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노동건강연대 사업국장이 건강한노동세상 소식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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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경영으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는 살인죄로 처벌하여야 한다

노동건강연대 사업국장 김종민

원칙적으로 모든 산업재해와 직업병은 ‘예방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많이 양보하더라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산재 및 직업병의 70∼80%는 적어도 예방가능하다. 이 수치는 관련된 많은 전문가들의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산재로 인한 사망의 적어도 70∼80%는 ‘예방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근본적인 문제는 물론 자본주의 생산 양식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 속에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는 관심이 없다. 당연히 그들의 최고 목표는 더 많은 이윤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도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원론적으로는 그렇다할지라도 사실 ‘합리적’ 자본가라면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착취하지는 않는다. 기계를 너무 무리하게 작동시켜 고장나 폐기하게 되면 새로운 기계를 구입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친다면 새로운 노동력을 구매해야 하는 비용뿐 아니라 보상과 관련된 비용도 추가로 지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합리적’ 자본가에게 산업재해는 ‘경제적 비용’이고 이는 최대한 줄여나가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 자본가가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재해를 예방하는 대신 다른 방식의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도 있다. 비정규직 고용 등의 형태로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의 사용을 늘린다든지, 관련된 보상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합리적’ 자본가들이 이러한 방법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문제의 지점이 이러하다면, 산재로 인한 사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혁파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만 만다면 무언가 허전하다. 이는 현재 이 시간에도 어이없는 죽음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무책임하기까지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근본 문제’와 다른 차원에서의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어떤 지점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통하여 산재로 인한 사망을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사업주들이 산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업주들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것, 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한 고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업주들이 산재예방을 위한 행동을 책임 있게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이를 위해 동시에 추진해야할 두 가지 사안이 있다. 하나는 작업장 내 노동자 참여 구조의 확장과 자기결정권 증대를 통해 노동자의 힘으로 사업주를 압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업주에게 산재 사망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무겁게 묻는 것이다.

두 번째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 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하면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동시에 조사를 수행하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와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법원에서 산안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죄 둘 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만이 가해져 턱도 없이 낮은 벌칙을 부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둘 이상의 범죄를 범하였을 때, 앞선 범죄로 인하여 처벌을 받았을 경우 뒤의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한 것이다. 둘째, 업무상 과실치사죄에 의하여 사업주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있다해도 영세사업장 사업주만이 처벌받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직접적’으로 사인을 제공한 이에게만이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대기업이나 중간 규모의 기업은 대부분 작업장 안전관리자나 중간관리자가 처벌을 받게 되고, 위계 구조가 단순한 영세사업장만이 때때로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 물음으로써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기 위해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산안법 위반에 따른 벌칙이 아니라 형사상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 사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안법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사업주에게 예방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에, 산재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은 형사법 위반에 따른 벌칙보다 가벼우며, 사업주들은 산안법 위반에 따른 벌칙에 대해서는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업주의 무책임한 경영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 사망에 대한 책임을 현재 존재하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보다 더 엄중히 묻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업무상 과실치사죄와 같이 대기업 고위관리자를 처벌할 수 없는 구조는 산재예방에 전혀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없다. 무책임한 경영으로 말미암아 노동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그 사망에 대한 책임을 ‘살인’에 버금가는 형태로 고위관리자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천상 새로운 형태의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산안법의 벌칙을 무겁게 하는 것은 법논리상 한계가 있고, 현재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새로운 법률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영국,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구체적인 법안이 상정되어 제정을 앞두고 있고, 이들 나라의 노동조합은 이 법안의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동건강연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법안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단계이며, 이에 대한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사업주에게 산재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여러 면에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둘러 가는 길은 없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www.laborhealth.or.kr)를 방문하여 ‘기업살인게시판’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