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노동재해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최초의 사건은 어린 노동자 문송면의 죽음이었다. 15살 어린 소년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은 수은에 의한 중독성 재해였다. 당시의 사회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영풍석포제련소의 카드뮴 중독, 이주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중독, 건설노동자들의 크롬 중독 등…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는 증상이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발생하며, 원인 물질이 대단히 다양하며, 업무기인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집단적 발병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사고성 재해나 반복 작업에 의한 직업성 질환에 비하여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노동재해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의 자본주의적 성격
자본주의적 노동이 크게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적 노동은 ‘분업’ 노동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공정을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노동자가 세분화된 공정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특히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에 의한 공정관리가 일반화되면서 기계에 부속된 인간노동의 단순반복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둘째,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서는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이 분리’된다. 노동자는 자기 의지에 의하여 자연물을 변형하는 것이 아니기에 자기노동으로부터 소외된다. 이러한 경향은 상품 생산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가속화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노동의 두 가지 특징이 바로 노동재해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규정한다. 자본은 노동시간의 연장을 통해 절대적 잉여가치를 증식하고 노동강도의 강화를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를 수취한다. 따라서 자본의 가치 증식을 목적으로 단순반복 작업의 강도와 시간이 높아지면 노동자가 각종 사고를 당할 위험이 증가하고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직업성 재해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이 자본주의적 노동재해의 첫 번째 유형이다. 또한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의 분리로 인하여 노동자는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과정의 기술적 위험이나 다루는 원료 등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 또한 노동자를 사고와 직업병의 위험에 노출시킨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노동재해의 두 번째 유형인데, 유해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는 이 유형에 속한다.
중독성 노동재해의 역사적 기원 – 화석연료기반경제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가 일반화된 사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경로가 갖는 특수성에 주목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독성 재해의 본질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이 ‘화석연료기반경제’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지적해야만 한다.
인류의 산업구조가 메뉴팩처와 기계제 대공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석탄을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기반경제가 형성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무기성 분진에 의한 진폐 등 재래적 형태의 직업병들이 만연하게 되었다. 더구나 화석연료기반경제의 성립은 노동자의 건강뿐만 아니라 엄청난 생태적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1952년 런던스모그와 1954년 LA스모그 사건은 가장 극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화석연료기반경제로서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완성되는 것은 1920년대 미국에서부터 발전한 석유화학공업에 의해서이다. 대량생산체제가 완결되면서 천연소재의 부족을 느낀 자본은 인공적 신물질 개발의 필요성을 석유화학공업으로 해결하게 되며, 석유화학공업이 소위 ‘산업의 쌀’을 생산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이 때문에 유포된다. Foster가 인류의 현세대를 ‘합성세대’라고 지칭한 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석유화학공업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양을 훨씬 초과하거나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물질들이 다량으로 유포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신물질의 사용은 1차적으로 이러한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에게 신종 직업병의 급격한 증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독점에 의한 중독성 재해의 심화
그렇다면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왜 유해물질의 사용이 적절히 규제되거나 중단되지 않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원인이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화학물질 생산의 독점적 구조가 지적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석유화학공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독점기업의 시장 지배 또는 과점기업들의 담함을 손쉽게 한다. 이러한 독점적 구조는 생태적으로 덜 유해한 대체물질의 사용에 대한 진입장벽을 구축하거나, 정부의 규제에 저항하는 로비활동 등 지대추구행위를 유발한다.
둘째, 화학물질의 유통구조가 다수의 영세한 업체에 의해서 이루어진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화학물질의 유통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다수의 영세한 업체라면, 정부의 관리감독이 어려워지고 철저한 관리와 소비자에 대한 정보 공급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독점적 생산 기업들에 의해서 수직적 통합과 지배 구조 속에 편입되게 된다.
셋째, 화학물질의 소비시장에서 비용전가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제품에 대해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중소기업들을 상정해보자. 대기업은 최소의 공급가를 요구할 것이고 중소기업들은 저가 납품을 위해 화학물질의 유해성 여부 보다는 비용을 선택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결국 대자본이 소자본에게 강제하는 비용전가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건강과 환경에 대한 치명적인 효과로 귀결될 것이다.
넷째, 신종 화학물질의 개발과 관련된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유해성 여부를 시험하고 규제해야 할 정부는 자본과의 정보 격차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부당국 또한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10만여 종의 화학물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고, 매년 2천여 종의 신규화학물질이 상품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 3만5천여 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매출액이 세계 8위를 점하고 있다. 더구나 1980년대 이후 강화되고 있는 지적재산권 보호와 기업의 영업비밀 보장의 흐름이 정보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중독성 재해, 해결책은 없는가?
최근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중독성 재해는 노동시장에서 지위가 취약한 불안정노동자계층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구상노동과 집행노동의 분리로 인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유연화에 의하여 더욱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적 단기 고용 형태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 대한 정보에 무지하거나 접근의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 정보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불완전하거나 왜곡되어 활용하기에 불충분하다. 결국 정보의 비대칭성은 비정규직 등 불안정노동자의 광범위한 확대와 더불어 유해물질에 의한 노동자건강권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장기적으로 지금의 경제체제를 변화시키지 이외에 다른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현재 시점에서 실현가능한 해결책으로 우선 정부의 규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알권리에 기반하여 노동자는 노동과정에서 어떠한 물질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현행 산업안전보건제도에서 이미 일정한 정도 보장되고 있지만, 제도적인 보장을 토대로 하여 “알권리와 참여를 통해 노동자의 자기 노동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는 싸움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것을 요구하는 운동은 노동자가 현장 수준에서 통제력을 확보하는 방안일 뿐만 아니라, 유해화학물질에 의해 2차적으로 발생하는 환경문제 등을 동시에 해결함으로써 총자본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의 주요 지점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