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재보험을 둘러싼 논쟁의 성격과 쟁점

2005년은 어느 때보다 산재보험제도 개혁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한 해였다. 2003년부터 ‘선승인 후보상’의 현행 산재보험제도를 ‘선보장 후평가’ 체계로 바꾸어야 한다는 노동자건강권운동진영의 주장이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의 산재보험법 개정안의 입법 발의로 모아지면서 제도 개혁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었던 시기였을 뿐 아니라, 정부 측에서도 2004년부터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를 발족시킨 후 재정, 급여, 요양관리, 재활 분야에 걸쳐 방대한 연구결과와 정책대안을 제시하면서 제도 개혁을 둘러싼 이견과 쟁점이 형성된 시기였다.
그런데, 산재보험제도에 관한 논쟁은 매우 복잡한 논쟁 구도를 가지면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경우 산재보험제도의 개혁을 노동자건강운동진영이 주장하면 정부가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논쟁이 전개되었던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면, 최근 벌어지는 현상은 다양한 입장과 세력이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는 데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 측에서 기획하고 발족한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만 하더라도 여러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 재정과 급여 부분을 담당한 연구자 또는 위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산재보험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사용자배상책임보험적 성격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정책 대안을 제출하는 반면, 요양관리와 재활 부분을 담당하는 연구자 또는 위원의 경우는 사회보험적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 대안을 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입장이 제출되고 있는 것은 현재 산재보험이 처한 조건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전반적으로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새로운 직업관련성질환이 증가함에 따라 산재보험의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조건의 변화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신자유주의 공세가 산재보험의 사회보험적 성격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도 주요한 조건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재보험에 대한 신자유주의 공세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급여를 축소하여 재정 부담을 줄이거나 보험료 부담 방식을 바꾸어 대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다른 하나는 일부 보험 자본을 중심으로 산재보험을 민영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 번째로 노동조건의 변화가 산재보험제도를 둘러싼 논쟁을 뜨겁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고용의 불안정성 심화와 노동자의 양극화,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 불평등의 심화라는 노동조건의 변화라 하겠다. 영세, 비정규, 이주, 여성 등 사각지대 노동자의 건강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게 표출된 시기가 없었을 정도로 노동조건의 양극화와 건강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더욱이 건강보험에 비해 급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을 제외하면 선진외국에 비해 매우 후진적인 적용 범위와 보장성 수준을 갖고 있는 산재보험에 대한 노동자의 불만이 인내하기 어려운 한계 지점까지 왔고, 최근 근로복지공단의 권위주의적인 행태가 도를 넘으면서 산재보험의 직접적 수급권자인 노동자의 개혁 요구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도 산재보험이 처한 중요한 조건의 변화라 하겠다.
산재보험제도 개편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변화된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치열하고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논쟁이 어떠한 지향과 가치체계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적인 문제이다. 즉, 사용자배상보험적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하느냐, 사회보험적 성격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개혁 방향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근본적인 시각 차이와 정책 대안의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특히 사용자배상보험적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볼 경우 보장성 후퇴를 포함한 사회보장 기능 약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사용자배상보험적 시각을 명확히 하고 있는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의 재정과 급여 분과의 면밀한 검토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2.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의 재정 및 급여체계 개편안의 검토

(1) 재정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대략적인 입장은 책임준비금과 관련한 재정의 안정화 방안과 보험요율에 대한 입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책임준비금과 관련하여 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면, 현행 책임준비금 산출방식과 운영체계가 재해보상에 따른 실제 부채 수준과 거리가 존재하고, 책임준비금 규모를 과소평가함으로서 연금수급자 증가에 따른 기금의 부족현상을 초래할 수 있고, 장래에 보험요율의 급작스러운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제도 변화를 제안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향후 5년 간 지급준비만을 고려한 수정부과방식 또는 부분기금화(부분적립) 방식에서 충족부과방식 또는 완전기금화(완전적립)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최종 손해액 추정 및 미래 보험금 지급 패턴에 대한 추정을 통해 새로운 책임준비금 산정 방식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충족부과방식이 결국 민간보험의 원리를 사회보험에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향후 산재보험의 민영보험적 성격을 강화하려는 기본 구도를 갖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노동자건강권운동 진영 내부에서 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민간보험회사의 경우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보험사고에 대한 최종적인 치료와 보상이 가능하기 위하여 최종 손해액을 계산하고 이에 따라 책임준비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사회보험은 기금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일정 부분 책임준비금을 확보하면 되는 것이지 기 발생한 산재에 대한 최종적인 보상액을 모두 기금화하는 것은 불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충족부과방식 또는 완전기금화를 주장하는 것은 향후 민영보험으로 전환하기 위한 장기적 포석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험요율에 대한 주장인데, 현행 업종별 요율산정 방식의 경우 업종별 요율의 기초율을 기초지급율(임금총액 대비 보험지급액)로 상정하지 않고, 소멸된 사업장의 보험지급액을 타업종으로 분산시킨 이후의 지급률을 기초율로 삼아 업종별 보험요율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에 업종 간 위험율의 순위 자체를 왜곡시키고 기업 스스로 안전관리에 대한 유인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 연대성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개별실적요율의 경우 경험요율의 반영 한도를 50%로 임의적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에 의하면 우연한 대형사고로 인해 소규모 업체의 경우 고율의 보험료를 납부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업종 간 보험요율은 위험률에 따라 정해지도록 한 후에 일정수준을 초과하는 위험률을 분산시켜 주는 재분배 기능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타당하고, 개별실적요율에 있어서도 손해액 한도를 설정하거나 신뢰도를 고려해서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노동자건강권운동 진영은 기본적으로 보험요율이 위험률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행 산재보험제도와 차이가 없는 안이지만, 시물레이션 결과에서 업종 간 보험요율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제기한 바가 있다. 그런데, 그나마도 작년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 초에서 제기되어 오다가 작년 말 재정 분과 세미나 발표에서는 그 내용이 빠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2) 급여

급여 부분에 대한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의 주요한 문제의식은 현행 산재보험의 급여의 보장성 수준이 높고 비효율적이라는 데에 있다. 특히, 휴업급여의 비효율성이 높아서 장기요양 또는 도덕적 해이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휴업급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휴업급여의 경우 최초 요양 때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재요양의 휴업급여를 산정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제기하면서 재요양 직전의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휴업급여를 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한, 사업주의 의무를 강화하고 재정안정화를 위해 휴업급여의 대기기간을 14일로 확대하고, 휴업급여의 지급기간을 2년으로 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형평성 문제를 줄이기 위해 임시장해연금제도와 휴업급여 수급기간 중 취업활동을 부분적으로 허용하자는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요양종결 등에 대한 공단의 직권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안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기본적으로 산재노동자의 보호라는 인식에서 산재보험제도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업주배상책임보험이라는 시각에서 산재보험제도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휴업일수가 길어지는 문제를 산재노동자의 시각에서 고민하고 해결 대안을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한 측면인 재정 문제로만 인식하고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책 대안을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장기 요양의 문제를 단지 재정적 비효율성 문제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장기 요양으로 인하여 기능 회복과 사회 복귀가 지연되고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산재노동자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휴업일수가 길어지는 현상을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만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 산재노동자가 장기 요양 및 재요양에 따른 고통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장기 요양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산재노동자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문제이다. 또한 장기요양이 발생하는 원인의 상당수가 공급자 유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데, 공급자 유발 수요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재활체계가 작동하지 않아서 최초 요양 이후 근로소득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재요양 직전의 근로소득으로 휴업급여를 산정하겠다는 안은 재활체계의 부재에 따른 책임을 산재노동자에게 전적으로 전가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기요양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재활체계의 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고, 또한 공급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산재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의 급여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정책은 산재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부작용만을 낳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산재 이후 고용의 불안정성이 더욱 심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에게는 직접적인 압박과 고통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어 사회보장적 기능이 더욱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장해급여에 대하여 살펴보면, 장해등급의 판정을 신체기능의 손상이 아닌 근로능력의 감소에 따라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일부 전향적인 정책안이 제출되고 있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현재 과도한 수준으로 제공되고 있는 장해급여 및 상병보상연금의 수준을 합리적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정책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이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려면, 현재 장해급여 수급대상자인 산재노동자가 산재 전후의 소득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평가 없이 일부 몇 개 국가의 사례를 단순 비교하여 급여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처럼 다른 사회보장 체계가 발달하지 않아서 산재노동자에게 제공되는 급여의 대부분이 산재보험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과 산재보험 이외에도 다른 사회보장 체계에서 제공되는 부가급여가 많은 선진외국의 상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실제 산재노동자에게 제공되는 급여 또는 사회보장의 안전망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없이 특정 측면만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비논리적인 접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산재보험에서 우리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제공하는 나라를 단순 비교하여 현재 산재보험의 급여 보장성이 취약하다는 논리를 제공하더라도 성립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제출된 문헌 등에 기초해볼 때 대다수 사회복지 관련 전문가들은 장해급여의 보장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중복급여에 의한 비효율성만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하겠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재보험을 피재노동자의 안전망으로서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책임보상보험으로서 가입자인 사업주의 재정적 부담의 경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 하겠다.
물론, 일부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보험과 중복되는 급여항목이 존재하기 때문에 급여 보장성을 향상시킨다는 전제 속에서 합리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산재보험이 ‘근로자의 재해 등으로 인한 근로기회의 손실 및 이에 따른 임금손실을 보상해주기 위한 보험’이기 때문에 ‘퇴직 후의 기간에 대해서 임금손실을 보상하는 것은 산재보험의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은 현재 산재보험의 급여의 종류와 내용에 기초해볼 때 근거가 없다. 이것은 결국 고령의 노동자가 산재에 따라 장해연금을 수령할 경우 퇴직 이후에도 계속 받는 것이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연금과 연계하여 지급을 결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인데, 첫째, 현행 국민연금은 노후소득보장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 퇴직 후 임금손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둘째, 산재보험의 장해급여 역시 퇴직 유무에 따른 임금손실과 관련성이 없고, 오직 장애에 따른 근로손실 문제만을 고려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제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논리면 직장을 갖거나 다른 소득원이 있으면 장해급여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복급여 문제는 현재 산재보험조차 급여 수준이 현실화되지 못하여 생활보장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과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이 워낙 낮기 때문에 50% 차감 지급에 따른 실제적인 의미의 과다 지급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 적합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일반 장애에 대한 급여 수준이 상승하여 산재 장해와 일반 장애의 급여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장애인 복지정책이 통합적으로 전개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중복 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 대안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3. 산재보험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 대안!

산재보험을 사용자배상보험으로 이해하고 그에 충실하게 될 경우 사회보장의 기능보다 산재보험 가입자의 사용자 배상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재정의 안정화와 효율화를 달성하여 그 부담을 경감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의 재정과 급여 부분에서 제출되고 있는 안이 이러한 시각에서 제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재보험 수급권자인 노동자의 권한과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보다, 사용자의 배상 책임이 불명확하고 재정 지출이 많은 것에 대하여 도덕적 해이로 단죄하면서 지출구조의 합리성을 핵심적 과제로 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급여 측면에서 낮은 보장성 문제, 재활급여 및 체계의 부재, 비정규직 영세소규모 이주노동자 등 사각지대에 있는 산재노동자의 빈곤화 문제 등 훨씬 중요한 의제들이 많은데도 이를 다루지 않은 채, 요양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휴업급여 지급의 부당성만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법 역시 원인의 제거가 아닌 산재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특성에 기초해 볼 때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의 재정과 급여 부분에서 제기하고 있는 정책 대안은 사회보험을 강화하는 방향과 거리가 먼 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산재’ 인정이 되지 않아 억울하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재해노동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산재 인정방식이 원인주의적 접근에서 결과주의적 접근으로 전환되고 사회보장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직업병 및 작업관련성질환의 경우 그 원인을 근로경력과 정확히 연결하여 인과관계를 짓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재해인정이 소극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주의 접근방식으로는 많은 재해노동자가 산재보험 급여에서 배제될 것이 자명하다.
선진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산재보험의 최초 도입 과정에서 나타났던 사용자배상책임보험의 성격을 탈각시키고 사회보장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재보험제도를 전환하고 있고, 원인주의적 방식보다 결과주의적 방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추세다. 선진 유럽 국가의 산재보험제도를 보면, 적용대상도 노동자에서 전체 국민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보상재해 인정범위도 업무상재해에 국한하지 않는 등 포괄적인 재해보험에 접근하고 있다. 또한 보호수준도 재해에 대한 단순한 보상적 성격에서 벗어나 생활보장적 성격의 급여수준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산재보험 도입 이전에 재해의 책임이 누구의 과실이냐를 따지면서 법정 소송으로 비화되던 것을 무과실책임주의에 입각한 산재보험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적 효율성을 제고하고 재해노동자에 대해 효과적 보호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 업무상재해 여부와 관계없이 재해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보장적 성격을 강화하여 사회적 효율성 및 재해노동자에 대한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보호를 가능하게 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사회발전의 조건, 특히 산재노동자 및 노동자가 처한 조건을 생각해볼 때,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의 재정과 급여체계 개편안은 매우 후진적인 개악안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아직 노동부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제출하지 않고 있지만, 재정 부담을 내세워 상당 부분을 실제 정책으로 입안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 노동부는 단기적이고 일면적인 이해에 기초하여 이러한 정책을 입안할 경우 수많은 부작용과 사회보장의 근본적 후퇴를 가져올 수밖에 없음을 직시하고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에 제시한 재정 및 급여체계 개편안을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의 실질적 고통에 기반하고 사회보장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