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법원의 산재인정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근골격계 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이라는 것을 작성하여 실제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던져주었다. 위 지침의 주된 내용은, 현재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산재신청 및 인정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산재요양기간이 길기 때문에,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자문의의 권한을 강화하며 일상생활과의 관련성을 조사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산재 인정 및 요양기간 연장을 엄격히 하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 지침 적용 이후부터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산재 승인을 받는 것은 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과연, 노동부와 공단의 위와 같은 조치는 정당성을 갖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지난 겨울, 서울행정법원이 현대자동차 주식회사 전주공장 노동자 3명이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소송에서 2명의 노동자의 청구를 받아들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위 노동자들은 제조업 공장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근골격계 질환을 앓았는데, 이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쪼그려앉아 일하기, 허리 젖힌 채 일하기

위 노동자들은 모두 1995년경을 전후하여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 노동자는 버스부와 트럭부에서 용접작업과 조립작업을 주로 수행하였고, 두 노동자는 버스부에서 커튼레일 및 몰드 장착 작업을 주로 수행하였다. 용접작업은 프레임 위에 올라가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행하는 것이고, 커튼레일 및 몰드 장착 작업은 고개와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천정에 구멍을 뚫고 볼트를 체결하는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다. 1)
용접작업을 수행한 노동자는 2001년 6월부터 척추분리증과 척추전방전위증을 앓기 시작하였고, 커튼레일 및 몰드 장착 작업을 수행한 노동자들은 1999년 경부터 추간판팽윤증과 수핵탈출증을 앓기 시작하였다. 위 질병들은 허리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근골격계 질환들이다. 위 노동자들은 그 때부터 지속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요양을 하기도 하였으나 증상이 호전되지는 않았다. 치료를 받는 중에도 계속 업무를 수행해야만 했고 요양을 한 경우에도 그 직후에 바로 업무를 수행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에 위 노동자들은 위 질병으로 다시 요양을 신청하였으나, 공단은 이를 거부하였다.

법원의 판단

그러나 법원은 위 노동자들 중 2명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척추분리증 및 전방전위증을 앓던 노동자에 대해서는, “허리에 부담을 주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계속해 오는 과정에서 미세한 충격을 받아 발생하였거나 혹은 선천적으로 있던 척추 협부의 결손이 위와 같은 계속적 작업으로 인한 미세 충격과 부담으로 인하여 자연적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됨으로써 유발된 것이라고 능히 추단”된다는 이유로, 수핵탈출증을 앓던 노동자에 대해서는, “(그 노동자가) 수행한 작업이 허리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어 제4-5요추간 추간판의 퇴행성 변화를 자연적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시킨 결과 수핵탈출증에 이르게 되었다고 능히 추단”된다는 이유로, 위 각 상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한 노동자는 추간판팽윤증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핵탈출증으로 요양을 신청했는데, “수핵탈출증에 대한 요양승인신청에 추간판팽윤증에 대한 요양승인신청의 취지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을 당하였다. 2)

복잡할 것 없는 판단기준

사실 법원이 위 각 질병에 대해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굳이 그 의미를 분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다. 입사할 때 특별한 질환을 앓고 있지 않던 노동자들이 수 년 간 허리에 부담을 주는 자세로 일한 결과 허리에 재해를 입었다면, 그것은 당연히 업무상재해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업무가 허리에 어떤 부담을 주고 있는지는 직접 가서 한 번만 보면 된다. 한국산업안전공단도 위 노동자들의 업무에 대해 역학조사를 한 후 업무가 인체에 상당한 무리를 준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법원이 위와 같은 판단을 하면서 판결문을 복잡하게 작성하지 않은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공단은 위 각 질병이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었다.
근골격계 질환은 그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고, 급격한 통증을 수반하는 것은 아닌 관계로 공단은 가급적 업무상 질환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근골격계 질환은 노동자에게 지속적인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고,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더욱 더 악화되는 것이다. 최근 근골격계 질환을 앓던 노동자들이 정신병까지 앓고 급기야 자살까지 하는 것은 근골격계 질환을 방치할 경우 매우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위와 같은 판결에 비추어 보더라도, 사업장별, 업종별, 직종별로 나타날 수 있는 근골격계질환을 정리하여 환자가 그에 해당하면 바로 산재로 인정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리고 의료기관이 산재노동자에게 육체적, 심리적 의료 재활을 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을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각주)

1) 필자가 직접 공장을 방문하여 작업과정을 지켜봤는데,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는데 허리를 다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이거나 젖힌 상태에서 행하는 작업을 수 년간이나 지속하는데 허리에 탈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상당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 판결에 의할 경우 의사가 애당초 잘못 진단한 경우에는 노동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양을 거부당할 수 있다. 노동자는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업무와 관련된 것인지 여부를 제대로 한 번 판단 받지도 못하고서 요양을 거부당하게 된다. 위 노동자가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업무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병명으로 다시 요양신청을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다시 소송을 제기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것은 진단명의 선택이 전적으로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의사의 관점에 따라 병명이 다르게 나올 여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부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추간판탈출증과 추간판팽윤증의 경우 수핵의 탈출 정도에 따라 그 병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라고 할 것이다. 위 노동자는 자신의 질병이 업무와 무관하기 때문에 기각을 당한 것이 아니라, 병명을 잘못 선택한 것 때문에 기각을 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