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민연금이 공격받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금융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침략을 뒷받침하면서 노동계급을 공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노동착취를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복지제도를 공격함으로서 자본의 이윤축적을 원활하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 재생산은 두 가지 경로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로 받는 소득으로서의 시장임금(market wage)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복지 즉, 국가를 통하여 얻는 사회임금(social wage)이다. 자본은 기업을 통해 잉여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자는 그 잔여분을 통해 개별적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한다. 그러나 사회복지제도는 사회가 노동력을 재생산함으로써 자본의 잉여노동력 착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자본은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을 통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에서의 분재정의를 은폐하려 한다. 위험의 분산과 연대라는 노동계급의 사회복지 추구와 사회 임금을 통한 노동력재생산을 방해한다.
자본의 사회복지에 대한 공격은 유연화 된 노동시장에 노동자들이 값싸게 공급되는 조건을 만들어 준다. 이는 유럽에 비해 외형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나타내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사회복지가 취약한 점이 이를 반영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사회복지제도를 겨냥하는 이유는 이렇듯 명확하다. 우리 나라 사회복지제도의 상징으로 되어있는 4대 보험제도 중 국민연금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표적이 되고 있다. 아직 주택이나 교육문제가 사회복지제도로 정착되기에는 요원한 일이고 그나마 제도로 시행되고 있는 4대 보험 중 기금의 규모 면에서 볼 때 자본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월 현재 141조원의 국민연금 기금은 1995년 불변가격을 기준으로 2010년에 200조원, 2050년이면 12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국민연금제도가 완전하게 정착된다는 것은 자본의 이윤추구 방향과 심각한 대립,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 내용으로서 사회복지의 축소, 특히 국민연금 제도의 해체는 바로 공공보험에서 (민간)사적보험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것이 국민연금에 대한 공격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OECD나 세계은행 등은 연금시장의 확대에 따라 한국정부에 사적연금정책의 확대를 촉구해 왔다. 사적연금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공적연금을 약화시켜야 한다. 공적연금을 약화시키는 것은 공적연금이 처하고 있는 만성적 재정적자로부터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고 동시에 불안정한 자본시장도 활성화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 퇴직금폐지의 중간단계인 퇴직금의 사적연금시장 흡수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에서다.
2. 보험료를 인상하고 수령액을 깎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지난 8월12일부터 ‘사이버 의원총회’ 형식으로 당소속 의원들에게 토론에 부친 「국민연금법 개정 추진방안」에 따르면 지난 6월2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과의 절충형식이다. 열린우리당은 ‘덜 내고 더 받는’(고급여 저부담 체계) 현행국민연금제도에서 ‘조금 덜 받는’ 쪽으로 개선하자고 주장하였다. 말하자면 연금의 소득 대체율(연금수령액)을 현행 60%에서 정부안 50%와 절충하여 2008년부터 55%로 낮추는 것을 제시하였다. 이후8월 17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연금수령액을 여당의 요구대로 55%로 낮추기로 잠정 결정하였다.
한편 보험료율은 2008년 차기 재정 계산결과 때 검토하는 게 현실적이라며 당분간 현행 보험료율을 유지키로 한다는 안이다. 정부안은 현재 9%인 보험료율을 2010년 10.38%로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매년 5년마다 1.38%포인트씩 올려 15.9%까지 인상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02년 현재 사회보장 부담률이 프랑스 16.4%, 독일 14.8%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해 여당의원들은 국민의 반발을 고려하여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은 단지 일반국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국민연금 보험료 50%를 부담하고 있는 사용주들이 그 동안 줄기차게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실 보험료 인상에 대해 사용주들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과도하게 늘어난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이는 한나라당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정부가 이번 17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을 보면 먼저 현행 급여율 60%를 50%로 인하하는 안은 당정협의로 55%로 절충되었지만 현재 가입기간을 고려한 실제수령 연금액은 자기소득의 30%로 약 40만원 수준인데 이를 55%로 낮추면 약 37만원에 불과해 공적 국민연금제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1인 생계비 수준에 불과하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개정안은 140조원에 이르는 연금기금운용에 관한 사항이다. 국민연금기금 운용본부에 채권, 주식, 기타 자산운용 담당 상임이사를 두며 연금기금을 서민아파트 분양이나 노인전문요양병원 설치 등 복지사업과 노후 생활 안정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가가 예산으로 해야 할 복지정책까지 국민연금을 통해 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방식은 비단 국민연금 뿐 아니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건강보험에 있어서도 정부가 관리하에 있어 끊임없이 다른 용도로 사용해 왔다. 조세제도의 개혁 없이 기금의 사용이 왜곡되고 노동자들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이와 같이 수령액의 인하와 보험료율 인상을 위한 재정추계기간을 70년 최장기간으로 잡은 것과 현재 세계최저의 출산율을 적용하는 등으로 인해 비현실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현재의 낮은 출산율대로라면 1세기 후에는 이 땅에 사람이 한 명도 살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통해 출산율의 상향조정과 추계기간의 단축, 국고지원의 확대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에서 감춰진 문제 중 하나는 ‘국민연금 8대 비밀’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상위소득자의 연금보험료 상한선을 철폐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급여율을 제한하여 소득재분배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급여상한선과 함께 일정금액 이상의 수령액에 대해서는 과세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 급여지급계산방식에서 재분배지수를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국민연금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현행 국민연금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의 문제다. 국민연금 수급권을 가진 사회구성원의 수가 성인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면 이는 사회보장제도의 성격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보험료 납부예외자와 미납자, 애초에 국민연금에 포괄되지 못한 노인, 전업주부 등은 소외되어 있다. 이번 열린우리당의 개정안에서도 전업주부, 비정규노동자, 저소득층 등을 위해 기초연금제를 도입(1 소득자 1 연금제 → 1인 1 연금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묵살되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논리를 그대로 국민연금에도 적용하고 연금보험료 역시 (준)조세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수익자부담의 원칙이다. 국민연금은 철저하게 계층간, 세대간 연대정신에 입각한 제도다. 따라서 정부, 여당의 개정안은 공적연금의 축소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자본의 사적 연금시장화 전략에 동조하는 것이다.
3. 국민연금 기금을 노리는 초국적 자본
다음으로 국민연금기금운용체계 개편에 대한 문제다. 자본, 특히 초국적 투기자본은 한국의 200조원에 이르는 연, 기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재 기금관리 기본법 3조3항의 ‘기금관리 주체는 당해 기금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할 수 없다’는 규정을 철폐시키기 위한 공세를 펴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이 43%에 이른다. 미국과 일본의 10%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그런데 주식시장의 기관투자자 비율을 보면 한국은 11%에 불과하나 미국은 50%, 영국과 일본은 40%다. 이런 비교를 통해 연기금의 주식투자 없이는 한국주식시장을 살릴 수 없고 따라서 한국경제는 장기침체 국면 또는 제2의 IMF에 빠져들지 모른다는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불안정한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 국민연금기금을 투입한다면 그에 따른 국민연금기금의 불안정성은 급격히 높아지고 연금가입자들이 최후의 노후보장수단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문제를 다룰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관한 개정안은 가입자를 배제하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행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 21명 중 가입자 대표는 12명인데 개정안은 위원을 9명으로 하고 가입자대표를 4명으로 제한하여 과반수 결정권을 박탈하고 있다. 그리고 가입자대표도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추천권만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주인들을 배제하고 정부가 마음대로 하겠다는 발상이다.
한편 신설되는 는 국무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기구로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를 감독하는 옥상옥에다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구도다. 사실 현행대로 운용한다 치더라도 전문인력 없이 분기별로 모여 회의하는 정도의 위원회라는 것은 정부의 방향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특히 기금을 주식투자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제부처의 의도대로 될 것이다. 한편 8월 18일 한국 재정. 공공경제학회와 국민연금연구센터가 가 주최한 국민연금제도개선 정책토론회에서는 연금의 투자수익률을 올리고 장기적인 기금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이 우리은행 등 정부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내은행 인수에 나서야 한다는 주제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은행의 민영화 내지 투기자본에 의한 인수합병은 국민연금은 언제든지 먹힐 수 있는 조건이다.
연, 기금 중 가장 거대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에 대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의도는 분명하다. 송두리째 먹겠다는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43%, 시중은행의 65%, 우량기업의 50%를 점하고 있는 외국자본으로서 한국정부예산보다 더 커진 국민연금기금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자본의 절대다수가 단기투기자본들이며 시세차익을 노리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최근 초국적 자본의 횡포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와 고배당, 자산매각, 자사주 매입, 유상감자를 통해 오직 주주의 이윤극대화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이 호시탐탐 투기자본이 노리는 카지노금융자본주의의 정글에다 국민들의 최후의 보루이자 미래라 할 수 있는 국민연금기금을 그대로 내맡긴다는 것은 생존권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정말 해괴하기 그지없다. 국민연금은 권력은 잡은 어느 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안정이나 이해를 위해 달성할 수 있는 재정이 아니다. 그저 개별 국민들이 푼푼이 모아 둔 돈이며 이를 정부에 일시 예탁했을 뿐이다. 보따리를 맡겨 뒀더니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강도행각이다. 국민연금기금이 자본시장의 안정을 위해 특히 초국적 단기투기자금의 낚싯밥이 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의 운용권자는 당연히 가입자가 가져야 한다. 그 대표성을 집권당이 갖는다는 것은 정말 파쇼적이며 독재정권의 방식이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참여독재‘인가?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실질적으로 민주화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부의 개정안은 형편없는 개악 안이다. 위원회구성의 실질적 민주화, 위원회의 상설화와 전문화, 기금의 안정적이며 사회적인 운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
4. 계급투쟁의 중심에 선 국민연금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서 종종 각론에 치중하면서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해 당사자인 국민들로서는 당장의 수령액이 얼마 줄어들고 보험료가 또 인상되는가 하는 점이 최대 관심사다. 따라서 그런 방향으로 제도가 바뀔 경우 이를 투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국민연금제도의 폐지와 사적보험으로 전환하려는 선택을 하려 한다. 사회보장성에서 볼 때 매우 미흡하긴 하지만 다른 3대 보험과 함께 국민연금제도는 자본의 의도대로 축소 또는 폐지의 방향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안티국민연금’ 뒤에는 자본의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빈곤이나 빈부격차 문제를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만든 제도가 본격적 시행을 앞두고 점점 계급적 성격을 띄기 시작하면서 자본의 국민연금에 대한 무력화 시도는 활발하게 전개된다. 아직 국민연금제도를 계급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사주하여 제도에 대한 반대 내지 폐지 쪽으로 사주한다. 아울러 사적연금의 효율성을 동시에 강조한다.
국민연금제도를 시행한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제도가 강한 시련에 부딪치는 것은 바로 국민연금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 간 계급투쟁 성격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자본의 입장에서는 10% 정도의 조직률에 불과한 기업별 노조와의 임.단투를 통한 분배 투쟁이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령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이윤을 확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청업체 단가나 제품가격을 통해 얼마든지 이윤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 문제는 전체 1500만 노동자들과의 대립구도를 갖는다. 만약 노동자들이 국민연금을 사회적 임금으로 인식하고 총자본의 관리자인 국가와 자본가들에게 국민연금을 통해 분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정말 큰 사건이 될 것이다. 산별노조의 요구가 집중되고 노동자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화의 상과 목표가 뚜렷해 질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노동분배율이 개선되고 사회전체의 빈부격차가 축소되며 따라서 자본의 이윤이 축소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사실 이 정도의 조건은 되어야 오늘날 민주노총을 노사정위원회에 끌어들여 이루려고 하는 사회적 합의의 최소한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의 과제는 국민연금의 개혁 방향보다는 국민연금의 사수가 일차적 목적이다. 먼저 정부와 보수정당들이 추진하는 연금지급액 축소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 지난 1999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40년 가입 기준으로 70%에서 60%로 깎인 후 지금 다시 ILO최저기준인 60%선이 무너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향후 우리의 임금이 깎이는 것을 방관하고 있을 수 없다. 현재 가입기간이 채 22년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제급여율은 30%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은 정말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푼돈에 불과하다. 불안정 노동자와 여성에게 국민연금제도를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연금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 조세를 통한 기초연금도입을 적극 서둘러야 한다. 연금행정의 민주화와 실질적인 자영자 소득 파악, 상위계층에 대한 소득재분배 강제와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합리적 재정추계와 세제의 형평성,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현재는 물론이고 추후세대간의 소득재분배와 사회적 연대성이다. 자본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화시키고 노동계급 내부를 분열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하는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을 사회적 임금투쟁으로까지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만이 전체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요구를 집중하는 것, 교육선전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전국적 투쟁을 조직하는 과제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 부여되고 있다. 국민연금을 민중적으로 강화하는 여부에 따라 노동자의 삶의 조건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