제위기에 따른 거시경제의 변화는 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림 2에서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소득을 살펴보면 1997년 3/4분기 242만원을 기록한 이후, 1998년 3/4분기 207만원까지 떨어졌다가 2000년 3/4분기에 가서야 240만원대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평균소득 감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위기의 여파가 소득계층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였다는 사실이다.

표 2에 의하면, 1998년도 빈곤율 주1)은 1997년에 비해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리고 빈곤율의 증가에 따른 생활의 고통은 저소득계층에 집중되었다.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근로자 계층별 소득 격차는 경제위기를 계기로 악화되어 2001년까지 지속되고 있다.

빈곤이 증가하고, 고소득계층에 비해 저소득계층의 소득이 더 크게 감소함에 따라 빈부격차는 경제위기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표 3). 소득집중도(지니계수)는 1997년 0.283에서 2001년 0.319로 높아져,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악화되었음을 말해준다.

질병의 위험과 사망률의 변화

인과관계를 쉽게 추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에 따른 건강상의 악영향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경제위기의 영향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부분적인 지표로나마 경제위기에 의해 건강수준의 악화와 의료이용의 감소가 나타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우선 경제위기는 의료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표 5에서 보듯이, 1997-8년의 경제위기 이후 의료비 지출 감소는 소득계층별로 불균등하게 이루어져, 저소득계층(Ⅰ,Ⅱ,Ⅴ)은 고소득계층(Ⅵ,Ⅶ,Ⅷ)에 비해 의료비지출 감소 폭이 더 컸다.

의료비 지출 변화는 실직 가정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1997년과 비교할 때, 1998년 의료비 지출은 23% 감소했고, 의약품 소비는 40%나 감소했다. 자영업자와 도시지역 노동자 가계 의료비가 각각 16.9%, 15.5% 감소했다는 사실과 비교할 때, 실직 가정의 의료비 지출 감소폭은 매우 크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절대적인 의료비 지출액이다. 1998년 실업자, 자영업자, 도시 노동자 가계 의료비는 각각 55100원, 51400원, 50600원이다. 실업자 가정이 다른 집단에 비해 의료서비스를 보다 많이 이용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실업자 가정은 의료이용을 가장 많이 하지만, 경제위기에 따라 의료비 지출이 가장 크게 줄어들었다.
건강상태의 변화도 있다. 김한중 등은 IMF 이후 우리나라 사망률 변화에 관한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주2)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제위기와 사망률의 관련성은 유의미하게 나타난다. 전체 사망률은 경제위기 발생 1년 후부터 유의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나,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위기 직후부터 증가하였다. 운수사고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위기 직후 첫 1년 동안 유의미하게 감소하였다. 한편 자살률은 경제위기가 발생한 3개월 후부터 6개월까지 급격하게 증가하였으며, 그 이후에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여 경제위기 전 양상으로 회귀하였다. 이 연구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위기로 야기된 실직 또는 수입의 감소 그리고 물가 상승 등 외적 요인이 스트레스와 같은 질병의 위험요인에 대한 노출을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사망률이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박정한 등도 경제위기가 원인별 사망률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는데,주3) 실업자수와 유사한 변화양상을 보인 사망원인별 사망자수는 자살, 패혈증, 빈혈, 정신 및 행동장애, 근골격계 및 결합조직 질환, 비뇨,생식기계 질환, 피살 등이었다. 1997년 말과 1998년 초에 특별한 변화가 없었으나 1998년 말부터 사망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사망원인 질환을 보면, 허혈성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외에도 호흡기 결핵, 폐렴, 인플루엔자, 만성호흡기질환, 당뇨, 기타 내분비,영양대사성 질환, 주산기에 기원한 특정 병태, 자궁경부암 등이었다. 또한 자동차 사고와 선천성 기형․변형 및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사망은 1997년 말을 전후하여 크게 감소하였다. 연구자들은 경제 위기가 경제적 취약계층 외에도 여성과 노인, 장년기의 경제활동인구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사망과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특별히 노동자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것은 경제위기에 따른 노동환경의 악화와 산업안전보호의 후퇴이다. 경제위기 이후에 일시적으로 감소하였던 연간 노동시간은 1999년 2497 시간, 2000년 2447시간으로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노동강도가 크게 강화되었다. 1998년과 2001년 사이에 70건 이상의 산업안전보건 관련 규제가 완화되었고, 이에 따라 노동부에 추산에 의해서도 산업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가 1996년에서 98년 사이에 각각 41%, 15% 감소하였다. 이러한 변화가 초래한 노동자의 안전보건 악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경제위기 시기에 산재 발생률 자체는 약간 줄어든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중대재해와 사망률은 오히려 크게 늘어나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가 많은 산재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안전의 위협은 경제위기에 의해 크게 악화된 것이 명확하다.

경제위기 – 빈곤 – 건강파괴의 인과관계

우리는 앞에서 경제위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부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종류의 건강위협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극대화되어 나타날 뿐, 자본주의 질서에 내재된 것이다. 현존하는 사회질서에 의해 건강이 파괴되는 대표적인 예로 잘 알려져 있는 것이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산업재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재해 문제는 어느 정도 그 실상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8~9년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줄어든 노동부 예산이 산재예방사업 예산이라는 사실은 경제위기와 여기에 대한 시장적 반응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는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4) 더구나 노동 현장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산재사고가 빈발하는 바로 그 때 이루어진 결정이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이라니 딱한 일이다. 주5) 산업재해가 노동하는 자에게 생기는 건강위험이라면, 경제위기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을 박탈당한 자에게도 심각한 건강위험을 불러온다. 산업재해가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건강 파괴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것이라면, 자본주의의 운동방식과 직접 연관된 실업과 이로 인한 빈곤으로 인한 건강문제는 좀 더 간접적이고 교묘하다. 물론 둘 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의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는 “희생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꼭 같다.
1998년의 경제위기가 노동을 박탈하거나 혹은 노동과정에서의 건강 피해를 강화하거나, 누구든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살아가는 전제인 한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시장에서 패배하거나 배제당함으로써 삶과 건강이 파괴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조사결과가 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98년 9월 전국의 3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업실태 및 복지욕구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실업자들의 36.7%는 불안감, 28.3%는 우울증, 22.1%는 적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별거 이혼 사별’등을 겪은 실업자 10명 중 8명은 `신경이 예민하고 마음의 안정이 안된다’는 불안심리상태, 10명 중 4명은 `죽고 싶은 기분’이라는 우울 증세를 보였다. 주6)
그러나 이러한 건강의 파괴는 앞의 예와 같은 몇 가지 간접적인 결과들을 제외하면, 반드시 “희생자 비난하기”가 아니더라도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자살과 같은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형태가 아닌 한,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판단이 유보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집단이 아닌 개인의 경우 시장과 자본-빈곤-건강의 연결고리는 대부분 은폐된다. 그렇지만 1998년의 경제위기가 단지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으로도 읽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건강의 연결고리를 드러내는 역할(물론 전체는 아니지만)을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아직도 대부분의 건강피해는 사회적 맥락으로서의 시장은 빠진 채 복잡한 개인적인 요인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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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빈곤율은 최저생계비 이하 가계지출을 보인 도시가구의 비율을 뜻한다.

2) 김한중 등. 한국의 IMF 경제위기 전후 사망률의 변화. 대한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 연제집, 2001

3) 박정한 등. 한국에서 경제위기가 원인별 사망률에 미친 영향. 대한예방의학회 추계학술대회 연제집, 2002

4) 1999년 정부의 산재예방사업 예산은 전년대비 30.9% 감소한 액수로, 예산 감액에 따라 축소된 사업부분은 안전보건시설 개선지원 및 융자, 안전보건연구 및 국제협력, 안전문화운동 추진 등이다. 노동자 신문 1999년 1월 5일자

5) H자동차 조합원들 가운데 87.6%가 목, 어께, 팔꿈치, 손, 허리의 통증 및 감각이상을 호소해 1998년 한해 동안 노동강도가 매우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는 이를 “회사가 무차별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한 이후 일방적으로 UPH(시간당 생산대수)를 조정해 노동강도를 높여온” 결과라고 해석했다. 노동과 세계 99년 2월 15일자

6) 1999년 2월 11일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