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영세사업장 노동자 실태조사’
의외의 뜨거운 반응에 공동실태조사단 모두는 놀랐다.
지역에 실태조사를 한다는 현수막을 건 다음날인 6월 20일부터 여러 사람들한테 전화가 왔었다. “지역에 사는 장애인인데 도시가스요금을 못 내서 가스가 끊겨서 밥을 못해먹고 있는데 해결이 안 되겠냐”는 이야기부터, 동사무소 직원이 어떤 실태조사인지 확인하는 것, 그리고 “00회사인데 언제 실태조사 하러 오느냐?”는 질문, 그리고 가장 갈급했던 사람들은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나오는데 현수막이 보여서 그날 바로 상담 왔던 제화노동자들이었다. 심지어는 전세 계약의 문제로 사무실까지 찾아왔던 사람들도 있었다. 겨우 성수동의 4개 동에 1개씩의 현수막을 걸었을 뿐인데… 어쨌든 반응이 없는 것 보다는 좋았다.
먼저 성수동에 대한 사전답사부터 시작했다
설문조사를 시작하기 3주전에 성수동 4개 동의 공단밀집지역을 답사했다. 성수1가1동의 뚝방길 옆은 악세사리를 만드는 금속사업장이 몰려있는 곳이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공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주택인지 공장인지 잘 구분이 안가지만, 근처에 가보면 공장이라는 것을 알겠다. 대부분 금속 똥(금속을 깍을 때 나오는 찌꺼기?)들이 주변에 있고, 찌든 기름때와 어두컴컴한 분위기, 시끄러운 쇠 깍는 소리가 들린다. 공장들은 대부분 경기를 타서인지 일이 없어서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답사 간 때가 비오는 날이어서 그런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단병호의원실과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을 받아서 여기처럼 작고 영세한 사업장의 노동실태와 복지 요구도를 조사하여 이후에 사회적으로 요구할 것이니까 다음에 실태조사 나오면 도와 달라”고 이야기를 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시고 기름때 묻은 장갑을 벗고 커피까지 타주셨다. 대부분은 부부, 혹은 사장 혼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임금을 주는 아주머니 한 분 정도 두고 사장과 같이 일하는 곳이었다.
성수2가3동은 1가1동쪽보다는 규모가 좀 큰 곳들이 많다. 일하는 사람들이 5인 안팎에서 20인 사이. 그래봤자 20인 넘는 곳이 많지 않지만. 인쇄․금속․제화 사업장들이 서로 얽혀서 혼재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아파트형 공장들이 많다는 점이다. 안으로 들어갈려 했더니 경비아저씨가 막아선다. 화장실 출입도 쉽지 않았다. 현장 방문하여 설문조사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현장방문을 통한 설문조사
지난 3월25일 지역의 9개 단체가 모여서 ‘영세사업장이 밀집해있는 성수동 지역에서 실태조사를 하자’고 결의하고 ‘영세노동자 노동 복지를 위한 공동실태조사단’을 꾸렸다. 3달여 동안 자료를 조사하고, 수차례의 모임과 회의를 통해 설문지를 만들고, 실태조사를 도와줄 봉사자(조사원)를 조직하고, 각 분야별 전문 자문가를 초청해 이야기도 듣고, 두 차례의 조사원교육도 가졌다. 샘플조사를 통해 최종 설문지 수정을 하고 어떻게 하면 설문을 잘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방법을 세우기도 했다. 우선은 9개 단체를 각 동별로 팀을 나누고, 우리의 목표치인 노동자 500부, 사업주50부, 실업자50부를 나누어서 받기로 했다.
조사를 도와주는 조사원들과 함께 조사 설문지를 갖고 현장을 갔다. 현장의 분위기는 냉담하기도 했다. 사장이 “우리 바빠요, 다음에 오세요” 라고 하면 직원들도 더 이상 해준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아니면 처음부터 “사무실(사장한테)에 가보세요”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해주세요. 내일 찾으러올게요”라고 해서 놓고 가면 다음날 해주기로 했지만 며칠을 가야 해주는 경우도 있고, 또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곳은 이런 취지에 동감하며 “자격이 되겠냐?”고 물어 보며 음료수까지 주면서 설문조사에 응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좋은 방법은 지역의 연고자를 찾아 방문하여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함께 설문조사를 받는 것이다.
하루에 3부까지 하면 많이 하는 것이다. 날은 더워서 땀이 그냥 떨어진다, 장마철 대비해 기념품으로 “우산 드려요”라고 해도 쉽지 않다. 예상은 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거부당했을 때 다시 다른 현장에 가서 설문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현장방문 선전전’하는 것이랑은 또 다른 것 같다. 한부를 작성하는 데 최소 10분 이상 15분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고 물어오면 “그렇기 때문에 설문조사하고 사회적으로 요구 할 거예요” 하고 강조 하지만 ‘정말 잘 해야 할 텐데..’ 하고 생각했다.
성수동 거리의 실태조사 캠페인
몇 날 현장방문 실태조사하고 조사원들이 모여서 서로의견을 나누었다. 지역에 알릴 겸 거리에서 실태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후 반응을 보고 다시 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6월 28일 성수역 근처 기업은행 앞에서 첫 실태조사 캠패인을 벌였다. 크게 천막을 치고, 가판대를 놓고, 냉커피도 타 드리고, 노동 상담이 필요한 분에게는 노동 상담도 하였다.
야~! 점심때가 되자 식사를 하러 나온 주변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이 오던지! 또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는 교대일도 많아서 퇴근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우산 주니까. 아님 냉커피 한잔 마시려고 왔겠지’ 생각했는데, 어떻게 왔든, 설문을 응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왜 이렇게 많이 걸리느냐?”고 하면서도 한 문항 한 문항 답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펼치곤 하였다. 이날 우리가 받은 부수는 노동자 52부, 실업자 7부, 사업주 7부로 총 66부를 받았다. 현장방문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많아야 3~5부인데 하루에 이만큼 받을 수 있고, 오히려 현장방문해서 노동자들에게 설문 받는 것은 어려운데 거리에서 하니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와서 설문조사에 참여할 수 있고, 또 1:1로 면접 조사를 하니 우리의 처음 조사방법에서 의미가 떨어지지 않았다라고 판단하여 모두들 “또 해야지!” 라고 의견을 모았다.
3주에 걸쳐 영세사업장이 몰려있는 지역을 찾아서 돌며 6차례의 거리 캠패인을 하였고, 7월 23일 실태조사를 마감하였다. 이렇게 받은 설문은 노동자 478부, 실업자 58부, 사업주 72부로 총 608부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설문조사를 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제화 일을 하시는 한 여성분은 남편의 실직 상태가 오래 되어서 결국은 본인이 가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고, 어떤 중년의 아저씨는 나에게 2000원을 빌려 달라하였다. 이유인 즉, 일자리를 구하면 그 날 그 날 일당으로 잠자리를 해결하는데, 요 며칠 비가 와서 일을 못했다면서 찜질방에서 하루 자야하는데 2000원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노숙자를 위한 쉼터에 소개해줄까요?”라고 물었지만 자기는 노숙자가 아니라고 오히려 화를 내셨다. 어떤 분은 인쇄 일을 오래했던 기술자인데 IMF 이후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였고, 일자리를 계속 못 구해서 결국은 고물을 주우며 가족의 생계를 꾸린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다. 다른 조사원들도 나처럼 다양한 인상에 남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설문조사를 하다보니 대부분 장시간 노동과 직장에서는 법정복리후생항목을 대부분 받을 수 없고, 공공복지에서는 거의 받아 본적이 없고 정보도 모르고 있다. 일자리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버텨야 하고, 아픈 몸은 웬만큼 견딜만하니 병원갈 일 없고, ‘이 정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는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들… 요즘과 같이 웰빙을 말하는 시대에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태조사결과 발표회
2005년 10월 5일 국회 헌정기념관, 드디어 여름 내 흘렸던 땀방울의 결실이 발표되었다. 성수동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두툼한 자료집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실태조사결과 발표회는 분석에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여건, 노동안전, 노동복지, 고용안정 등에 대한 조사 결과와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142만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104만원 정도 밖에 받지 못했다. 연월차는 80% 정도가 받지 못했으며, 토요일 전일 근무를 하는 경우는 33%에 달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51.7시간, 60% 정도의 노동자들이 위험요인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하다 다치거나 병이 든 경우 산재보험 신청율은 23.3%에 불과하였고, 더욱 놀라운 것은 5명 중 1명이 산재보험을 잘 몰라서 산재신청을 안했다고 답변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안들을 요구하였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강력한 법 집행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고용안정, 법정수준의 노동조건 개선, 영세사업체에서 기업복지의 한계를 사회복지로 보전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노동자가 참여하는 영세사업장 안전보건사업에 재정을 투입하고 지역에 일반보건의료와 산업보건서비스를 총괄할 수 있는 공공적 지역보건센터를 설립해야 한다. 또한 성수동과 같은 영세사업장 밀집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노동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후 공동실태조사단은 성수동에서 지역보고대회를 진행하고 평가의 자리를 갖은 다음 해산하였다. 애초 ‘실태조사’라는 목표를 달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실태조사는 향후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사회적 요구의 출발점일 뿐이다. 멈춤 없이 이러한 노력을 이어나가는 것이 실태조사에 응해주신 608명의 사람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향후 사회적 요구에 함께 한 9개 단체가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함께 일을 해보니 성수동은 정말 모범이 되는 지역이다. 서로가 결의하고 맡은 역할에 대해 책임감 있고 기동력 있게 움직이는 것은 쉽지가 않는 일임에도 모두 헌신적으로 해주어서 이렇게 실태조사가 중간단계에 이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 성수동을 뜨겁게 달궜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열기가 2006년에는 커다란 함성으로 메아리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