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따땃한 방바닥에 등짝을 부비며 드러누웠다. 한가로운 저녁시간이다. TV를 켰다.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본다. ‘생리대…피부염증도 없고…’라는 말이 얼핏 지나간다. 순간 솔깃. 화면에 여러 명의 젊은 여성들이 둘러앉아 수다를 나누며 재미있게 생리대를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각자 예쁜 천 조각들을 들고 앉아 바느질을 하는 중이다. 퀼트 같기도 하다. 몇 번 들은 적이 있는 터라 채널을 고정시킨 채 봤다.

인터뷰:
“이렇게 면으로 생리대를 만들어 쓰면 좋아요. 피부염증도 없고 환경오염도 줄이고, 경제적이구요. 무엇보다 제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지. 아무렴 일회용보다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왜 애기들도 천 기저귀를 쓰는 게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빨래는 어떻게 하지?’ 여기에 이르자 생각은 멈칫한다.

대규모 생리대 시장과 대안 생리대

여성이 생리대에 투자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한 사람이 보통 한달에 6000원 가량을 쓴다고 하는데 1년이면 72,000원이다. 연간 29억 1천800만개가 팔려나간다고 하니 사실 꽤 큰 시장인 셈이다. 그래서 대형마트 같은데 가보면 한쪽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십 여 종의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생리대들 앞에서면 순간 막막해지기도 한다.
이런 일회용생리대는 문제점이 많다. 우선 대표적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되고, 피부염증과 가려움증을 일으키고, 1개가 썩는 데 100년이 걸리니 쓰레기로서도 만만치 않다. 문화적으로 볼 때도 ‘깨끗하고 냄새 걱정 없고 흡수 잘 된다’는 광고문구가 닦달하는 바람에 여성들은 생리기간에는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며 그 와중에 하얀 커버에 과다하게 묻어나오는(일회용생리대는 생리혈이 본래 양보다 훨씬 많아보이게 하는 시각적 효과가 있다) 생리혈을 볼 때면 혐오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대안 생리대’를 이용하자는 흐름이 여성주의 쪽에서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면 생리대. 천연 면이나 융을 이용하여 만든다. 이전의 두꺼운 기저귀형태 대신 요새는 얇고 작게 만들고 똑딱단추를 달아 팬티에 고정시키게 되어있다. 천도 겉면은 다양한 색상의 직물을 대서 예쁘다.
이런 대안 생리대는 바느질하고 사용하고 빨래하는 과정을 여성이 스스로 진행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사고하게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이다. 몇 개 만들어 두고 수년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용도 대폭 절감된다. 또한 다량의 쓰레기를 줄이므로 환경을 고려했을 때 그 효과는 대단하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그러할 것이다.

생리대를 만들어 쓰라구?

한 친구는 자신의 생활 스타일과 생리 패턴에 맞는 생리대를 만들기까지 수차례 걸친 실험을 진행했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천을 사용해보고, 다양한 두께로 만들어보고 박음질에 대해서도 소상히 문의를 하고 다녔다. 천은 어디 가서 사는 것이 좋은지, 면과 융을 비교했을 때 서로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주욱 읊어대는 친구를 보며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저런 정보와 경험을 습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여야 될까.
빨래도 만만치 않다. 일일이 손으로 박박 비벼 빨아야 되고 삶아야 된다.
그 과정이 기쁨인 사람도 있겠지만 쥐꼬리월급에 늦게까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퇴근해서 애들 씻기고 재운다음 밀린 집안일 대충 하면 벌써 새벽1시라는 한 기혼여성의 삶이 보편적인 것이라면 그런 사람들에게 그만한 노력과 투자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수고로운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

나는 대안 생리대에 대해 적극 찬성하며 조만간 그 대열에 합류할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TV를 보며 몇 가지 석연찮은 점을 느꼈다.
우선 면 생리대를 만드는 작업이 상당히 ‘웰빙’과 ‘환경’의 측면에서만 그려지고 그 이면의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노동은 가려져버렸다. 그래서 면 생리대를 쓰지 않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환경에 대해 생각이 짧거나 혹은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으로 폄하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짚은 대로 그 만만치 않은 노동을 여유롭게 해낼 여성노동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면 생리대를 쓰는 사람이 소개됨으로서 ‘저렇게 열심히 챙기는 사람도 있는데…’라며 스스로 자책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생리에 대한 모든 것이 사회적인 측면은 결여된 채 여전히 여성 개인의 영역으로만 귀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리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이고도 역동적인 활동이며 여성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회성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가장 기초가 되므로 소중하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 생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교육이나 보건처럼 생리역시 사회에서도 책임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생리휴가’는 그나마 사회에서 책임지던 부분이었지만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포기해야 한다. 생리대에 대한 경비 역시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
연간 2조원에 가까운 생리대 시장은 언제나 경쟁으로 뜨겁고, 웰빙 바람과 함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가격대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여성은 매달 생리에 필요한 비용을 평생 혼자 감당해야 하며 게다가 비싼 돈을 주고 다이옥신 검출제품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생리대는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상상

보건소에서 약과 함께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것은 어떨까.
생리대를 생산하는 공장에 대해 유해물질사용을 규제토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좋은 생리대를 만드는 회사에는 비용을 보조해주어 시중에서 지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보다 면 생리대를 무상으로 지급하고 생리와 관련한 노동을 부담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갖추어지면 더 좋겠다.
군인이 무기와 모든 물품을 부대에서 무상으로 지급받듯 여성은 생리부터 임신출산에 이르는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사회로부터 부담 없이 지급받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면 생명을 이어나가고 사회를 이어나가는 또 다른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