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스트레스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노동자를 통제하려는 기업의 욕망은 감시 기술의 발전을 등에 업고 갖가지 노동자 감시와 통제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노동자 감시와 통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및 인권 침해라는 측면에서도 당연히 여러 가지 주의가 기울여져야 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기업의 행위가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도 규제가 필요하다. 기업의 감시와 통제가 직접적으로 노동자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그리 많지 않지만, 이러한 기업의 행위가 노동자의 스트레스 수준을 높여 간접적으로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야기한다는 근거는 충분하다.

감시와 통제가 노동자 건강 파괴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는 많지 않다. 감시 자체가 다른 원인과 관련 없이 독립적이고 직접적으로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시를 받는 노동자들이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불건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들을 통하여 증명되어 있다. 감시를 받는 노동자들은 불안정하게 되고, 주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며, 통제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어 심리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러한 스트레스의 축적이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감시를 받게 되면 업무의 양과 속도에 대한 부감이 생기게 되어 더 많은 양의 일을 더 빠른 속도로 해야 한다는 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업무의 질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업무의 양과 속도를 늘리려는 압박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것이 많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전화교환원의 경우 감시를 받으면서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양의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소비자의 요구에 소홀하게 되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 질 저하를 막기 위한 감시가 또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업무의 양과 질에 대한 요구의 갈등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 노동자의 스트레스는 더욱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두통, 구역질, 소화불량
감시와 건강과의 관계를 연구한 많은 자료들에서는 감시와 스트레스 수준 및 노동자의 정신 건강과는 연관 관계가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치밀하고 극심한 감시를 받을 경우 노동자들은 두려움, 불안, 분노, 자기존중감 저하 등의 증상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미국의 ‘일하는 여성들의 국립협회(The 9 to 5 National Association of Working Women)’가 1984년에 미국 전역에서 행한 조사에 따르면, ‘당신은 당신의 작업 중에 항상적인 감시와 자동화 장치에 의한 통제를 받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이들과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이들 간의 증상 호소율을 비교하였을 때, 감시를 당하는 이들이 정신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을 훨씬 더 많이 호소하고 있었다(표 1 참조). 그리고 감시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자신의 업무에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도 더 높았다. 전체적으로는 33%의 노동자들의 자신의 업무의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하였는데, 감시를 받는 이들은 49%의 노동자들이 그렇게 응답하였다. 그리고, ‘지난 한 달간 종종 혹은 늘 작업장에서 스트레스와 각종 압박에 시달렸다’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적으로는 63.5%였으나, 감시를 받는 이들은 74%에 달했다.

한편 미국의 오레곤 주에서 1985년에서 1986년까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산재 신청을 한 예를 분석하여 재미있는 결과를 도출한 연구도 있다. 산재보험 신청자 및 요양 결정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이 그들의 회사 및 직무만을 가지고 분석하여 보았을 때, 정신적 스트레스로 산재보상을 신청한 노동자의 1/5 가량이 일상적으로 감시를 당하는 회사의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542명의 노동자들이 그 기간 동안에 정신적 스트레스로 산재보상 신청을 하였는데, 그 중 102명(18.8%)이 일상적으로 감시가 이루어지는 사업장 노동자라는 것이다. 그들의 산재 인정율은 다른 집단과 차이가 있지 않았다(표 2 참조). 이는 감시를 받는 노동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산재보상을 신청하거나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추정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자료이다.

한편 1990년에 미국의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수행한 미국의 전화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감시를 당하는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더 많은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표 3 참조). 특히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시는 여러 가지 정신 증상을 나타낼 뿐 아니라, 목 부위 통증은 21%, 어깨 부위 통증은 27%, 허리 부위 통증은 23% 증가시키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감시로 인한 스트레스는 근골격계 통증 호소율도 높이는 것이다.

감시가 노동자의 스트레스를 높이는 기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최근 정립되어지고 있는 직무스트레스 이론에 따르면, 직무스트레스는 업무 요구도가 많거나, 업무에 대한 자율성이 없거나, 직업이 불안정하거나, 주위 동료나 상사의 지지 조건이 부족하거나, 직업만족도가 저하될 때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 감시는 스트레스를 높이는 이러한 모든 조건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감시와 폭력
감시를 당하는 노동자들은 업무 요구도를 보다 심하게 느낀다. 감시받는다는 느낌 속에서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기 때문에 업무 요구도가 증가되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업무에 대한 자율성도 감소한다. 감시받는 노동자들은 늘 누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에 때문에 수동적이 되기 십상이다. 감시받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저하되고,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들게 된다. 게다가 주위 동료 및 직장 상사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노동조합 활동 등 노동자의 집단적인 문화가 설 땅이 없어지는 것도 정신 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사업주는 감시 제도가 생산성도 향상시키고 노동의 질도 향상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 근거해 여러 가지 전자 장비를 동원해 통제에 나서지만, 여러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이는 생산성도 저하시키고 노동의 질도 오히려 저하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 파괴 요인을 적절히 규제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너무나도 미비하다. 하루 빨리 감시에 의한 노동자 건강 파괴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한 장치 마련에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첨단 기술 장비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후진적 노무 관리의 수법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작업의 능률을 높이고 노동의 질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집단 활동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강하게 개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시는 가히 폭력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고, 그 와중에 감시로 인한 스트레스뿐 아니라 사업주의 부당 노동행위와 폭력에 의한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 최근 KT의 감시와 통제에 의한 노동자 정신질환자 사례나 하이텍알시디코리아 노동자의 정신질환 사례는 이러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감시 사례에 대한 규제 장치를 만드는 것과 더불어,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 집단에 대한 폭력 형태로 이루어지는 사용자측의 감시와 통제는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