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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노동이 이 세계를 유지하고 건설한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명은 무엇보다 존엄하다.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그 무엇도 세계의 유지와 발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건설자들은 세계로부터 잔인하게 배신당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사망(한해에 200만명)이 전쟁이나 에이즈로인한 사망보다 많다. 매일 5000여명의 세계 노동자들이 기업주들이 제공한 천박한 노동조건과 노동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마다 12,000명의 어린이들이 작업장에서 사망한다.

그러나 세계 GDP에서 건설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쓰여지는 돈은 고작 4% 뿐이다.

한국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도 최악의 상황이다. 오죽하면 철도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는가.

1996년 이후 7000명이 넘는 인원감축과 외주용역화 때문에 올해 벌써 12명의 철도 노동자가 과로와 사고로 사망했다. 얼마전 조달수 씨가 석달 동안 단지 5일 쉬는 살인적인 노동강도 때문에 과로로 사망했고, 2월 15일에는 통신장비도 지급 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던 7명의 하청 노동자가 열차에 치어 몰살당했다.

삼호중공업에서는 최근 한달새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명이 뇌사 상태에 있다. 사측이 노동자들의 안전에 조금만 신경썼더라면 이들이 죽지 않아도 됐다.

2002년에 2,605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이들은 대부분 예방가능했던 죽음을 당했다.

노동부가 산업재해로 인정한 죽음만도 매년 수천명, 전체 사망인의 10%를 웃돈다. 작년에 산재인정을 받지 못한 10여명의 노동자를 비관 자살하게 만든 근로복지공단의 비현실적이고 보수적인 판정기준을 감안하면 산재사망 노동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살인

노동과정에서 기인한 사망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안전장치만 설치했어도 4월 4일 STX 조선 김종숙 씨가 도장공장 자동문에 끼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추락방지용 안전망만 있었어도 3월 3일 현대중공업 권혁일 씨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조선소의 잦은 사망사고에 대해 노동부 산업안전공단 조선업 재해예방팀은 “업무가 바빠 신속하게 안전대책을 사업장에 보급하지 못했다”며 태평스럽게 지껄인다. 게다가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산업안전규제를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하며 노동자들의 생명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둘째,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들의 신자유주의 정 책 때문에 노동자들이 죽고 있다.

2002년 산업생산 증가율이 1분기 3.7%에서 2분기 6.9%로 높아진 반면 노동투입량(말하자면 임금 총액)은 -7.3%에서 -3.6%로 2001년 3분기 이후의 감소세가 계속됐다. 단위노동비용(임금 등 노동자에게 투자되는 총액)도 1996년 이후 감소하고 있다. 즉, 인력과 임금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강화해 생산을 증가시킨 한국 자본주의의 단면이다.

이런 방식의 정책 때문에 1998년 이후 철도 노동자들의 사망만인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2002년 체신노조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동자들은 ‘건강하지 못한 원인’으로 ‘과중한 업무'(82%)를 꼽았다.

1958년 서구의 한 조사에 의하면, “40세 이하의 젊은 심혈관계 질환 환자들은 정상인에 비해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가 4배에 달한다”([노동강도 강화와 근골격계 직업병 대응], 251쪽).

한국에서 심혈관계 질환 사망(과로사) 노동자는 1998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1998년은 ‘정리해고제’가 도입된 해다.

정부와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산재사망은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