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보험의 일반원리와 산재보험
사회보험제도의 태동과 발전은 노동운동의 성장과 떨어뜨리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스웨덴, 영국 등 전후 유럽 전역에서 이루어진 사회보장의 진전이 강력한 노동조합운동 및 노동운동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은 이미 광범위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사회보험의 등장 자체가 자본과 노동의 계급타협의 산물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강력한 노동운동의 성장이 없었다면 이러한 자본의 양보를 획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더욱이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의 성장은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 의식을 확장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고, 노동운동의 발전과 성숙으로 이어지는 데에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노동운동의 진전 과정을 사회보장의 쟁취 또는 사회권 투쟁의 전면화라는 시각에서 살펴보면, 개념적으로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한 시기는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생존권 및 자유권적 제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에 집중하는 시기로 정의할 수 있고, 또 다른 시기는 자유권적 제 권리를 확보하는 투쟁과 함께 노동자들이 보편적인 사회적 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권 투쟁으로 나아가는 시기로 정의할 수 있다. 두 시기의 구분이 반드시 시간적 선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권의 문제가 노동운동의 주요 쟁점이 되었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목표가 즉자적 계급 및 계층적 시각에서 벗어나 보편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 것이기도 하였다.
실제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의 기본적 구성원리로서 접근성, 보장성, 연대성이라는 원칙이 관철될 수 있었던 것도 노동운동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사회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재보험 역시 사회보험인 이상 접근성, 보장성, 연대성의 기조에 근거할 수밖에 없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원칙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초기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의 보편적 특성보다 사업주책임보험적 성격이 강하고, 다른 사회보험에 비해 이러한 특성이 오랜 기간동안 이어져 온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복지의 강화와 맞물려 접근성, 보장성, 연대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보편주의적 시각이 주류적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음은 필연적 경로라 할 수 있다. 특히 노동운동이 발전한 서유럽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산재보험제도는 아직까지 사회보험이 갖는 일반적인 원리에 비추어볼 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2. 산재보험제도의 현황
접근성의 제약
우리나라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자는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자에 국한되어 있다. 실질적으로 임금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골프장경기보조원, 학습지교사, 화물노동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적용대상자를 보면 임금노동자도 극히 일부만 적용 받고 있는 등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 현재 산재를 입은 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으려면 본인에게 발생한 사고와 질병이 직업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여 허락을 얻어야만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고성재해 및 직업병이 발생하여 노동자가 요양이 필요하게 되면 노동자는 본인과 회사의 날인, 그리고 병원의사의 소견서가 포함된 요양신청서 3부와 재해경위서 및 목격자 진술서 등 증빙서류를 함께 작성하여 근로복지공단과 병원, 그리고 회사에 제출한 후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아야만 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상당수의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산재를 입은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공상으로 치료를 받고 산재 신청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원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이러한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료의 특성상 ‘소비자의 무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질병과 직업관련성을 인지하고 산재보험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 보편적 기능을 상실했음을 보여준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승인 과정이 사고성재해처럼 인과관계가 명확한 경우는 1-2주안에 절차가 마무리되지만, 직업병의 경우는 작업관련성에 대한 다툼이 커서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인정 절차가 한정 없이 길어지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요양이 인정이 되기 전까지 본인부담이 50%가 넘는 건강보험을 통해 요양급여를 제공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요양신청이 불승인 처리될 경우는 행정심판절차를 밟든지 아니면 바로 행정소송에 들어가게 되는데,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낭비되고 이 과정에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산재보험을 인정받게 되더라도 이미 노동자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결과적으로 급여를 제공받기 위하여 노동자에게 작업관련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사전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제도는 산재노동자에게 적절한 치료와 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정부와 보험자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함으로서 장기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고, 사업주의 측면에서 보면 산재은폐를 유인하도록 부추기는 기전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사전승인 및 노동자 입증의 과정이 계속되는 한 산재노동자의 의료이용을 지속적으로 제한하고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며, 산재은폐와 치료의 지연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업무상 재해 및 질병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매우 제한적이고 엄격하다는 점도 산재노동자의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실제로 직업관련성이 확실한데도 산재보험에서 인정되는 직업성질환의 범위가 좁고 기준이 엄격하여 실제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아야 할 산재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요양급여를 제공받거나 심한 경과 자기 부담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아직까지 산재보험의 적용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엄격한 원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사회보장이 발전한 국가일수록 결과주의로 가고 있고 산재로 인정되는 재해 및 질병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건강보험의 급여수준이 매우 낮고 산재발생 후 재취업 및 온전한 사회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업무상 재해 및 질병의 인정기준은 항상 근로복지공단, 사업주, 노동자간에 첨예한 대립양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지만, 더 이상은 과거와 같은 제한된 인정기준으로 산재보험의 미래를 유지하기 어렵다.
취약한 보장성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에서 실시한 2000년도 실태조사에 의하면 대다수 산재노동자들이 산재 발생 후 실질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는데, 요양에 들어가는 본인부담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에서 급여가 되지 않은 부분도 급여를 해주고 있고, 급여로 인정되는 부분에 한하여 본인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건강보험보다 보장성이 높지만, 급여에 포함되지 않은 채 산재노동자 개개인이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비가 전체 진료비의 20%에 달할 정도로 산재노동자의 가계에 큰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휴업급여의 경우도 산재이전 평균임금의 70%만을 보전해주고 있어서 일부 대기업처럼 단체협약에 의하여 별도 규정이 없는 한 산재이후 가계소득의 급격한 후퇴를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서유럽도 산재보험의 휴업급여 비율이 우리보다 낮은 국가가 존재하지만, 정부나 사회복지기금 등에서 별도로 제공되는 부가급여가 매우 많기 때문에 산재에 따른 소득감소가 상대적으로 적고, 가계의 곤란함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더욱이 경제규모가 비슷한 아르헨티나, 브라질, 폴란드 등 상당수 국가들은 휴업급여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해급여 역시 판정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직장복귀가 불가능한 중증 장애를 입은 노동자의 경우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보장성이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취약한 보장성 수준은 산재노동자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받고 직장 및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또한 산재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의 심사, 재심사 절차와 행정심판 절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동기가 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산재보험이 산재노동자의 소득보장 기능을 추가하여 생활보장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발전하려면 가장 핵심적으로 기능을 강화해야 할 부분이 재활이다. 특히 직업재활은 산재노동자의 사회적 복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 또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직업재활은 체계적인 제도와 거리가 멀고, 사실상 재활제도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용이 부실하다. 그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직업재활은 직업훈련원, 점포임대 지원사업과 같은 창업지원을 위주로 한 일부 산재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사업으로 제한되어 왔다. 독일만 보더라도 재활에 사용되는 예산이 산재보험 전체 예산 중 20%를 훨씬 웃도는 수준인 반면에 우리는 겨우 2001년 현재 1.7%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연대성의 결여
현재 산재보험은 업종 및 개별사업장별 재해율에 기초하여 보험료율에 차등을 주는 차등보험료율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보험료 부과방식은 사고 발생의 위험이 큰 소규모 사업장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산재은폐의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차등보험료율 방식은 연대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보험과 어울리기 힘든 부과방식이라 할 수 있다. 초창기는 산재보험이 사업주책임보험적 성격이 강하여 차등보험료율 방식을 부과했을지 모르지만, 사회보험의 원리가 강화되면 될수록 연대성 원리가 구현될 수 있는 평균보험료율 방식으로 부과체계가 전환되는 것이 순리다.
특히 사회보험으로서 소득재분배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차등보험료율 방식을 평균보험료율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3. 산재보험 개혁 방향과 과제
먼저, 산재보험제도는 산재노동자의 수급권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당연한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은 산재에 대한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부과하고 있고, 사전승인의 과정이 존재하며, 협소한 인정기준으로 노동자의 수급권을 제약하고 있다. 아직까지 산재보험 적용대상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형식적으로 전 사업장으로 확대되어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과제는 실질적인 적용의 확대, 즉 산재노동자의 수급권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혁되어야 한다.
둘째,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의 원리에 맞도록 의료보장과 소득보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의료보장은 업무상재해에 집중되어 왔고, 갈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업무상질병에 대한 보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휴업 및 장해급여 등으로 제공되는 소득보장형 급여가 불충분하고 이후의 취업 등과 연계되지 못하여 생활보장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당연하게도 산재보험은 충분한 소득보장과 생활보장으로 산재노동자의 사회복귀가 가능한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셋째, 당면 산재보험의 개혁은 사회보험의 통합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보험 및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받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각각의 서비스가 연계되고 포괄적으로 제공될 때 개인적 후생이 클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거시적 효율성과 사회적 후생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당면 산재보험의 개혁은 사회보험 통합의 전 단계로서 의미를 갖으며 그러한 방향으로 체계 개편과 보장성 강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재보험제도 개혁이 올바른 방향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참여가 실제적으로 보장되고 구체화되는 개혁이어야 한다. 생색내기 식의 노동자 참여가 아니라 수급권자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최소한 과반수의 의결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참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구체적인 사업 과정에 노동자대표의 위임을 받은 전문가의 참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개혁 과제 중 우선적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는 노동자 입증책임, 사전승인 절차로 인하여 산재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와 질병이 발생한 시점부터 요양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산재보험 급여제공 체계와 관리운영 체계를 개혁하는 것이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의 체계 개편과 함께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서비스의 강화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서비스 업무가 산재의료관리원의 관리 및 기타 실효성 없는 일부 급여의 제공이 전부였다고 한다면 새로운 근로복지공단은 산재가 발생하기 이전인 산재예방서비스에서부터 궁극적으로 직업복귀 및 사회복귀로 나타나는 재활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 적절한 인력과 시설을 갖추지 못한 요양기관이 산재노동자에게 부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요양기관의 서비스에 대한 감시기전이 필요하며 그 역할의 상당부분을 근로복지공단이 담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새롭게 재편되는 근로복지공단의 운영에 노동자 및 공익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중요 의사 결정에 노동자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렇게 근로복지공단이 기능이 변하기 위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의 심사기능을 폐지하고 독립적 심사기구인 가칭) 산재보험심사평가원을 구성하여 기능을 이전해야 한다. 가칭) 산재보험심사평가원은 청구된 진료비의 심사 기능과 함께 급여 제공의 타당성 평가를 수행하는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료의 적정성 평가 업무도 함께 수행할 수 있다. 이 때의 급여제공의 타당성 평가란 별도의 평가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치의 및 산업의학전문의 등의 작업관련성 평가가 명시적인 평가기준에 의거하였는가를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산재노동자에게 산재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는 과정을 폐지해야 한다. 단 사고성재해는 사업주와 요양기관의 신고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의 확인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어 서비스의 단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별도의 작업관련성에 대한 평가가 요구되는 질환은 별도의 평가항목과 기준에 따라 주치의에 의하여 평가가 이루어지고 신속하게 요양급여와 휴업급여, 그리고 장해급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주치의에 의한 작업관련성 평가가 어려운 경우는 산업의학전문의에 평가를 의뢰하게 하여 그 결과에 따라 급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이루어지면 명시적으로 정해진 작업관련성 평가 기준에 따라 담당주치의가 산재요양으로 판단하고 명시적 판단이 어려운 경우 산업의학전문의에게 의뢰하여 평가할 경우 별도의 입증과정과 승인과정 없이 신속하게 급여가 제공될 수 있게 됨으로서 산재보험에 대한 산재노동자의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또한 산재보험의 보장성이 질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각종 행정비용 및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4. 발상의 전환을 기대하며
산재보험의 제도적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앞서 무엇보다 사회권 투쟁에 대한 노동운동의 발상 전환이 요구된다. 현장의 이해와 요구에 근거하여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대중운동의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러한 투쟁이 기본이 되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본의 분할 통치 전략 및 신자유주의 구조화에 대항한 노동자, 민중의 조직화를 원한다면 좁은 틀과 대상, 그리고 일상의 벽을 뛰어넘는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다.
당장 현장에서 직면한 문제가 아닌 이상 산재보험 투쟁을 포함한 사회권 쟁취투쟁이 대중적 동력을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특히 개별 노사관계에서 사업주의 폭력성이 생존권적 투쟁의 몰입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역량과 조건의 비대칭성이 노동자의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에서 노동 일반의 권리, 더 나아가 시민권에 해당하는 사회권 투쟁을 노동운동이 지배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처해 있고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는 노동운동의 비대칭성 문제 때문에 개별 노사관계를 뛰어넘는 집합적이고 정치적인 연대가 오히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며, 제도적인 틀의 변화를 통하여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연대의 사회경제적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특정 시기에 발생한 계기적 사안을 노동운동의 전체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면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 노동운동의 대중적 동력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판단도 해볼 수 있다.
만약 강력한 대중투쟁으로 표출된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이 산재보험개혁과 연계되었다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났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노동자 건강권 투쟁과 관련하여 최초라 할 정도로 노동조합의 집단적 투쟁역량으로 표출된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이 산재보험의 실질적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상위목표를 분명히 하고 연대투쟁을 전개했다면, 산재보험의 실질적 개혁 뿐 아니라 건강권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의식이 한 단계 진전되는 계기가 형성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발상의 전환,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비대칭적 모순 구조를 깨뜨리기 위한 의식적 활동의 첫 출발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