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노동세상’에서 개최한 산재학교에 수강생으로 참여할 때, 강의하시는 선생님께서 “실제 수강생들이 현장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발표하도록 한 적이 있다. “여기 노무사도 있죠?” 수강생 중 노무사는 무려 3명이나 되었다. 일단 앞에 나와서 자기소개를 간단히 한 후 “개인적으로도 산재와 큰 인연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시다가 탄광이 무너지는 바람에 돌아가셨습니다. 사고는 74년도에 있었죠. 30년이 지나 산재사건을 담당하면서 사건의 성패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밥 먹고 사무실 올라갈 때 계단을 통해서 걸어 올라가면서 밖에 보이는 근로복지공단 건물을 보고 ‘타도 근로복지공단’을 외치기도 합니다.”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타도 근로복지공단” 소리에 몇몇이 웃었던 적이 생각난다.

병원 노동자의 고통… 그리고 실마리를 찾기 위한 노력

사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산재사건의 특징이다. 이기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실제 소송의 결과는 그렇지도 못하다. 또한, 남들이 다 진다는 사건도 실제 해보면 작은 실마리가 생기고, 그 실마리에서 새로운 결과를 획득할 수 있다.
작년 이맘 때. 지금은 법률원을 나가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하는 이은옥 변호사가 나에게 와서 작은 부탁을 한 것이 오늘 소개하는 사건을 맡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 노무사님.. 이 사건 판사가 무슨 말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노무사님이 좀 맡아 주시면 안되요..”그 때야 법률원에 온지 몇 달 안 되어 사건에 대한 두렴이 별로 없었고, 뭐든 부딪치자는 생각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일단, 당사자를 만나기 전에 사건을 검토해보니 소장과 감정촉탁서만 제출되었고 그 이후 진행되는 것이 없었다. 소장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니 이건 청구성심병원에서 노조 간부까지 했던 분이였으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집단 요양승인(‘전환장애’라는 정신질환)의 당사자였다.
원고는 2003. 3. 7. “추간판탈출증과 양측슬관절 퇴행성 관절염”에 대해 요양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2003. 4. 14.자로 추간판탈출증은 염좌로만 승인하였고 후자의 상병에 대해서는 불승인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심사와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기각되었고, 추후 2004. 1. 27. 원고는 “양측 슬관절 슬개골하 연골 연화증과 반응성 관절염”에 대해 요양신청을 하였으나 피고는 2004. 2. 27. 불승인하였다. 요추부위 상병은 탈출이 아닌 퇴행성의 추간판팽윤이며, 무릎부위 또한 퇴행성 질환이므로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 공단의 처분 요지였다.
“판사가 원했던 것은 원고(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용을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첨부하라”는 것이었는데, 나로서는 고등학교 때 무릎이 아파 병원에 다닐 때 물리치료사를 직접 대면한 것 이외에는 물리치료사를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운동전문 물리치료사는 말할 것도 없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행한 2001년도 송무세미나 자료집 중 실제 산재담당 판사업무를 하다가 개업한 변호사가 쓴 글을 보더라도 “업무기인성에 대해 당사자의 업무내역에 대한 충실한 입증이 법관의 심증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결례가 없는 사건에 대해서는 판사 또한 처음 접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입증하느냐가 소송의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판사의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당사자를 만나기 위해 전화를 해 보았다. 전화 통화 목소리도 조금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실제 사무실에 왔을 때 처음 봤을 때 느낌도 전화통화와 마찬가지였다.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저 판사가 원하는 것은 실제 운동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역인데 뭐 좋은 자료가 없을까요”라고 물어보면서 대화를 통해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해서 업무내역에 대한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하나는 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 관련 외국전공서적이었고 이를 책 속에 있는 업무내역사진을 중심으로 복사․스캔해서 준비서면과 함께 서증자료와 증거CD로 제출하기로 했고, 다른 하나는 물리치료사의 근골격계질환 관련 논문자료였다. 논문자료는 의학전문논문사이트와 학술정보사이트 등을 뒤져서 몇 개를 건질 수 있었다. 이 작업은 이제 산재사건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준비서면을 통해 운동전문 물리치료사의 업무내역을 재정리하고 이에 대한 증거자료로 외국전공서적을 복사 ․ 스캔한 자료를 첨부하여 근골계질환 발생의 위험성이 높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추간판팽윤과 추간판탈출증과의 구분 모호성 및 추간판팽윤일지라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판례 5개를 첨부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 공단은 CT판독지, 진료기록지, 근전도검사결과지, MRI판독소견 등 각종 원고에 대한 의학적인 자료와 원처분, 심사, 재심사를 통해 축적된 자문의사들의 소견을 근거로 의학적인 면에 있어서도 원고의 상병은 추간판팽윤이며, 추간판팽윤이 업무상 질병으로 불승인된 판례 4개를 첨부하여 반박에 나섰다.

단초는 의학적 감정의 신빙성 있는 회신

문제는 과연 우리가 주장하고 신청한 “추간판탈출증”과 “양측 슬관절 슬개골하 연골 연화증과 반응성 관절염”이 명확한 상병임과 동시에 이것이 업무와 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는 감정을 받아낼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을 뒤 짚을 수 있는 단초는 역시 의학적 감정의 신빙성 있는 회신이라고 판단하고, 기존 2004. 7. 우리가 신청한 서울대병원에 대한 감정을 감정회신이 늦어짐을 설명하고, 빠른 감정을 얻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으로 2005. 1.월경 재촉탁신청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피고의 준비서면에 대한 반박서면을 작성하기 위해 원고와 관련된 의학자료를 모두 분석하고 기존 주치의 등의 소견이 추간판탈출증임을 강조하고, 다른 사건에서 피고가 팽윤이라고 하였지만 감정결과에서 추간판탈출증이라고 판단한 감정회신서를 증거자료로 첨부한 준비서면을 2005. 3. 제출하였다. (사실 의무기록지나 각종 판독지 등을 분석하는 작업이 쉽지 않은데 이때 지역 활동을 통해 알고 있는 간호사, 방사선사 등에게 수차례 물어보고 네이버를 검색하면서 지루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세브란스병원의 감정회신서가 도달하였는데, “제5요추 제5천추 추간판의 변성 및 우측 후외방 탈출증”이라는 소견을 보였다. 이를 이익으로 인용하면서 「추간판 탈출증에 있어 수핵의 탈출은 추간판의 후방 및 후외측에서 흔하게 발생되며, 추간판탈출증은 그 탈출된 정도에 따라 돌출 추간판(protruded disc), 탈출 추간판(extruded disc), 격리된 추간판(sequestrated disc)로 구분될 수 있다는 ‘정형외과학’ (제5판, 대한정형외과학회)의 내용」을 추가하면서, 「원고의 상병이 일부 팽윤의 증상이 있지만 추판탈출증의 전형적인 증상인 우측 우회방으로 탈출 소견을 보이는 “추간판탈출증”임을 강조」하는 내용의 서면을 작성하여 2005. 4.월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피고는 무릎부위 상병명에 대한 감정결과가 ‘경미한 퇴행성 관절염과 연고연화증‘인 점, 요추부위에 대한 진단 또한 ’추간판의 변성이 동반된 점, 워녹의 경우 신경학적 검사상 아무런 이상증상이 동반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강한 반박서면을 제출하고 2005. 5. 3.자로 변론이 종결되었다.
고심과 관련 자료의 분석 끝에, 감정회신서 등을 근거로 추간판팽윤이 아님은 확실하다는 것을 재강조하는 한편 추간판탈출증은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들병원 홈페이지 자료’와 기존 진행하고 있는 사건에서 어렵게 찾아낸 판결문(서울행정법원 2002구합22493. 선고 2003. 5. 22. 판결)을 증거자료로 입증하는 한편 이와 동시에 원고의 업무내역 등 기존 제출한 서면내용을 정리하여 2005. 5. 20. 참고서면을 제출하였다.

노동자의 웃음기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건을 진행하면서도 크고 작은 문제점들로 상당한 어려움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원고의 업무내역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만 하는 점, 둘째 의무기록지와 판독지 등을 해독하여 우리 주장에 맞는 자료를 정리하는 점, 셋째 감정이 추간판팽윤으로 나올 때를 대비하여 추간판팽윤을 분석하여 업무기인성을 강조하는 예비적 논리를 전개할 수밖에 없었던 점, 넷째 감정회신서상 불리한 슬관절 부위 회신을 의학적으로 반박하는 점, 다섯째 원고에 대한 기존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이 없었던 점을 반론하여 입증하는 점 등이 있었다. 이에 반해 원고가 자신의 업무내역에 대한 자료검색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던 점, 기존 추간판탈출증에 대해 연구하고 이와 팽윤과의 상이점에 대해 공부하고 판례를 분석하여 서면을 제출해보았던 점, 다른 사건에서 의미있는 (피고가 탈출을 팽윤이라고 판단하여 불승인 하였던 사건) 감정회신을 받아보았던 점, 다른 사건에서 분석에서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을 찾을 수 있었던 점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
추간판탈출만이 인정되는 “일부 승”,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결과는 그래도 만족할 만했다. 나 자신에게는 추간판탈출증에 대해 경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사건이었고 당사자에게는 희망의 단초를 심어줄 수 있었다. “저 노무사님. 일부라도 이길 줄은 몰랐어요. 이 사건 처음 시작할 때 보건의료노조에서 말릴 정도로 안 된다고 했거든요.” 처음 전화통화 때와는 사뭇 다르게 웃음기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직업이 어렵지만 할 만한가 보다!! 항소심에서 끝장을 봐야겠다.!! “타도 근로복지공단” 오늘도 나의 스트레스는 현재 진행형으로 가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