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노동부는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산재보험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재해자수가 늘어나고, 요양기간이 길어지면서 산재보험 재정이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동부가 산재보험 제도 개선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분야 중에는 ‘보험급여 수준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급여체계를 선진화’하는 방안이 들어가 있으며 구체적 내용으로 ‘중복, 과도 또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휴업급여, 연금급여, 장애보상 등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 산재를 당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급여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줄여 산재보험 재정의 악화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노동부는 급여 체계 개선 이외에도 보험 가입과 수납율을 높이고, 양질의 의료,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여 조속한 사회 복귀를 추진하고, 산재보험관리운영의 전문성,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등 종합적인 제도 개선의 의지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스러운 것은 노동부가 단기적인 재정 안정을 위하여 급여의 수준을 낮추는 데만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1. 산재보험 재정악화 어느 정도인가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산재보험제도는 지난 1964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그 동안 적용대상, 보험범위와 사업 유형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그동안 여러 가지 큰 변화가 있었으나 최근의 가장 큰 변화는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2000년 7월 이후 1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어 적용 사업장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보험급여는 매년 17.6% 씩 큰 폭으로 증가하였으며 재정수지도 2002년 2,804억원 흑자에서 2003년과 2004년에는 240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중요한 점은 산업재해자수는 2003년 94,924명에서 2004년 88,874명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보험급여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노동부는 특히 이 점을 중요하게 여겨 산재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에 급여 수준의 합리적 조절을 주된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2. 재정악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산재보험 재정악화의 주된 원인을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때문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04년 10월 경총 부설 노동경제연구원이 1465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한 ‘산재보험제도 문제점과 개선 방안 실태조사’결과 현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으로 70.5%에 달하는 기업이 ‘도덕적 해이 감시부족’을 들었다고 발표하였다. 노동경제연구원은 주로 노동자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예로 들며 산재보험은 다른 민간 또는 사회보험과 달리 보험료부담자(기업)와 급여 수혜자(노동자), 그리고 산재심사 및 급여 지급자(공단)가 완전히 상이하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연구 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신문, 텔레비전 등의 언론에서는 간간히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를 보도하고 있다.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음에도 휴업급여를 계속 받기 위해 일부러 실직 상태에 있다든지, 재취업을 해서 급여를 받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휴업급여를 계속 타는 등의 사례가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산재보험체계에는 여러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업주와 피보험자인 노동자 외에도 보험자인 근로복지공단과 상위 정부기관인 노동부, 의료기관, 노무사, 변호사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산재보험체계를 이루는 구성원이 이렇게 다양한 만큼 산재보험의 재정 또한 이런 다양한 구성원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재보험의 재정악화 또는 도덕적 해이를 논할 때 언제나 일차적인 관심의 초점은 노동자에게 향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3. 도덕적 해이 – 사업주의 경우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는 산재보험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실제로 작업 관련성이 없는 손상 또는 거짓으로 꾸민 사고를 산재라고 주장하거나, 산재로 얻은 손상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주장하거나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면서도 이를 속이고 휴업급여를 타가는 행위 등이 있다. 그러나 산재보험 상에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의 전체규모나 그로 인한 산재보험 손실 액수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밝힌 자료는 거의 없다. 이에 반하여 사업주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사례는 그 규모와 액수 면에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사례보다 훨씬 산재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재은폐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자. 기업들은 산재사고를 은폐하여 산재보험재정 악화에 기여할 수 있다. 기업들이 매년 납부하는 산재보험료는 일정 기간동안 그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사고에 비례하여 부과되기 때문에 산재사고의 규모를 실제보다 축소하게 되면 산재보험료를 그만큼 덜 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부에서 파악한 산재은폐 적발현황은 2002년 1,033건, 2003년 674건이다. 매년 700-1,000건의 산재은폐 사례를 적발하는 것으로 알 수 있으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신고에 의존하거나 건강보험에서 부당이득금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노동부 자체적으로 적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으로 실제 산재은폐 사례는 이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에서 몇 몇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상대적으로 심각도가 덜한 가벼운 산재사고의 경우는 대부분 건강보험 또는 공상으로 처리되어 신고를 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중한 질환만을 신고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의 경우는 21.9%만 산재 처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축소 신고, 보험료 체납
또한 기업들은 노동자 급여를 실제보다 작게 신고해 산재보험료를 줄이는 행위를 하고 있다. 산재보험료의 특성상 기업들이 내는 산재보험료는 해당 기업의 노동자의 급여총액에 비례하여 부과가 된다. 다시 말하면 같은 규모의 사업장이라도 노동자의 총급여액이 많은 쪽이 산재보험료를 많이 내는 체계이다. 2003년 국회 국정감사 때 근로복지공단이 낸 자료에 따르면 3만여 곳의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사업장의 55%가 산재보험료를 줄이기 위해 임금을 2조 6천억원 정도 축소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에서는 1,070억원의 산재보험료를 추징하였다. 실제 산재보험 적용대상사업장은 2004년 현재 100만여 곳에 달하므로 조사대상이 아닌 사업장까지 감안하면 실제 축소신고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또한 기업들은 경영 악화 등의 이유로 산재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기도 한다. 근로복지공단에서 2003년 4월까지 체납된 산재, 고용 보험료는 7,450억원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2003년 한 해 동안 산재보험 지급액이 2조 4818억원이었으므로 체납 산재보험료도 산재보험재정악화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을 알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노동부, 의료기관
물론 사업주 이외에도 근로복지공단, 노동부, 의료기관도 산재보험재정악화에 기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산재사고 처리를 빨리해 주는 대가로 산재노동자에게 급행료를 받은 사례, 산재노동자, 사업주와 짜고 산재가 아닌 사고를 산재로 처리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사례가 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의료기관의 경우도 산재보험급여액을 과잉청구하거나 고가의 검사, 시술 등의 과잉진료행위를 해서 산재보험금을 부당하게 수령해가는 등의 사례가 근로복지공단의 감사에서 적발된 경우가 많다. 또한 노동부도 산업재해와 관련된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부처임에도 제대로 된 산재통계를 작성하지 않은 것도 산재보험 재정악화의 한 요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4. 기업들은 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강조하는가

이상과 같은 예를 볼 때 산재보험제도에서 도덕적 해이는 노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업주, 의료기관, 정부기관들의 도덕적 해이의 정도가 그 규모나 비용 면에서 더 구체적인 자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기업, 정부, 언론은 유독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주된 문제로 강조하는 것일까?
그것은 산재보험 제정악화의 주된 원인이 노동자에게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여론화하여 기업의 산재보험 지출비용을 낮추려는 의도 때문으로 생각된다. 노동자에게 불리한 여론이 조성되면 기업들은 산재보험급여의 수준을 삭감하는 등의 조치를 보다 쉽게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산재노동자에게 불리한 여론은 급여 수준의 삭감 조치와 같은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묘한 방식으로 기업에 유리한 입장을 조성해 준다. 다시 말하면 만약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산재보험상 정당한 수준의 급여를 받더라도 뭔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이렇게 형성되면 산재노동자가 재취업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결과 산재노동자는 정당한 상황에서도 산재신청을 회피하고 건강보험으로 처리하거나 개인휴가를 내서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기업이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강조하는 참된 목적은 산재의 비용을 사업주에서 산재 노동자 개인으로 떠넘기려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5. 정부는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이 시점에서 다시 노동부가 이번에 발표한 산재보험제도 개선 정책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면 바람직한 방향이 자연스럽게 보이게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동부는 급여 체계 개선 이외에도 “보험 가입과 수납률을 높이고, 양질의 의료,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여 조속한 사회 복귀를 추진하고, 산재보험관리운영의 전문성,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정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너무나 올바른 방향 설정이라 마땅히 비판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는 점과 지속적으로 정책을 수행해 나갈 의지가 있는가하는 점이다. 정부는 급여 체계 개선과 같은 단기적인 방안에 집중하기 보다는 산재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산재보험체계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노동부의 방안 그대로 보험 가입과 수납률을 높이고 기업들의 의도적인 산재보험료 회피를 철저히 단속하여 먼저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함과 동시에 급여 체계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치료기간이 점점 길어져 장기요양노동자가 늘어나는 주된 요인은 중대한 산재사고가 과거보다 더 많이 늘어나고 있으며 또한 중대 산재사고를 당한 근로자는 부상의 정도가 심하여 재활이 어렵기 때문에 장기요양환자들이 점점 누적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만을 침소봉대하여 강조한다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지속적으로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치료 중심의 의료 구조에 밀려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활 서비스를 노동부가 나서서 개선하여 산재노동자의 조속한 사회 복귀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제2차 산재보험제도 발전위원회가 바람직한 정책 대안을 만들기를 촉구한다.

[보론] ‘도덕적 해이’ 에 대해

모랄 해저드(Moral Hazard)란 말은 우리말로 ‘도덕적 해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원래 경제학에서 보험이론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이규성 재경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사회에 퍼져있는 도덕적 해이를 뿌리뽑겠다.”고 말하고 김대중 대통령도 이 말을 자주 쓰면서 일반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경제학적으로 모랄 해저드는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주인(principal)이 대리인(agent)의 행동을 완전히 관찰할 수 없을 때 대리인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흔히 모랄 해저드를 설명할 때 화재보험에 가입한 사람의 예를 든다. 화재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가입 이후에 화재가 날 경우 보험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화재경보기나 소화기를 비치하는 등의 화재예방 노력을 소홀히 하여 결과적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화재를 더 많이 나게 하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런 상황처럼 보험 가입자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보험회사가 잘 모르는(정보 부족) 상태에서 가입자가 보험을 믿고 당연히 해야 할 일 (화재예방 등) 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더 쉽게 말하면 가입자가 보험을 믿고 맘대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에는 꼭 보험상품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꼭 보험을 든 것과 똑같은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 이론에서 쓰이던 “도덕적 해이”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재벌 총수나 고위 공직자의 예를 들 수 있다.
“도덕적 해이”라는 말은 원래는 가치중립적인 과학적 용어였으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가치함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비난의 대상이 정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산재보험 분야에서의 “도덕적 해이”는 전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이나 경총 등에서 쓰이는 경향이 있으며, 주로 산재노동자 개개인이나 의료기관 들을 비난할 때 쓰인다는 것을 신문기사나 보도자료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공단은 의료기관과 산재노동자는 이해 관계가 비슷한 한통속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가 산재보험수가를 받아 병원 유지를 하기 위한 의료기관의 암묵적 방관이나 적극적 동의에 의해서 점점 확대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원래 쓰이기 시작한 것이 고위 공직자나 부유층을 비난하는 데 쓰인 것이 그 시초이다. 그런데 유독 산재보험 분야에서는 반대방향(근로복지공단이나 경총)에 대해 쓰이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현상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이 분야에서는 대응 세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사용자나 사용자와 어느 정도 이해 관계가 맞는 공단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전선 중에서도 약한 부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