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밀려나는 노동자, 영세사업장으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은 호된 칼바람을 맞았다. 거리낌 없이 유포되는 ‘노동시장 유연화’의 대전제 하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거나, 더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과 복지는 거의 절반수준인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결국 2003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는 55.4%(여성 69.5%, 남성 45.4%)(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3)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최근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맞물려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정규직에서 밀려난(혹은 ‘정규직’이 되어 본 바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주로 소규모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다. 통계자료의 제한으로 그 실태나 추세 등을 면밀히 검토할 수는 없으나, 한 연구에 의하면, 99년 현재 사업장 규모별 임금노동자 중 임시․일용노동자 비중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12.9%, 50-299인 사업장에서는 25.5%, 30-49인 사업장에서는 37.5%, 10-29인 사업장에서는 54.2%, 그리고 1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무려 83.2%에 달했다(한상욱, 2001). 이를 사업체기초통계조사 자료의 99년 당시 규모별 종사자수를 바탕으로 거칠게나마 추산해본다면, 전체 임시․일용 노동자의 약 88%가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에 고용되어 있으며, 특히 10인 미만 사업장에 약 70% 가량이 집중되어 ‘소규모사업장의 비정규직화’ 현상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집중현상이 향후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소규모사업장은 일반적으로 자본이 취약하고 대기업과 하청관계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아 생산성과 수익이 떨어지며, 경기변동에 따른 대응력이 미약하다. 이에 소규모 자본들은 자신들의 이익 혹은 생존을 위해 비정규직 고용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반면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미조직화 되어있고 법적 권리조차 제대로 적용받지 못 하기 일쑤이므로, 이에 대한 저항의 통로가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글에서는 비정규직노동자가 집중되어 있는 소규모사업장의 안전보건문제의 실태와 원인을 짚어보고 이를 극복하려는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정책도 권리도 없는 영세산업의 그늘

소규모사업장은 흔히 안전보건의 사각지대라고들 한다. 매년 발표되는 산업재해 통계자료가 어김없이 이를 증명한다. 2003년 전 업종 5인 미만 사업장의 전체 재해율은 1.58, 5-9인 사업장은 1.29로 대규모사업장(1000인 이상 사업장 0.54, 500-999인 사업장 0.44)의 약 3배에 달한다. 사망재해 만인율도 5인 미만 사업장 3.98, 5-9인 사업장 3.04로 역시 대규모사업장에 비해 약 2배를 초과하고 있다.
인천지역 사업장 약 300여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김형렬, 2003)에서는 질환자 빈도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41.9%, 50-299인 사업장 35.3%,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 35.3%로,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반질환을 포함한 전체질환의 유병율도 높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이 이렇게 건강하지 못 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소규모사업장 자체의 특성, 안전보건관리체계, 사업주, 노동자 각각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소규모사업장에는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상존하고 있다. 다수의 소규모사업장이 하청을 받고 있는데 이에는 산재발생 위험이 높은 유해한 작업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핵심-주변부 전략에 따라 주변부 업무에 대해 대대적인 아웃소싱, 용역․하청화, 비정규직화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자본의 규모 관계에 따라 이런 주변부 업무를 소규모사업장이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이는 소규모사업장 증가추세와 함께 하청을 받는 소규모사업장의 비중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 사업장의 영세성으로 인해 열악한 작업환경 또는 작업방식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소규모사업장의 안전보건 위험요소 발견, 직업성 질환 및 사고의 예방, 조기 진단, 적절한 치료 및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부재하다. 인천지역에서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90%가 건강검진을 받는 반면, 50인 미만 사업장 정규직노동자들은 57.4%만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은 22.7%만이 건강검진을 받은 것으로 조사되었다(한상욱, 2001). 또 산재요양을 받는 과정에서도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표1에서 보면, 사망재해 만인율은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높은 반면, 업무상질병 요양자 만인율은 대규모사업장에 비해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소규모사업장의 경우 사망사고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산재신청이 이루어지고, 여타 사고 및 질병에 대해서는 은폐되거나 보상의 길이 아예 막혀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소규모사업장은 자본 및 수익구조가 취약하고 존립자체도 안정적이지 못 하므로 당장의 이윤추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 이외에는 지출을 최소화하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대한 강제적 제도가 없는 한 소규모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마련되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업주 부담 등을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의 각종 사업주 의무에서 소규모사업장은 제외하고 있어 법적 규제가 미비하며, 소규모사업장이 산발적으로 위치해 있고 미등록사업장도 많아 정부의 행정력에도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셋째, 안전보건에 대해 소규모사업장 사업주는 대체적으로 무관심하며 자신과 사업장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 안전보건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지적하는 것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넷째, 안전보건문제에 참여해야 할 노동자들이 조직화되어 있지 못 하고 이직률이 크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89년의 193만명, 18.6%의 최고의 노조조직률을 기록한 이래 2003년 현재 11%로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으며, 게다가 소규모사업장의 조직률은 2% 미만으로 매우 낮은 형편이다. 또한 열악한 노동조건 및 불안정성에 기인하는 높은 이직률은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의 미조직화를 부추기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3. 자본의 주변부에서 떠도는 노동자들

의류생산노동자 / 인쇄노동자 – 만성화된 불안

동대문 지하철역에서 내려 창신동 길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여느 곳과 비슷한 주택가가 나온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세대주택 곳곳에 의류를 생산하는 작은 사업장들이 박혀있다. 지상에 있는 사업장도 있지만, 많은 사업장이 지하에 위치해있다. 대부분은 적은 평수에 여기저기 물건들을 쌓아 놓아서 노동자들이 서거나 앉아서 일하는 장소 이외에는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 바닥에는 항상 천조각이 나뒹굴고 공기 중에는 각종 먼지들이 부유하고 있다. 손바닥만한 환풍구 아래에 노찾사의 노래처럼 쉬지 않고 잘도 돌아가는 미싱들이 답답하게 놓여있다.
노동운동가이자,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씨는 한국에 와서 이곳에서 일해 본 소감을 글로 적으며 ‘생산사업장의 노동조건은 근본적인 문제, 즉 노동조합활동이나 근로기준법 적용에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적고 있다. 대개는 사장이 재단사, 디자이너 혹은 미싱사로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참여성노동복지터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설문에 답한 189명 가운데 72명(38%)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으며 55명(29%)이 14시간 이상 일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임금수준이 한 가계를 꾸려가기에 부족한 수준인 것도 예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다. 반면 대부분의 봉제공장은 하청공장으로 바뀌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더욱더 여의치 않게 되었다.
또 소규모사업장 노동자가 실제 비정규직화 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전순옥씨와 같이 일했던 한 노동자는 “일이 없을 때 ‘아주머니 내일은 일이 없으니 나오시지 마세요’ 하면 아무 항변없이 일이 있어 부를 때까지 집에서 쉬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상태에서 법적인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건강보험도 직장이 아닌 지역가입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와 같은 사정은 소규모업체에서 일하는 인쇄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알음알음으로 취업한 사업장에서는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하고 일거리가 없으면 나오고 또 다른 데 알아보고 가서 그냥 일하고 하는 식이다. 이러한 만성화, 일상화된 불안정 고용은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징적 현상으로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이나 권리의식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진다. 실제 한 연구에서는 소규모사업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필요성 인식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한상욱, 2001).

제화노동자 – 노동자성을 빼앗기는 노동자들

지난 해 겨울, 서울지역일반노조 제화지부에서는 제화노동자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가지고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제화지부는 고급 수제화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합이다. 설문에 응답한 이들 중 대다수(92.5%)가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약 2/3 (62.7%)는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화노동자들은 인쇄노동자들과 또 다른 문제, ‘개인사업자’ 문제를 지니고 있다. 80년대 말까지 노동자 지위를 갖고 있던 제화노동자들은 제화사업주의 비용절감 차원에서 진행된 개인사업자 등록으로 인해 현재는 개인사업자화한 제화노동자들이 상당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이러한 횡포가 소규모사업장 노동자이기 때문에 더욱 용이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사업자화는 제화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인하고 그에 따른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열악한 작업환경, 낮은 복지수준이 이에 기인한다. 또한 노사 관계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사업주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게 된다. 결국 제화노동자는 사실상 사용․종속 관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안전보건에 관한 한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열악한 작업환경과 노동조건 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안전보건체계의 미비는 위 조사결과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유기용제, 분진, 소음 등의 노출수준이 심각하였으며, 업무량 과다도 심각한 수준으로 지적되었다. 제화 일을 하면서 질병을 앓거나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51.7%에 달하였으며, “신체 근육이 이상하다”고 표현한 근골격계질환이 가장 많았고(42.3%), 본드 등의 유기용제로 인한 이상 증상(15.4%)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 회사가 제공하는 건강진단을 받아본 경험은 26%에 불과하였으며, 사고나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거나(19.2%) 개인 의료보험으로 처리(35.9%)했다고 밝히고 있었다. 반면, 산재보험(7.7%)이나 사업주 부담(10.3%)으로 처리했다는 제화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4. 산을 옮기겠다는 용기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노조가 세워지고 청계피복노조가 합법성을 인정받으면서 건설일용노조, 인쇄노조, 제화공노조, 지역금속노조 등 업종별 지역노조가 등장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 단위 노조운동의 흐름 속에서 정체 국면을 맞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노조조직률의 하락,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를 맞으면서 영세사업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역노조, 일반노조의 중요성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최만정, 2004).
위에서 사례를 들었던 인쇄노동자, 제화노동자, 의류생산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광범위한 지역분포, 부족한 인력 및 재정 등의 문제로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지역노조를 조직해 노동조합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 노동조합은 대상 조합원이 대부분 소규모사업장에 근무하고 있으므로, 노조의 조직률을 올리기 위한 조직화 사업과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를 찾는 운동이 노동조합활동 중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서울경인지역인쇄노조에서는 ‘근로조건 개선은 근로계약서를 쓰면서부터’란 주제로 노동상담을 하고 서울지역제화노조에서는 개인사업자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을 때 고용의 불안정성이 감소되고 노동조건이 나아지며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건강수준이 향상될 것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3년 전에는 인쇄노조, 제화노조, 민주노총서울본부, 성동건강복지센터와 노동건강연대가 연대하여 ‘성수동식구들’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소규모사업장이 모여 있는 성수동 지역을 기반으로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이후 성수동식구들은 노동환경 및 건강에 관한 게시판토론회, 노동자의 손으로 작업장을 바꾸기 위한 ‘참여노동안전’ 활동,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위한 건강검진 및 상담, 노동자수첩 제작 등 노동자 건강권을 위한 연대사업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자본의 호된 칼바람 앞에 선 소규모사업장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힘겹고 지리해 보이지만, 산을 옮기는 것은 결국 용기 있는 자의 몫이 아니던가.

각주)

1) 이와 같은 고용상의 변화는 의류생산노동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미싱사 중 주로 내셔날 브랜드와 부띠끄브랜드에서 미싱을 하는 노동자 다수가 사측으로부터 개인사업자등록을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재단사와 시야게사는 경제위기와 의류업종 사양화 추세속에서 월급제에서 일당제로 전락하고 있다(김정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