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도 ‘살인’이다
[기획]10년간 산재사망3만명
산재사망자 계속 늘어‘노동자 생명권’ 진전 없어
경제가치에의 종속성 노동자 안전건강 취약
“산재사망도 ‘살인’이다” 본격적인 캠페인에 앞서 3주에 걸쳐 지난 10년 동안 3만명이나 노동현장에서 ‘죽임’을 당한 심각한 산재사망사고의 현실을 고발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본다.
10년, 거꾸로 가는 ‘노동재해’
죽음을 부르는 일터
왜 죽고 사는 문제가 부각되지 않는가
10년, 거꾸로 가는 ‘노동재해’
최은희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laborhealth@yahoo.co.kr
○ 2월2일 경기도, 지하철 공사에 사용할 건설기계를 점검하던 중 유압실린더의 압력이 빠지면서 노동자 깔려 죽음.
○ 2월2일 서울, 폐기물 수집운반 도중 굴삭기 붐대에 맞아 노동자 2명 사망.
○ 2월2일 강원도, 자동차 부품제조공장에서 노동자 1명이 크레인과 건물 사이에 협착되어 사망.
하루 산재사망 8명, ‘전사’라니?
노동부에 취합된 사망사고를 요약해서 제공하는 노동부 홈페이지의 ‘중대재해 속보’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내용들이다. 이에 따르면, 지난 2일에도 노동자들의 예견된 죽음은 예외가 없었다.
사망사고가 많은 건설현장과 옥외 작업장에서 불안전한 기계 조작 과정에서 협착 등으로 사고가 일어난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루 8명씩 산재로 사망한다는 노동부 통계를 고려하면, 위 3건의 사망사고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사망사고가 지난 2일 여러 건 더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한해 3,000명가량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하지만 산재사망사고 소식과 그에 대한 노동부의 행정조치, 민?형사상의 처리결과에 대해 일반 국민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극히 적다. 심지어 노동부 ‘중대재해 속보’에서 제공하는 산재사망사건도 전체 사고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도 일반인들은 이런 정보가 제공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의 ‘노동자 생명권’에 대한 무관심을 탓하기는 어렵다.
“70~80년대 개발독재 시대에 정권과 자본은 ‘산재’란 고도성장을 지상목표로 전쟁을 벌이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라면서 ‘산업전사’ 이데올로기로 노동자, 국민들을 통제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는 지금까지도 노동자 건강과 생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노동건강연대 임준 정책국장은 이렇게 지적한다. 노동자 생명권에 대한 사회의 낮은 인식이 대책 없이 증가하고 있는 노동자 산재사망문제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전사의 논리’로 통제되면서 일반인의 관심과 시민사회의 문제제기 바깥에 있었던 노동자 건강과 생명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일까?
“우린 다쳐도 산재신청 못해“
지난 10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한국 정치와 사회, 국민생활은 많은 변화와 나름의 진전을 해오고 있다. 이와 비교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특히 산재사망 사고에 있어서는 어떠한 진전도 없었거나 도리어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와 산재사망의 추이를 보여주는 과 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80년대 세계 1위를 자랑(?)하던 한국의 산업재해율은 90년대 들어 완만하나마 감소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80년대말 이후 노동조합의 건설과 권리의식의 신장으로 원시형 재해가 일부분 감소한 데서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이는 부분적 해석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산재통계가 산재보상자료를 바탕으로 집계되는 것을 감안할 때 산재보험의 포괄범위와 산재노동자의 산재보험에 대한 접근성, 산업구성의 변화, 의료보험과의 관계 등의 외적인 조건이 산재통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80년대 이후 저위험 업종 등 산재보험 가입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평균 재해율이 감소했으며, 전국민의료보험정책 추진으로 산재보험보다는 의료보험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산업구성이 제조업 중심에서 3차 산업 위주로 변화하면서 80년대 이후 산업재해율이 자연감소하기 시작했다는 분석
이다.
“우린 일하다 다쳐도 산재(요양신청)로 못해. 산재(요양) 한 달 하고 돌아오면 내 자리에 다른 사람 있는데 어떻게 산재해?” 할인매장에서 청소 일을 하는 한 노동자의 이야기다.
산재율이 감소하고 있다는 노동부의 선전도 이들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로 정부기관에서 실시한 ‘비정규노동자 안전보건실태조사’(2001, 한국산업안전공단)에서는 비정규노동자가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드는 경우 18%만이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바 있다.
공상처리율이 70~80%에 가깝다는 것은 비정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른 조사들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면서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함을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부분이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고 있지 않음을 감안하면 산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노동부의 선전은 사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1999년 IMF 외환위기나 최근의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산업재해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철저한 경제가치에서의 종속성은 우리사회의 노동자 안전건강에 대한 취약성을 잘 말해준다.
“10년간 노동자 생명권 진전했나?”
10년간의 노동안전지표를 보여주는 관련 표와 그림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산재사망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전혀 줄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산재사망자수는 공식 집계된 것만으로 한해 2,500명을 넘은 지 10년이 지나도록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
1990년에서 2003년 사이의 산업구조의 변화, 즉 에너지합리화 정책 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다발하던 탄광이 폐광되었고, 상대적으로 중대재해의 위험이 높은 제조업은 줄어드는 반면 위험이 적은 3차 산업이 확대되었는데도 사망자수와 사망률이 줄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표2>에서 보는 것처럼,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 영국에 비해서는 20배, 미국, 일본, 독일에 비해서는 약 5배나 높은 – 사망률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80년대 후반 이후, 과거 성장위주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억압되었던 사회적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그 해결이 모색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안전, 건강문제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 결과, 일정한 사회적 개입을 통해 1988년을 전후하여 어린아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전 연령층에 걸쳐 추락사나 약물중독사 같은 재래적 형태의 재해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한편, 순환기계 질환이나, 암 등의 일반질병도 감소해 일반인구 전체의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일반인구에서의 안전보건문제의 변화를 비교해볼 때, 노동안전보건 문제의 경우 80~90년 이후에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개입이 없었거나 실패했음을 지적했다.
“노동안전보건 분야에서는 1988년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숨겨진 직업병 문제로부터 촉발되어 1989년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 이후 사회 이슈화된 문제 사안들을 중심으로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정책 수정 작업이 반복되었다. 산업안전선진화 3개년 계획을 비롯하여 이 시기에 걸쳐 수립된 대부분의 정책들은 대책수준이 단기적이고 물량적인 과제들로 채워졌다.
그 결과에 대한 평가도 없었으며, 사후관리도 없이 단지 일회적 대언론 홍보용으로만 집행되었다. 결국 90년대 이후의 시기 동안 다른 사회 일반의 안전보건과 일반의식수준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었던 반면, 노동안전보건의 현황에서는 답보를 거듭하면서 상대적으로 전체 사망률 중 산재사망률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10년 사이 2배나 증가하게 되었다.”
전체 사회와 경제 발전의 방향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6,70년대에 머물러 있는 산재사망의 수준은 이 문제가 노동부나 개별 사업주의 안전보건정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배제를 축으로 한 정부의 노동정책과 노동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차원에서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백도명 교수의 말처럼 이제는 노동자 안전보건 문제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국민건강에서 매우 중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산재사망 계속 방치할 것인가?
며칠 전 노동부는 2004년 산업안전보건 업무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요지는 ‘올해 산업재해를 지난해보다 10% 감소시켜 재해율 0.78%, 재해자수 8만5,000여명, 사망자수 2,600여명 수준으로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를 접한 노동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작년에 사망자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는데도 정부가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10년 동안 3만명이 죽는 걸 보고만 있겠다는 거 아니냐?”
최근 산재사망 증가의 근본원인이 무분별한 안전보건규제의 완화와 폐지, 유해위험작업의 하청,외주화 였음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단지 재해율, 사망률 몇 % 목표만을 반복하는 노동부를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불신은 이유가 있어 보인다. ‘떼죽임’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노동자 사망문제에 대해 아직 첫 단추도 못 찾고 있는 상황을 정부는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최은희 노동건강연대
2004-02-11 오전 10:16:08 입력 ⓒ매일노동뉴스