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말헥산이라는 유기용제에 중독되어 이주노동자들에게 앉은뱅이병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처지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노말헥산이라는 유기용제는 벤젠에 견줄 정도로 휘발성이 좋기 때문에 1960년대 경 처음에 사용될 당시에는 벤젠의 대용품으로 생산공정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60-70년대를 거치면서 제대로 작업환경을 관리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과도하게 노출되는 경우 그 부작용으로 신경독성, 특히 하지에 분포하는 신경과 같이 몸에서 가장 긴 신경부터 그 대사를 방해하여 그 결과 신경축색이 커지면서 축색을 둘러싸고 있는 수초가 벗겨져서 결과적으로 신경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질병을 초래한다는 것이 곧 밝혀지게 되었던 물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74년 영등포구 소재 고무공장에서 일하던 13명의 노동자 중에서 9명이 하반신 마비 증세로 입원하여 노말헥산으로 인한 다발성신경염으로 처음으로 진단을 받으면서 보고되기 시작한 직업병이다.
이와 같이 오래 전에 보고되었던 직업병이 지난 80년대 이후 한 동안 잠잠하다가 30년이 지나서 이제 21세기에 들어와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다시금 보고되고 있다. 노말헥산은 언급한대로 그 독성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물질로서, 사업장에서 갖추어야 하는 물질안전보건자료에도 그 신경독성이 분명히 언급되는 물질이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 들어와 상당히 예전부터 알려진 독성유해물질로 인한 직업병이 다시금 보고되는 것일까? 이와 같은 문제가 한 번이 아니라, 지난 2002년에는 중국 이주노동자들에게서 그리고 2004년도에는 타이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노말헥산으로 인한 다발성신경염이 보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오래된 직업병이 반복적으로 이주노동자에게서 발병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독성물질과 위험기구로 인한 위해성, 즉 보건과 안전의 문제는 위험한 물질이나 기계를 함부로 사용하는 결과로 발생한다. 만약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면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위험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인 환경을 제대로 관리하였다면 문제가 미연에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아차사고나 주관적 증세를 통하여 초기에 문제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있었다면 심한 질병이나 심각한 사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된 사업장들에서 위해위험에 대한 물질안전보건자료가 있고, 환경관리를 위한 작업환경측정제도가 있고, 그리고 조기질병발견을 위한 건강진단제도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말헥산으로 인한 직업병이 사전에 예방되었을까는 의심스럽다.
기존에 그 독성이나 관리기준, 그리고 진단방법 등이 잘 알려진 문제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으며, 한편으로 이러한 문제가 이주노동자에게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안전과 보건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권리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기존에 잘 알려진 위해 위험요인에 대하여 직장과 일반 사회생활에서 유해하고 위험하다는 즉 피하여야 할 것이라는 가치판단을 하는 인구집단이 많이 늘어났으나, 아직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그러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우리 사회가 제공하거나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