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에서의 노동계의 저항

제임스 엔렌버거 (James N. Ellenberger)
번역 : 김정민 / 노동건강연대 회원

마구잡이식 “개혁(reform)”의 열풍은 “위기(crisis)”에 봉착하지 않은 주(州)의 고용주들에게도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대다수의 주(州)에서 산재노동자와의 갈등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실재(實在)하거나 조작된 “위기”를 획책하던 시절, 오하이오에서 벌어진 전투는 노동자에게 눈부신 승리를 안겨 주었다.
오하이오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미국노동총연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FL)의 의장이었던 사무엘 곰퍼스(Samuel Gompers)의 후임자였던 윌리엄 그린(William Green)은 오하이오에서 주(州)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오하이오(Ohio)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Workmen’s Compensation Act)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의하면 사업주에게 산업재해보상을 위한 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특별기금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AFL의 부의장으로 활동하던 그린은 1921년 덴버(Denver)에서 있었던 정기총회를 통해 오하이오 법의 기조(基調)를 대표들에게 설명했다.

이 법의 제정으로 책임보험회사는 산재보험을 오하이오에서 팔 수 없게 되었고, 근로자와 그의 가족들은 그들의 피를 빨아 먹던 책임보험회사를 집에서 몰아낸 일에 대해 매일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감사합니다.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상업적인 영리보험회사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1997년 오하이오의 경영계는 다른 주(州)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혁”이라는 보험업계 캠페인을 접하면서 더 큰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1993년 “관리의료(managed care)”를 통해 의사들을 통제해왔고, 1995년에 산재보험 관리자(administrator)의 선임에도 정치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다.
오하이오의 주(州)기금은 1997년에 18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94년 25억 달러의 일시차입금은 1997년에 29억 달러의 잉여금(54억 달러의 변동)으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초반 보험료의 천문학적인 증가(평균 50%이상)를 경험했던 주변 주(州)의 고용주들과 달리 오하이오의 보험료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1996년에는 실질적으로 6% 감소하였다.
탐욕스런 오하이오 제조업자협회(Manufacturers Association)와 오하이오 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 주지사 조지 보이노비치(George Voinovich), 그리고 주(州)의회를 장악했던 공화당원들은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고용주에게 매년 2억 달러의 지출을 감면시켜줄 법률개정을 추진했다. 물론 작업장을 보다 안전하게 만들거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개정이 아니라 산재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2억 달러를 착취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보상범위와 보상금액을 축소하려했다.
1997년 4월 22일 주(州)의회에서 통과하여 주지사 보이노비치에 의해 승인된 상원의 법안 45호(Senate Bill 45; SB 45)는 다른 주(州)에서 이미 실행되었던 수많은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법안은 일부 근로자의 임금손실에 대한 보상기간을 200주에서 26주로 축소하였고, 직업병의 정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오늘날 급격한 증가추세이며 경제적으로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직업성 질환인 대다수의 누적외상성질환들(repetitive motion injuries)이 산재보험에서 제외되었으며, 특히 이러한 질환에 이환되기 쉬운 직장에서의 여성노동자들에게 차별적인 법안이었다. 또한 SB 45는 미국의사협회(AMA)의 영구장애평가지침(Guides to the Evaluation of Permanent Impairment)을 사용하도록 강제하였고, 이로 인해 영구적인 부분장애로 고통 받던 노동자들의 보상금은 대폭 삭감되었고 산재보상이나 의료급여 지급에 따른 소송의 기간이 반으로 줄었다.
1997년 4월 16일, 오하이오 하원이 SB 45를 가결하던 날,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The Cleveland Plain Dealer)지(紙)는 “오늘이 오하이오 경영계의 봉급날(pay day)이다”라고 평했다. 새 법안의 통과와 거의 맞물려 보이노비치가 산재보험사무국(the Bureau of Workers’ Compensation)의 책임자로 임명한 제임스 콘라드(James Conrad)는 오하이오 고용주에 대한 보험료 할증률을 15% 낮추었다.

자본의 공세에 대항한 노동자의 연대

야비한 공화당과 경영계의 폭압이 사회적으로 묵인되자 노동자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하이오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의장 빌 버가(Bill Burga)와 미국 자동차 항공우주 농업기계 노동조합(United Automobile, Aerospace and Agricultural Workers of America; UAW) 2지역 관리자 워렌 데이빗(Warren Davis)은 “산재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위원회(Committee to Stop Corporate Attacks on Injured Workers)”를 조직하였고, UAW 2-B지역 및 오하이오 트럭운전자연맹(the Ohio Conference of Teamsters) 지도자 잭 시즈모어(Jack sizemore)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오하이오 법정변호사협회는 기금을 조성했으며, “오하이오의 산재노동자를 돕기 위한 오하이오인 모임”에서 회원들이 활동을 시작했고, 종교인단체도 이를 도왔다. 투쟁기간 내내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연대(coalition)를 이루었다.
1997년 7월 22일로 효력이 발휘될 새 법안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문제를 투표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오하이오 선거에 국민투표(referendum)가 도입된 지는 거의 60년이 되었다. 국민투표를 위해서 최근 주지사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6%의 서명이 필요했고, 200,774명의 서명은 주(州)에 있는 88개 지역의 반수에 해당하는 44개 지역에 등록된 유권자로부터 받아야 했다. 7월 21일, 장갑자동차를 이용해 88개 모든 지역 유권자 414,934명의 서명이 오하이오 국무장관에게 보내졌고, 곧바로 새 법안의 효력일은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되기까지 미확정상태로 남게 되었다.
현재 쟁점 2호(Issue 2)로 알려진 국민투표는 노동자들에게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공화당소속 국무장관에 의해 결정된 판단의 어조는 오해하기 쉬운 위험성이 있었다. “찬성(yes)”에 투표하는 것이 새 법안을 통해 산재보험관련 사기행위를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와 동일시 될 수 있었다. 사실 그 법안은 거의 사기행위에 대한 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았으며, 산재노동자에 대한 독소조항은 18줄의 설명으로 그치던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경영계는 최대의 활동을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오하이오 노동 수호 위원회(Committee to Keep Ohio Working)”를 조직하여 캠페인을 벌이고, 77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모았다. 이 금액은 노동계와 그들의 지지자들이 모은 금액의 3배에 달했다. 가장 많은 기부를 한 곳은 오하이오 제조업자협회, 상공회의소, 크라이슬러사, 프록터 앤 갬블, 오하이오 자동차판매상협회였으며, 다른 기부자로는 제너럴 모터스, 포드, 오하이오 건강관리회사, 일본 소유의 혼다 자동차회사가 있었다.
이에 반해 노동계는 캠페인에 참가하여 2달러를 기부해줄 회원을 모집하는 수준이었다. 지역 조합들은 그들의 모(母)조합에 기부하였으며(특히 건설업계), 철강노동자연맹(the United Steelworkers), 자동차노동자연맹(the United Autoworkers), 미국언론노동자단체(the 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 식품 및 상업노동자연맹(the United Food and Commercial Workers), 전미 주ㆍ군ㆍ시 고용인동맹(the 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 호텔 및 식당고용인단체(the Hotel Employees & Restaurant Employees)는 매우 큰 힘이 되었다.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미주리, 뉴멕시코, 펜실베이니아, 텍사스와 같은 다른 주 연맹에서도 오하이오에 있는 그들의 형제자매를 도우려 애썼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계는 경영계가 캠페인에 퍼붓는 자금의 반(半)도 마련할 수 없었다.
다른 캠페인으로부터 얄팍한 술책을 빌린 법인 주도의 오하이오 노동 수호 위원회는 쟁점 2호에 대해 ”찬성”에 투표할 것을 종용하는 내용의 당나귀 실루엣이 그려진 전단지를 15만 명의 민주당원들에게 보냈으며, 공화당은 산재노동자의 편지를 날조하여 현재 표결에 부쳐진 쟁점 2호, 즉 상원의 법안 45호를 지지하는 신문사들에 각각 보냈다.
술책은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10월초 콜럼버스 디스패치(the Columbus Dispatch)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1 이상의 차(差)로 쟁점 2호는 쉽게 통과할거라는 예상이 나왔다.(찬성 56%, 반대 26%, 미정 18%) 주요 신문사와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은 모두 “찬성”투표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에는 전략이 없었다. 주(州) 근처 중앙노동회의(Central Labor Councils)는 공장입구와 작업장에서 전단(傳單)을 돌릴 지원자를 조직할 현장 코디네이터를 임명하려 하였고, 노동조합신문들과 지역 출판물들은 위태로운 쟁점들을 회원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자”라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회원들에게 작업장의 모습을 알리고 다른 회원들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요청했다. 뒤이어 텔레비전 캠페인을 통해 산재조합원이 출연하여 산재보험시스템의 보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상원의원 존 글렌(John Glenn)이 쟁점 2호에 대해 “반대(No)”를 촉구하였다. 그들의 목표는 예상 득표의 획득은 못하더라도 매우 신중하고 상세한 계획으로 노동자 가족들이 선거에 참여하여 “반대”표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쟁점 2호와의 투쟁에 있어 노동계 캠페인의 비장의 무기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매년 두 차례 오하이오의 AFL-CIO에서 시행되는 일주일 코스의 산재보험관련 강습회에서 교육받은 수천 명의 조합원들이었다. 강습회는 오하이오 AFL-CIO의 시민권 및 산재보험 분야의 지도자에서 최근 물러난 톰 벨(Tom Bell)에 의해 조직되었고, 지방 노동조합 운동가들에게 산재보험법에 대한 자세한 사항과 직장에서 산재노동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교육시켰다. 철강노동자연맹의 39년 회원이기도 했던 벨은 오하이오 AFL-CIO의 의장인 빌 버가에 의해 쟁점 2호에 맞선 노동계 캠페인의 “코디네이터”로 임명되었다.
점점 벌어지던 차이는 점차 기세를 꺾이고 있었다. 2:1의 여론조사 이후 주(州) 전체의 쟁점이 없었던 중간선거에서 노동계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투표에 참여하도록 설득하였고, 산재보험과 같은 난해한 쟁점에 대해 관심을 유도하였다. 지난 수년간 벨 등에 의해 훈련된 일반조합원 운동가들이 대세를 바꿔놓았다.
사업주들이 주(州)의회를 통해 밀어붙이고 보이노비치가 4월에 승인한 법안을 유권자들은 57대(對)43, 14포인트라는 큰 차로 거부하였다. 놀랍게도 310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했는데, 참고로 지난 1998년 대통령선거에서는 350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었다. 노동계에서 주장했던 “반대”의견은 오하이오의 88지역 중 73개 지역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패배를 경험한 거대 기업주들과 옹호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뻔뻔스럽게도 “찬성”를 종용하던 제임스 콘라드 국장은 ”노동계의 캠페인이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경영계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오하이오의 노동자들과 유권자들이 쟁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며 산재노동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똑똑한 사업주들과 이들의 공화당 협력자들만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하이오의 노동자들과 일반인들은 쟁점 2호에 대한 분쟁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경영계가 법과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산재노동자의 호주머니에서 2억 달러를 훔쳐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빌 버가가 말했듯이 오하이오에서 노동자들은 돈보다 사람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클리블랜드의 로컬 2015(Local 2015)를 통해 자동차 제조 노동자 로드니 보거(Rodney Boger)는 “그들에게는 돈이 있고,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라고 말했고, UAW의 동료였던 제리 세실(Jerry Cecil)은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지(紙)를 통해 노동자가 승리한 이유를 간단한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는 어리석지 않다. 그 법안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산재노동자들의 보험급여에 대한 강탈에 대해 유권자들이 “반대”한다는 반향을 불러일으킨지 8일째 되던 날, 보이노비치의 주(州)정부는 사업주에게 할인해주었던 13억 달러의 산재보험료를 노동자에게 되돌린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이 금액은 연간 사업주들이 주(州) 보험기금에 지불하는 액수의 75%에 해당했다.
보이노비치의 공식성명에 대해 그 사기성과 이중성을 비난하며 빌 버거는 말했다. “13억 달러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주지사 보이노비치는 수개월 동안 산재보험 사무국이 상당액의 보험료를 할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런 맥락에서 쟁점 2호의 산재보험급여 삭감을 오하이오 유권자들에게 승인해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언제나 노동자들이 지배세력을 이길 수 있겠는가?

1997년 11월 초, 오하이오에서 수천의 일반 조합원들과 비조합 노동자들이 일궈낸 승리는 직장에서 얻은 상해와 질병뿐만이 아니라 사회보장시스템의 거짓된 약속에 고통 받던 수백만 산재노동자들에게 전쟁을 알리는 나팔소리이자 희망의 횃불이 되었다.
현재 다른 여러 주에서 AFL-CIO 조직들이 과거 산재보험시스템의 “개혁”이 가져온 피해를 바로잡고자 투표 발의를 검토하고 있으며, 아칸소(Arkansas) 주에서는 산재노동자의 존엄과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투표를 이용하려는 노력들이 진행 중이다. 공판을 통해 콜로라도 노동계는 법원으로부터 1992년 투표를 하려했으나 불법적으로 저지당한 “안전한 작업장” 추진사업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중요한 판결을 얻어냈다.
이제 다음 전투가 서서히 임박하고 있다. 보험회사와 고용주들이 일리노이나 뉴욕과 같이 커다란 주에서 추가적인 “개혁”을 기대하며 군침을 삼키고 있고, 주지사 조지 파타키(George Pataki)는 산재노동자의 보상금을 과감히 삭감할 수 있는 방법을 뉴욕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희망의 빛은 있다. 뉴욕 AFL-CIO와 함께 안전보건운동 및 법정(trial bar)의 지지자들이 이러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노동운동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동가들을 양성하며 산재노동자들을 돕고 있으며, 안전보건위원회는 입법부 의원들에게 산재노동자들에 대한 보상과 예방활동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정치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산재노동자를 대표하는 변호인들은 쟁점에 대해 대중을 교육하고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에 대한 위협을 알리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모으고 있으며, 산재노동자단체는 이 전투에서 산재노동자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하고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 노동계는 1998년 선거에서 그들이 지지하던 후보가 승리하는 여세를 몰아 오랫동안 미뤄왔던 산재보험급여의 인상을 얻어내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는 1993년 “개혁”의 결과 50억 달러의 부담을 덜었던 고용주 집단이 약속한 것이었다.
이렇듯 산재노동자단체들이 전 지역에 걸쳐 활기를 띄고 있다. 설립된 지 오래된 루이지애나 산재노동자조합(Louisiana Injured Workers Union)같은 단체들은 미시시피, 텍사스,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플로리다,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에서 동종의 단체들을 후원하는 데까지 역량을 확대했으며, 텍사스, 오하이오, 노스다코타, 뉴욕 등의 주 노동기구들도 이러한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이러한 후원에 힘입은 펜실베이니아 AFL-CIO는 펜실베이니아 산재노동자동맹(Pennsylvania Federation of Injured Workers)을 설립했으며 현재 주(州)전역에 12개의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산재노동자를 돕기 위해서는 산재를 경험한 노동자들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은 산업재해이후 산재보험시스템에 의해 또다시 모욕과 충격을 받게 되는 산재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안내와 후원을 제공하며 노동을 포함한 다른 지원시스템도 제공한다. 또한 이들은 산재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이나 직업안전보건에 관한 법률의 개선에 대해 시위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여전히 고용주나 보험업자 단체들은 끊임없이 입법부 의원들과 행정 관료들을 부추겨 산업재해보상프로그램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력을 확장시키려 하고 있다. 일부 주지사들, 주 입법부 의원들, 산재보험위원들이 산재노동자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새로운 위기에 대한 경고들과 맞서고 있다(경영계 리더들은 곧 비용이 다시 급등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조직, 동료와의 대화ㆍ토론, 과거와 같은 정치적 활동은 승리의 연대는 만들어질 것이며, 오하이오에서 우리가 배운 것처럼 산재보험 및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는 전투에서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