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6 한겨레 왜냐면] 노동자 두번 죽이는 경총

백도명/노동과건강연대 상임대표·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현대중공업에서 1월 한달 동안 4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 안전담당 이사가 구속됐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산재사고 관련 구속조치에 대한 입장’이라는 2월6일치 성명을 냈다. 이
성명서에서 형평성과 사업장의 현실을 도외시한 산업법 적용이 철회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언론은 또 이런 경총의 주장을 버젓이 보도하고 있다.

지난 2003년의 경우 통계가 잡혀 있는 9월까지의 산재사망자는 2154명이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약 2500명 정도가 산재로 사망하고 있다. 이를
산재보험 가입대상자 1만명당 비율로 환산하면 1만명당 약 3명꼴로 죽은 것이
된다. 이러한 산재사망률은 영국의 20배, 그리고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5~10배 수준에 달한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과 비교하여도 높은 수준이다. 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 일반인구 사망률은 80년대 이후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였지만, 산재사망률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해에는 9월까지의 추세가 지속됐을 경우 약 3000명에 가까운 산재사망자가
발생하게 돼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오히려 산재가 증가하는 결과가 나온다. 즉
우리 사회의 일반인구 사망률은 줄고 있으나, 산재사망률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그것도 후진국 수준을 초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외국에서 개최되는 학회에서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경제수준에 비해
제대로 산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산재보험 가입자는 현재 약 900만명 수준이다. 이들의
연령범위가 20대에서 50대까지의 한창 일할 나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일반인구
사망률과 산재사망률을 견주어 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 중 사망하는
경우 산재사망이 차지하는 비율이 10명 중 2명에 가깝다. 즉 지금 이 순간에 죽어
가고 있는 10명 중의 2명은 한창 일할 나이에 허망하게 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후진국보다 못한 수준의 산재사망률을 보이는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법석을 떠는
행정부처와 지금까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아도 무관심했던 언론들은 비난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말인가 산재사망이 선진국에 비해, 과거에 비해, 그리고 다른
기업들에 비해 일부 기업에서 과다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전혀 반성하지
않으면서, 책임규명을 요구하는 조처를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 조처”라고 성명을 발표하고, 그것을 언론이 그대로 보도한다는
말인가

현재 산재발생률을 기업 규모에 따라 보면 대기업에서 그 발생률이 낮다. 이는
대기업에서 산재관리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작업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아래서 대기업은 위험하고
더러운 작업을 중소기업에 하청과 외주를 줌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3디(D) 산업이 왜 영세기업인지는 자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정말
법집행의 실제적 형평성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규모에 따라 산재사망의
숫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산재사망에 대하여도 하청을 준
대기업의 사장과 임원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경총은 기업 규모에 따른
형평성이라고 하는 말장난을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책임질 줄 아는 자세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대기업에서조차 안전보건 조처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선진경영이나 정도경영을 말하기 전에 후진국에서나 벌어지는 현실을
부끄러워할 줄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백도명/노동과건강연대 상임대표·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