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는 여름에 이루어졌습니다. 책이 늦어지면서 여러 문제가 생기지만 이번에 가장 미안해지는 분은 단병호 의원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만나고 간 이들이 한 두 사람일까만, 열심히 질문을 해대고, 사진까지 찍어가서는 감감소식이라면 참 실없는 사람들이구나 하지 않겠습니까.
단 의원을 만나러 여의도로 갔을 때는 민주노동당이 10명의 국회의원을 내고, 그 감동이 채 식지 않았을 때였고, 국회가 개원한지 두달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어, 고조된 감정은 조금 식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본 게임’을 치르고 있는 시기입니다. 정기국정감사가 이제 막 중반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단 의원 역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가 된 삼성SDI 의 노동자 휴대폰 감시에 대한 삼성측 증인신청이 다른 당 의원들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있었고, 한편 현대중공업 같은 거대 조선소가 비정규하청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어떻게 탄압하고 노동기본권을 억압하는지 소상히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단병호 의원이 있기에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분신한 이후 하청노조와 합의한 사항들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국정감사장에서 따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각각의 상임위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노동자의 눈’으로 국정을 감사하고 있으며, 이 사회가 얼마나 뿌리깊은 곳에서부터 노동자의 평등과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지 캐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단병호 의원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소중하고 소박한 이야기들은 빛 바래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좁은 의원실의 안쪽에 그는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회와 앞마당의 푸른 잔디가 훤히 보이는 전망이 꽤 괜찮은 방이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국회에 오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기뻤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을 말씀해 함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힘들었던 순간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기 보다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게 힘듭니다. 용납하기 어려운데 참아야 순간들이 참 많습니다. 파행적으로 운영이 되는데 왜 파행적으로 운영이 되는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갑니다. 국회 운영 현실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는데 이걸 정면으로 거스르기 어렵다는 겁니다. 인내해야 하는 게 답답합니다. 인내심에 대한 시험을 받는 기분이랄까요.
보람있던 일이라면 비정규노동자 보호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의미 있고 기쁜 일입니다. 입법화 과제는 남아있지만 고통스러운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당당하게 입법발의한 게 역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죠.
비정규직 보호는 민주노동당의 의회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요구의 대중화, 대중의 요구가 핵심입니다. 비정규직 법안을 발의는 했지만 민주노총, 한국노총 노동자들이 해결할 법안으로 받아야 하는데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노동자들의 이후 과제입니다.
그렇다. 비정규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할 입법안을 직접 발의했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간난신고와 함께 해온 그에게 어떻게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한데, 단 의원을 만나자마자 처음 듣는 말은 인내, 인내, 인내 였다. 도대체 이 나라 국회 안에서는 참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당선확정 당시 인상적이었던 것이, 한 비정규노동자가 꽃다발 선물을 하는 걸 TV로 봤는데요, 특히 노조가 없는 영세노동자들이나, 비정규노동자들이 많이 응원해주지 않습니까? 노동자 국회의원으로서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라면 어떤 게 있습니까?
– 그거야 선물이 아니라 압력이지(웃음).. 한계가 있어요. 의지의 문제라기 보다 민원은 내가 직접 할 수 없고 보좌관이 해야 하는데 기대에 못 미치죠.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되니까.
국회 회기 40일동안 꼼짝도 못 합니다. 일정을 소화하기도 빠듯해서 민원을 소화할 역량이 없어요. 부담이 있고, 빚진 기분이예요. 민원을 낼 때는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절박하니까 한 건데. 여기까지 오기에는 많은 고민과 절차가 있었을 텐데 부담이 많이 됩니다.
처음에는 당에서 민원실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할 계획을 가졌었는데 민원실을 못 만들었습니다. 요구를 소화할 수가 없습니다. 천안 ‘명일택시’ 도 그렇고 문제가 심각한데 민원을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말이지 개별노동자들의 민원이 많을 것 같다. 그 부담감도 굉장히 커 보였다. 크던 작던 절차와 합리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 억울한 문제들을 떠안고 사는 노동자, 노동조합이 부지기수인 사회 아닌가.
국회에 들어와 보니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습니까?
– 국회 들어와서 보니까 54개 연구모임들 가운데 노동문제를 하는 데가 한개도 없습디다.
노동이 중요한 사회 정책의 하나인데도… 이에 대해선 당 차원에서 별도의 고민과 논의가 필요합니다.
노동에 대한 관심은, 의원들이 노동문제를 중요한 관심사로 보자고 ‘노동기본권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노동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 다들 동의한다고들 하는데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잘 봐야 합니다,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역방향’으로 생각하는 의원들도 있고, 대충 대충 하자는 생각들도 많습니다. 이번 비정규법안은 내놓으니, 방향에는 동의한다고 하지만 발의 서명에는 동참할 수 없다고들 합니다. 정부가 비정규입법발의를 하는데 이에 맞추어 의원들을 단속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정말 정치적으로 합니다. 물론 진심도 있지만. 이번에 비정규 입법발의하면서 16명의 서명을 받았는데 민주노동당 10명 외에 서명한 6명은 정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열린우리당에 5명이 서명했고, 한나라당에서도 박계동 의원이 서명했습니다. 서명한 사람들이 이전에 운동의 중심에 있던 사람도 아니고 잘 모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생운동 출신 의원들은 최소한의 미안함 같은 걸 표하기는 하죠. 정치적 행보는 달리 하지만 같이하지 못하는 미안함 같은 거는 표시합니다.
굵직한 파업들이 진행됐는데요, 의원이 되신 후 중재자로서 역할이랄까 고민이 많지 않으십니까? 노동현장에서 사회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노동자의 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 왔고요.
– LG 정유, 지하철 파업, 보건의료 파업 등에 대해 직권중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병원이 잠정합의됐다고 하는데 궤도 파업이나, LG 정유 투쟁은 개입해 보기도 전에 직권중재가 떨어졌습니다. 직권중재, 불법파업, 물리적 진압 등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구체적 개입은 거의 하지 못했어요. 파업에 들어가고 노동부 장관을 만나서 상기시켰어요. 공권력을 이용하는 건 용납이 안 된다, 물리력 사용을 막아달라고 했거든요. 직접 중재하기에는 갑갑한 면이 있습니다. 내용적인 중재는 더 어렵습디다. 잘 하라고 촉구할 수는 있는데…
대중의 기대가 많을 텐데 충실하게 채우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의정활동에서도 그렇고, 당도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가운데 하나일 것이고, 자원으로서 적극 활용할 부분도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사회단체와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계십니까?
– ꡐ노동기본권 국회의원 연구모임ꡑ이란 걸 만들었는데, 여기에 12명의 자문위원을 두고 의정활동 자문위원단을 꾸렸어요. 부문별로 결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데요, 노동, 비정규, 장애, 법조계, 산재문제 이런 식으로 영역별로 구성했어요. 자문위원단은 관련 부분과 사안을 검토하고 정책연구 과제, 의견수렴 같은 일들을 할 겁니다.
장애인 관련된 상임위 예산이 500만원 있는데 장애인 문제로 연구과제를 하나 발주했고, 또 하나는 비정규 문제와 산업구조 개편 연구를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예산 문제가 있어 많이는 못하지만… 다음에는 노동자건강 문제도 한번 봐야할 것 같고…
이헌재 부총리가 골프장 많이 짓고, 경기부양하자고 말하자, 환경단체가 즉각 반대에 나섰고, 이 집회에 맨 앞자리에 서 계시던데요, 그걸 보며 생각해보니 아, 노동만이 아니라 환경노동 위원회잖아요. 의원 활동에서 환경에는 얼마나 투자를 하시게 되는지요?
– 환경단체들이 기존 당보다 민주노동당에 요구가 많죠. 아무래도 기존 당들보다는 환경적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당이니까. 청주 원홍리 두꺼비 살리기 운동 하나만 보더라도 도시개발문제, 환경영향평가를 실질화하는 문제, 법개정과 건축문제, 생태계보호와 주택가이전 문제 등이 얽혀 있더군요. 상수도 민영화 문제 등도 당 환경위원회와 논의해야 할 문제구요.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아, 바꿀 가능성이 있다, 해볼만하다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 국회 들어와서 보니 국회의원이란 게 상상하기 어려운 권위가 있어요. 본인이 하겠다고 생각하면 의원으로서 권위를 세우는 거고, 무한대의 권위를 향유할 수가 있어요. 일을 하겠다 하면 무지 많이 할 수 있구요. 어떤 선택을 해서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가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민주노동당은 무한대의 책임을 지겠다고 한 거니까. 열심히 일 해야죠.
국회 들어온지 53일 되는데 국회기능과 역할은 다 경험했어요. 추경예산, 상임위, 대정부발언, 원구성, 의장선출, 상임위 배정, 대정부 보고 … 두가지를 동시에 느낍니다.
밖에서 생각했던 거 보다 참 정말로 철벽이구나. 생각보다 훨씬 두껍고 높다. 소수정당이 소외받는 것도 그렇구요. 여기가 국민의 의사를 토론하는 곳, 민주의 광장이고 상징인데 비민주적 요소가 온전히 있습니다. 운영의 효율성이 없고, 독점적, 비민주적, 야합적이예요
민주주의의 광장이라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반대세력이 온존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일이십년 갖고 깨질까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가능성도 보입니다. 290명 중에 10명이지만, 이라크 파병반대에 60명이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비정규 법안에 서명한 6명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같이 하고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의회 내에서 어렵지만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국회 안에서 일하는 문화를 만들고, 형식을 깨는 것으로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데요?
– 민주노동당이 들어와서 국회의 비민주적 권위주의도 많이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보통 의원회관 도서관, 의사당 모두 문이 2개예요. 정문은 의원들만 들어가고 보좌관과 국민들은 후문으로 다녔어요. 웃긴 일입니다. 국회의원은 머슴이라고, 일하라고 보냈는데 머슴은 큰 문으로 다니고, 주인은 뒷문으로 다니니.. 근데 이게 깨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의원용 카페트 길에 보좌관이 다닌다고 시비 안 합니다. 의원용 엘리베이터도 자유롭게 타고 다니고, 형식부터 허물려고 하고 있죠.
제가 옷을 이렇게 잠바를 걸치고 다니는 것도 여기 국회 사람들한테는 문화충격이었다고 하더군요. 국회안에 형식적 절대권력이 무너지고 수평적 관계가 열리고 있어요. 용감하게 나서면 벽을 깰 수 있다는 희망도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관련 전문가로서 묻겠습니다(웃음). 국회 일터의 작업환경과 노동조건은 어떻습니까?
25평 의원실이 생각보다 작업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여기가 의원실 13평, 보좌관실 12평으로 돼 있는데 보좌관은 저 문턱을 못 넘었다고 해요.
저는 보좌관책상을 여기도 두 개 더 놓아서 의원실이 좁아졌죠. 그리고 엄청 더워요. 옛날 건물이라 그런가.. 에어컨이 잘 안들어와서… 그러니 근무조건만으로 보면 그렇게 호화판은 아니죠. 민주노동당이 들어와서 의원실이 사무공간으로 변했죠.
상임위 열리면 일이 고되요. 모든 동지들이 11시, 12시 퇴근하는데 그래도 출근시간은 엄격합니다. 다른 의원실이 9시에는 의원실을 여니까 우리도 그 시간에는 열어야죠. 그러니 9시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고 야근하고 노동조건이 안 좋아요. 인간답게 살자고 왔는데 ‘비인간답게 산다’고 농담하죠.
이야기를 나누는 길지 않은 시간, 단병호 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무겁게 안고 있는 존재의 무게가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따뜻합니다. 착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착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에게 민원을 넣은 노동자들에 대한 세세한 기억과 미안함을 그렇게 오래도록 말할 수 있을까요. 원흥리의 두꺼비 살리기 운동에 대해 그토록 많은 이야기꺼리를 기억할 수 있는 있을까요. 붉은 띠 두른 노조지도자의 영상이 아직은 선명한 그에게서, 삶터를 잃을 두꺼비 걱정을 듣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의 광장이어야 하지만, 아직은 권위주의의 구습에 깊이 중독되어 있는 이 나라 국회. 그에게서는 이전투구 속에서도 희망의 이유를 찾는 의지같은 것이 함께 배어 나왔습니다. 그 의지는 국회의 민주적 변신을 꿈꾸는 노동자의 문화적 자신감, 민주주의를 훈련한 활동가의 자부심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10월, 노무현 정권은 모든 노동자의 처지를 불안과 고난으로 몰고가는 최악의 악법을 들고 나왔습니다. 노동자를 알량하게라도 지켜주는 사회보장제도 곳곳에는 자본의 칼바람이 뚫고 들어와 노동의 겨울이 결코 만만치 않으리라는 암시를 주는 계절입니다.
그도 국정감사의 현장에서 분투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을 억압하는 체제에 맞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듯, 노동자에 대한 사랑과 연대의 힘으로 변화의 훈풍을 일으키길 기대하며 그에 대한 지지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